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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논의 2/3는 다 외지인의 소유가 됐다.
사진에 보이는 논의 2/3는 다 외지인의 소유가 됐다. ⓒ 정판수
농부들이 생명 같은 땅을 파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래도 대충 둘로 모아진다. 첫째, 가정일로서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자식들을 위해서다. 그들의 결혼에나, 새집 마련에나, 사업 자금을 대줘야 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판다. 그 외에도 자신들에게 갑작스럽게 생기는 큰 병이나 사고들로 하여 팔 때도 있지만.

둘째, 부동산업자들의 권유다. 지금이 시세가 좋은데 이때를 놓치면 팔 수 없다는 등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으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은가 보다. 특히 세치 혀로 영업 밑천을 삼는 부동산업자들이 마을에 드나들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부추기면 모른 체하기 힘든가 보다. 그래서 어제는 누구의 땅이 얼마에 팔렸다는 소식이 있으면 오늘은 또 누구의 땅이 얼마에 팔렸다는 소식이 잇따른다.

달내마을 앞산에 해가 떠오르는 장면.
달내마을 앞산에 해가 떠오르는 장면. ⓒ 정판수
마을 어른들은 팔고나면 나름대로 자기 위안삼아 변명을 한다.
‘이제 늙어서 밭에 들어갈 힘도 없는데 잘 팔았지 뭐.’,
‘이제 저 밭에 발 담글 필요가 없어서 정말 속이 시원하다’ 하며.

그러나 슬쩍 고개 돌리는 그들 눈에 맺히는 눈물을 나는 안다. 속시원한 게 아니라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걸 잘 안다. 도려낼 속도 없이 다 녹아버리는 걸 보지 않아도 뻔하다. 왜냐면 그 땅을 산 사람이 대부분 도시사람이기에 그냥 땅을 놀리느니 그들에게 이용해도 좋다고 하면, 바로 팔아버린 그 밭으로 다시 내달리기 때문이다.

자기 집은 방에 쓰레기가 나뒹굴고, 마당이 엉망진창으로 더럽혀져 있어도 자신들이 가꾸는 밭만은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도록 만드는 게 바로 농투사니들의 자세다. 논에 물주기를 끝맺지 못하고, 밭에 김맬 곳이 남아 있으면 캄캄 밤중이라 하더라도 마무리해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자신들의 아침 점심은 혹 거를 때가 있을지 모르나, 소, 돼지, 닭 등의 먹이만은 절대로 거르지 않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나이 들어 기억력이 희미해져 자신들의 생일은 잊고 살아도, 약 치고 비료 뿌리는 시기만은 잊지 않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늘 말로는, ‘소똥 냄새 안 나는 곳에서 살아봤으면 …’ 하지만, 그게 또 말뿐임을 나는 잘 안다.‘하루라도 제발 손톱 밑에 흙을 안 묻혀봤으면 …’ 하는 말도 역시 빈말임을 잘 안다.

도시로 나간 자식들의 집에 찾아갈 양이면 채 이틀도 못 채우고 돌아와서,‘아이구, 내사 마 아파트에선 정신이 상그러워 하루도 못 살겠대. 고기 사는 사램들은 우째 사는가 몰라.’ 하는 말들이 참말임을 나는 잘 안다.

‘차는 또 올매나 많노, 지름 냄새 땜에 골이 깨지는 것 같아 참말로 못 살겠대.’ 하는 말들도 거짓 아님을 잘 안다.

달내마을의 자랑인 용담사 계곡
달내마을의 자랑인 용담사 계곡 ⓒ 정판수
우리 집을 지은 땅을 판 산음 어른댁 내외와 우리 부부는 아주 사이좋게 지내고 있지만 이쪽을 바라볼 때마다 그 마음이 어떨까는 솔직히 자신 없다. 팔고 싶어 판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판 그 땅이, 전원주택이란 이름으로 새 옷을 갈아입고 있는 걸 어여쁘게 봐주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한편으로 찢어지는 가슴이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늘상 할머니가, "정 선상(선생) 집이 들어선 뒤 동네가 올매나 밝아졌는디 …. 전에는 밤에 산쪽을 보면 캄캄해서 보기도 싫고, 지나칠라카면 무서워 시껍했는데, 시방은 훤해서 올매나 보기 좋은디 …"하는 말도 다 우릴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오늘도 달내마을에선 땅이 팔리고 있다. 투기꾼이나 전원주택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다. 버티고 버티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하여 팔아버린 그 땅을 향해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시 달려간다. 곡괭이와 호미를 든 채.

덧붙이는 글 | @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에서 달 ‘月’과 내 ‘川’의 한자음을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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