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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두문불출의 전시 "가에서 출하기" 공동작업 서울역
그룹 두문불출의 전시 "가에서 출하기" 공동작업 서울역 ⓒ 김기
“집이 뭐죠? 가슴 깊게 파인 드레스 차림의 연예인이 한 손에 와인잔 들고 빙그르르 돌면서 고품격 아파트에 살면 고품격 인간이 된다고 속삭이는 TV 광고들에 짜증과 분노가 치미는 단계를 거쳐 도리어 정신적 수양의 계기를 주는 것에 고마워할 즈음, 뜬금없이 집이 뭐냐고 묻는 것으로 싱겁게 끝나버리는 어느 광고의 카피가 신선했다.

그것이 아파트 광고였는지 집 살 때 싼 이자로 돈 빌려주겠다는 광고였는지 미안하게도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온 국민을 한 마음 한 뜻으로 휘몰아가고 있는 집에 대한 광포한 집착더러 잠깐이나마 좀 쉬어 가라는 의미심장한 뜻으로 오해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었다.”


큐레이터 김현진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집은 대관절 우리에게 무엇일까. 뮌(2인 공동작가), 박광옥, 박준식, 백미현, 이세정, 정기현, 정정주 등 그룹 <두문불출> 작가들의 그룹전 ‘가(家)에서 출(出)하기’는 집의 의미를 찾아나선 그들의 세 번째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초봄 잠시 쉬는 짬에 햇살 따뜻한 테라스에서 휴식하는 어떤 사람을 담은 모습. 때로는 집 안보다 바깥이 더 따뜻하다. 작가 박준식
초봄 잠시 쉬는 짬에 햇살 따뜻한 테라스에서 휴식하는 어떤 사람을 담은 모습. 때로는 집 안보다 바깥이 더 따뜻하다. 작가 박준식 ⓒ 김기
이들의 공통 관심사는 집이다. IMF 이후 우리사회에 더 큰 무게를 갖고 다가온 현상 중 하나는 ‘집 없는 사람’들의 급격한 증가였다. 그렇게 집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최근 들어서는 TV광고는 고급아파트 광고전쟁이 한창이다. 아파트를 짓는 건설회사는 마치 필수사향인 듯 광고에 목숨 걸고 있다. 카피가 어떻게 포장되건 그 광고를 통해 사람들은 욕망을 부풀리게 된다.

그러는 한편으로 노마드적 충동으로 인해 여전히 집은 한번쯤 떠나고 싶은 것이 된다. 그것의 충족을 위해 여행도 떠나 보지만 그것 역시 돌아온다는 의미를 전제하기에 딱히 그 충동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룹 두문불출은 그렇게 떠남을 통해 집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 같다. 그들이 2004년부터 매달린 주제인 ‘집’은 처음에는 ‘두문불출’이었다. 꼼짝 않고 그저 집이라는 공간에 천착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을 지나 올해 그들이 지난 9일부터 인사동 모란갤러리에 옹기종기 모여 만든 주제는 ‘떠남’이다. 개성이 분명한 작가들이 그룹전을 위해 각출한 시간은 10개월이나 된다. 작년 8월부터 모여 이번 전시의 주제와 방법을 찾아왔고, 작가 개인들의 작품과 더불어 주제를 좀 더 선명하게 견인할 수 있는 공동작업의 소재로 서울역을 선택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것들을 작은 페트병에 담아 놓았다. 생명을 저축한 것일까? 사람은 저 페트병 같은 존재는 아닐까? 하고 묻는 것 같다. 작가 박광옥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것들을 작은 페트병에 담아 놓았다. 생명을 저축한 것일까? 사람은 저 페트병 같은 존재는 아닐까? 하고 묻는 것 같다. 작가 박광옥 ⓒ 김기
서울역은 고전적인 의미로 떠남의 상징이다. 또한 집 잃은 사람들이 첫 번째로 찾아가는 곳이다. 여기에 그룹 두문불출의 “가에 출하기’가 제안하는 떠남의 중의법을 엿볼 수 있다. 떠남은 만남이고, 소통의 출발이라는 점이다.

