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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 시장은, 그야말로 안방극장의 '화약고'나 다름없다. 케이블 TV와 뉴미디어의 득세로 예전에 비해 지상파 드라마들의 시청률 하락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몇몇 안 되는 인기 작품들은 최근 들어 잇달아 내외적인 악재와 비판에 시달리며 유명세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드라마에서 시대극, 트렌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중 벌써 상당수의 작품들이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여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저마다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궁극적으로 국내 드라마의 제작여건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가족드라마에 진짜 '가족'은 없다?

드라마 부문 시청률 선두를 다투고 있는 SBS 주말극장 <하늘이시여>와 KBS 주말극 <소문난 칠공주>는 표면상 전형적인 가족드라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회 정서나 트렌드에 맞지 않는 자극적이고 과장된 설정으로 시대착오적인 드라마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영 초반부터 어머니가 자신의 친딸을 의붓아들과 결혼시켜 며느리로 맞이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던 <하늘이시여>는, 요즘 들어 주인공인 자경(윤정희)과 영선(한혜숙)간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조연 캐릭터들이 극중에서 하나둘씩 개연성 없는 죽음을 맞이하며 난데없이 '공포 스릴러'로 탈바꿈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또다시 4번째 연장방송을 결정하며 고무줄 편성으로 빈축을 사고 있는 이 드라마는 무리한 늘이기로 극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어이없는 '인물 죽이기'로 시간을 끌고 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소문난 칠공주>역시 가족드라마의 콘셉트와 걸맞지 않게 현실성 없는 무리한 설정의 남발로 비판을 받고 있다.

군인 출신 아버지와 네 자매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문난 칠공주>는, 매사에 과장된 군인 스타일로 집안을 호령하는 아버지(박인환)에서부터, 남편의 친구와 불륜관계에 빠지는 큰 딸(김혜선), 둘째 언니의 남자를 유혹하는 셋째(최정원), 혼전 임신으로 어린 나이에 결혼하게 되는 막내(신지수) 등, 극 전반에 걸쳐 '정상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찾기 어려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설정과, 시대착오적인 여성 묘사로 인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주몽>
<주몽> ⓒ MBC
<주몽>과 <서울 1945>의 역사 왜곡 논란

그런가하면 최근 시대극들은 때 아닌 역사왜곡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블록버스터 사극으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MBC 월화극 <주몽>은 방영 초기부터 등장인물의 복색과 병기, 시대 고증에서 문제가 있다는 비판으로 도마에 올랐다.

외교 현안으로 대두된 한-중간 역사분쟁이 두드러지고 있는 요즘, 사료가 부족한 고대 철기 문화의 극적 재구성이나, 고조선 멸망 이후 한나라의 식민통치에 대한 묘사는, 자칫 드라마가 '동북공정'의 역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이념과 갈등의 시대를 살다간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KBS 1TV 대하사극 <서울 1945>는 최근, '건국세력에 대한 비방'을 놓고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극중에서 몽양 여운형의 암살 배우에 장택상 당시 수도경찰청장이 개입되어있다는 설정과,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파와 손을 잡았다는 묘사 등이 보수단체들로부터 '친북편향의 좌익 드라마'라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

제작진은 이에 대하여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이라며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역사왜곡 논란에 대하여 단호한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시대적 해석과 이념 분쟁 등은 모두 그 시대 대중의 정서와 역사인식에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민감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문제이기에, 이 드라마들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 SBS
위의 작품들이 높은 인기에 따르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중이라면, 요즘 트렌디 드라마들은 반대로 낮은 시청률과 부실한 완성도, 시대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 진부하고 낡은 이야기 구조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최근 안방극장에 내로라하는 스크린 스타들에 이름값 있는 연출-작가들을 앞세운 작품들이 쏟아졌음에도 10% 이상을 상회하는 흥행작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젊은 드라마들이 침체에 빠져있다. '트렌디'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동시대의 현실적 고민이나 문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진부한 삼각관계나 출생의 비밀, 신파 같은 낡은 흥행공식에만 의존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요즘 들어 이처럼 드라마 시장이 장르를 불문하고 동시다발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드라마의 기획의도와 주제의식, 역사인식 등을 둘러싼 논란은 저마다 사연이 복잡하고 쉽게 정의내리기 어려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만큼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눈높이가 까다로워졌다는 시대적 반증이기도 하다.

극적 재미를 위한 선정적인 설정의 남발이나 고무줄 편성, 낡은 흥행공식의 답습이 한국드라마를 퇴행시키는 주범이라면, 시대극의 고증, 역사왜곡과 관련된 논란은, 드라마가 대중의 역사인식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사례로 분류된다.

드라마는 예전부터 그 시대의 정서와 트렌드를 반영하는 대표적 대중문화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는 한류의 상징으로까지 성장했다. 이것은 단순한 유명세를 넘어 드라마가 지닌 공적인 책임감과 시대적 소명을 자각해야하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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