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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우산리 내우마을에 있던 고인돌군.
순천 우산리 내우마을에 있던 고인돌군. ⓒ 김연옥
"우리나라는 거석문화(巨石文化)가 널리 분포된 나라이다"는 김건선 통영여고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순천 우산리 내우마을에 있던 고인돌군부터 보았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이다. 지난 2000년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일은 우리나라에 그만큼 고인돌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고인돌을 마치 먼 나라 이야기처럼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그날 나는 책 속의 고인돌이 아닌, 실제의 고인돌을 처음으로 보면서 왠지 부끄러웠다.

순천 우산리 내우마을 고인돌군은 남방식(바둑판식) 고인돌로 주검을 넣는 무덤방(石室)이 땅속에 있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上石)을 올려놓은 형식으로 그 사이에 받침돌(支石)이 있다. 덮개돌을 옮기려면 많은 사람들의 힘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 당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족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고인돌에서 출토된 간돌검, 돌화살촉, 붉은간토기 등의 유물과 선돌, 솟대, 그리고 복원하여 전시해 둔 화순 지역의 구석기시대 집을 구경했다. 이어 복원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움집을 비교해 보며 둘러보았다.

정교한 쌍봉사 철감선사탑의 아름다움에 폭 빠지다

3층 목조탑의 양식인 쌍봉사 대웅전.
3층 목조탑의 양식인 쌍봉사 대웅전. ⓒ 김연옥
우리는 오전 11시 10분쯤 신라의 승려 도윤이 창건하면서 자신의 도호(道號)를 따서 이름 지었다는 쌍봉사(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를 향했다. 쌍봉사를 들어설 때 우리를 처음 맞아준 것은 이리저리 쪼르르 뛰어 다니는 귀여운 다람쥐였다.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는 쌍봉사. 그러나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대웅전의 아름다운 모습에 내 가슴이 콩닥거렸다.

3층 목조탑 양식인 대웅전은 1984년 신도들의 부주의로 불타 버렸다가 1986년에 복원된 것이다. 나는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돌 위에 세운 대웅전 기둥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바람이 몹시 불던 그날 대웅전의 경쾌한 풍경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대웅전에서 세월의 질감이 느껴지는 극락전으로 오르는 길에 석축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긴 모양 그대로 돌을 끼워 맞춘 것 같다. 그 석축의 돌 하나, 하나에도 불심을 가지고 쌓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대나무 숲이 있는 길 따라 쌍봉사 철감선사탑과 철감선사탑비를 보러 갔다. 철감선사는 바로 도윤의 시호가 아닌가.

역사를 전공한 김건선 선생은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은 당시의 목조 건물을 재현한 형태로 통일신라시대의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부도탑이다"고 말해 주었다.

정교한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의 아름다운 모습.
정교한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의 아름다운 모습. ⓒ 김연옥
지붕의 겹처마, 막새를 장식한 연화문, 섬세하게 또르르 말려 올라간 연꽃 무늬, 구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굼틀거리는 용의 모습과 노래 부르는 듯한 극락조 등 정교한 철감선사탑의 아름다움에 나는 폭 빠져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 사천왕도 있었다. 그러면 그 부도(浮屠) 자체가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수미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
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 ⓒ 김연옥
비신(碑身)은 없어지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는 쌍봉사 철감선사탑비(보물 제170호). 그 거북은 왜 왼쪽 앞발은 땅을 짚고 있는데, 오른쪽 앞발을 들고 있는 걸까?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 모두들 의견이 분분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살아 있는 듯하여 금방 거북이 움직일 것 같아 보였다.

불가사의한 신비 간직한 운주사에서 울고 싶었다

우리는 오후 1시쯤 운주사(사적 제312호, 전남 화순군 도암면)를 향했다. 운주사 가는 길에 있는 음식점에 들러 맛있는 추어탕을 먹었다. 전라도식 추어탕은 얼큰하고 시원한 경상도식 추어탕과 달리 걸쭉하면서 독특한 맛이 있다.

동요를 부르는 어른들의 모임인 '철부지'의 고승하 선생과 남기용 선생이 멋진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리고 하모니카 연주까지. 식당에 있는 사람들 모두 즐거워했다.
동요를 부르는 어른들의 모임인 '철부지'의 고승하 선생과 남기용 선생이 멋진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리고 하모니카 연주까지. 식당에 있는 사람들 모두 즐거워했다. ⓒ 김연옥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련된 작은 음악회. 우리 일행 가운데 마침 동요를 부르는 어른들의 모임인 '철부지'의 고승하 선생과 남기용 선생이 있어 그날은 노래가 있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특히 남기용 선생의 하모니카 소리는 너무 좋았다.

천불천탑 운주사에서. 위에 있는 탑이 정감이 있고 예뻤다.
천불천탑 운주사에서. 위에 있는 탑이 정감이 있고 예뻤다. ⓒ 김연옥
운주사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벽을 사이에 두고 두 불상이 등을 맞대고 있는 석조불감이 보인다.
운주사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벽을 사이에 두고 두 불상이 등을 맞대고 있는 석조불감이 보인다. ⓒ 김연옥
천불천탑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천불산 운주사. 어느 절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석불과 석탑들이 있다. 모든 형식이 파괴되었다고 할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전통적인 석탑과 석불의 형식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그 나름대로의 일관성이 있어 형식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고정관념을 깨고 편견을 버려야 하는 곳이 바로 운주사이다.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북쪽 5m 지점에 있는 원형다층석탑이 보인다.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북쪽 5m 지점에 있는 원형다층석탑이 보인다. ⓒ 김연옥
팔작 지붕 형태의 불감 안에 벽을 사이에 두고 두 불상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바닥에서 탑 꼭대기까지 둥근 모습을 하고 있는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그리고 누워 있는 부부 와불 등 불가사의한 신비를 지닌 운주사에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운주사의 석불들.
운주사의 석불들. ⓒ 김연옥
운주사의 창건과 천불천탑의 건립이 도선국사에 의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하나, 운주사의 창건 시대와 창건 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그날 여행에서 내가 가장 감동을 받았던 곳이 운주사였다. 그곳에서 나는 너무 기뻐서 큰 소리로 웃고 싶었고 너무 좋아서 울고도 싶었다.

운주사의 부부 와불.
운주사의 부부 와불. ⓒ 김연옥
우리는 오후 4시에 운주사를 떠나 우리나라 선종이 처음 자리 잡은 보림사(전남 장흥군 유치면 가지산)에 잠시 들렀다.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3보림이라 부른다.

통일신라시대에 철로 만든 대표적 불상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117호)과 조선시대에 만든 것으로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목조사천왕상(보물 제1254호) 등을 보았다.

전라도 지방의 음식인 짱뚱어탕을 저녁으로 먹고 우리는 하루 동안의 여행을 끝내고 마산으로 길을 떠났다.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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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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