한용운의 명시 “님은 떠났어도 나는 님을 떠나보내지 않았습니다” 한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누구에게나 의식과 인식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이거나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걸맞은 표현이 필요하다.

그런데 두문불출의 표현은 대단히 일상적이다. 작가들에게는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흔히 설치작업에서 볼 수 있거나 혹은 기대하는 강렬한 표출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전시실을 돌다 보면 아직 준비 중인가? 하는 의문이 살짝 들 정도이다. 그저 페트병에 물을 채우고는 그것들을 몇 칸 쌓아놓고 그 곁에 소금을 양동이에 채워서 나란히 둔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들은 가족들과 함께 양평을 찾아 생활폐기물을 그러모아 설치를 하였다. 그것 역시 집. 그 집 안에 옹기종기 모인 그들의 아이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들은 가족들과 함께 양평을 찾아 생활폐기물을 그러모아 설치를 하였다. 그것 역시 집. 그 집 안에 옹기종기 모인 그들의 아이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 김기
한 때 최첨단이었던 한 아파트의 재개발 예정지에서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 위에 작은 동영상을 삽입한다. 그런가 하면 얼핏 보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햇살 비치는 커튼을 느린 속도로 영사하기도 한다. 소위 특별한 것이 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덤덤한 표출이 그들이 두문불출 이후 떠남으로 옮겨가는 ‘집’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고민을 무겁게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양평 강가에 버려진 폐기물들을 주워 모아 공동작업을 하고 그것을 영상에 담은 것들을 보고, 전시 오픈 전 이틀간 갤러리에 모여 만든 그들의 서울역에 들어가 보면 떠남이 우리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본능이었다는 것을 조용히 수긍하게 된다. 만화에나 등장할 벽을 뚫고 나간 사람의 모습. 한쪽 벽을 꽉 채운 하얀 깃털을 선풍기 바람에 푸드득 거리는 것이 마치 그 구조물 자체가 새의 몸짓을 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옆에는 서울에서 출발하거나 혹은 돌아온 기차표가 도배되어 있다. 이동수단이 다양한 듯해도 기차는 그런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낭만적 의미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낭만이 아닌 아주 단순하게 먹고 살기 위함이라는 현실에 닥친 문제를 말하기도 한다.

왼쪽부터 그룹 두문불출의 박광옥, 박미현, 김현진, 박준식
왼쪽부터 그룹 두문불출의 박광옥, 박미현, 김현진, 박준식 ⓒ 김기
앞서 말한 쓰레기장에서 발견한 매트리스에 젊은이들의 모습을 아주 작게 모자이크한 작품의 제목이 무릉도원이다. 설마 버려진 지저분한 매트리스에 무슨 행복이 있겠는가. 그러나 쉴 만한 집이 없다면 버려진 매트리스도 아주 행복한 잠자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새것으로 새집으로 들여놓고는 누군가도 그만한 행복감을 느끼며 포근한 잠자리로 떠났을 것이다. 지금은 버려진 그 속에서.

그룹 두문불출은 그렇게 지금은 버려진 의미들 혹은 잃고 있는 집에 대한 의미들에 대한 자신들의 고민 그리고 그 소통을 관객들과 하고자 하는 것 같다. 돌아갈 곳은 여전히 집인데, 돌아가기 위해서 떠나는 그 일상의 반복을 작가적 시선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전 시 명:    ‘가(家)에서 출(出)하기’전
전시일정:    2006년 6월 9일 - 6월 20일(오프닝 6월9일 오후 6시)
공동프로젝트 설치:  6월 7일 - 6월 9일
참여작가:    그룹 두문불출
              -박광옥・박준식・백미현・이세정・정기현・정정주・뮌(김민선・최문선 공동작가)
전시장소:    모란 갤러리 제 1,2 전시장 (02-737-0057)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197-28 백상빌딩 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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