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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저녁 서산시민회관 광장에서 토고전 응원전을 펼치는 서산시민들
13일 저녁 서산시민회관 광장에서 토고전 응원전을 펼치는 서산시민들 ⓒ 안서순

13일 토고전이 있던 날 아침 아내는 전날 끓이려고 물에 담가 둔 미역을 다시 냉장고에 넣었다. 미역국을 먹고 응원하면 미끄러지기 때문에 안 된단다. 아이들이 아침마다 즐겨 먹는 계란 후라이도 하지 않았다. 계란은 깨지기 쉬운 것이라서 이것 또한 먹고 응원하면 재수가 없다는 게다.

대신 북어국을 끓였다. 아내는 평소에도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선수 이름은 물론 지난 2002월드컵 때 뛰었던 선수들까지 줄줄이 꿰고 있을 만큼 축구를 좋아한다. 평소에도 한국팀이 외국 팀과 경기를 하는 시간에는 좋아하는 연속극도 마다하고 중계방송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누가 드리볼을 잘하고 슛을 잘하는지도 훤하다. 경기 전 상대팀 전력분석은 기본이고 경기 중 작전지시? 까지 할 정도다. 그러니 경기에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지는 날에는 온갖 험담이 쏟아진다. 그 가운데 가장 험한 말이 "저것들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을 거야" 하는 말이다.

4년 전 월드컵 때에도 철없는(?) 아내는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자 목이 터지게 ‘대-한민국’을 새벽까지 외치다 아파트 이웃주민의 신고로 경비실로부터 제지를 받은 전력도 있다.

경기 시작 2시간전인 저녁8시부터 서산시 문화회관 광장에서 응원전이 열렸다. 우리가족 4명은 전날 사놓은 붉은악마 티셔츠를 차려입고 응원인파에 합류했다. 모여든 인파는 줄잡아 4000여명은 될 듯하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둘러맨 채 붉은 불이 켜지는 도깨비불을 머리에 달고 응원 방망이를 든 학생들부터 유모차에 앉은 아기, 저녁술에 거나한 50∼60대의 아저씨들까지 다양하다.

“와- 서산사람들도 대단하네” 아내는 몰려든 인파를 보고 감격했다. 광장 한켠에는 대형 멀티 화면에다 확성기가 설치되고 풍물패까지 동원되어 분위기를 돋우어 나갔다. 경기 전 승리를 기원하는 폭죽이 잇달아 밤하늘을 수놓고 그때마다 수 천명이 함께 외치는‘대-한민국’이 터져 나왔다.

“여보 우리 국민들 모두가 이렇게 응원하는데 진다는 건 말이 안 되겠지?” 분위기에 고조된 아내의 눈에는 ‘대한민국의 승리’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전반에 먼저 토고에게 골을 빼앗기고 후반 들어서도 시간만 지나자 아내는 급해지기 시작했다.

“우-와 미치겠네, 여보 이러다 우리지는 거 아냐, 억울해서 어떡해 당신 좋아하는 미역국도 못 먹이고 애들 계란도 안 먹였는데” 아내는 뒷사람은 개의치 않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해 가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좀 가만히 있어봐”하는 핀잔에도 아내는 아랑곳없이 좌불안석이다. 이천수의 동점골에 이어 안정환이 역전골을 터트리자 아내의 환호성은 극에 달한다. 골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응원인파와 함께 일어나 두 팔을 들고 팔짝팔짝 거리며 한참을 뛰던 아내는 숨을 고르며 “여보 역시 안정환이다, 그치?”했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며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여보 역시 미역국하고 계란 안 먹길 잘했다, 아침에 북어국 맛있었지 그지, 대-한민국”

책가방을 둘러 맨 채 토고전 응원에 나선 여학생들
책가방을 둘러 맨 채 토고전 응원에 나선 여학생들 ⓒ 안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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