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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1일 씨암탉
2006년 6월 11일 씨암탉 ⓒ 김환희

금요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아내의 표정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았다. 평소 꿈을 잘 꾸지 않던 아내는 지난 밤 꿈자리가 좋지 않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어젯밤 꿈에 엄마가 다리가 아프다며 우시는 꿈을 꾸었어요.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요."
"꿈은 반대라고 하지 않소. 그러면 전화라도 한번 해보구려."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권유하고 난 뒤 아무 생각 없이 출근을 했다. 그리고 아내의 꿈 이야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었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러왔다. 전화를 건 아내의 목소리가 축 처져 있었다.

"여보, 엄마가 많이 아픈가 봐요. 다리가 아파서 거동을 못하신데요. 제가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그러면 조심해서 다녀오구려."

아내와 전화를 끊고 난 뒤 왠지 모르게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건 사위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탓 때문인지 모른다. 또 한편으론 늘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에 대한 죄스러움 때문이리라.

젊어서 장인어른과 사별을 하고 난 뒤 혼자가 되신 장모님은 6남매(3남 3여)를 출가시키고 지금은 동해안 한 어촌마을에 혼자 살고 계신다. 육십 평생이 넘도록 자식에게 누가 되는 일은 추호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되는 일은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자식들이 힘든 일을 하지 말라고 권유해도 장모님은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 놀면 병만 더 생긴다며 고집을 부리셨다.

2006년 6월 11일 동해바다
2006년 6월 11일 동해바다 ⓒ 김환희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자식들에게 손을 내민 적이 단 한번도 없으셨다. 자식들이 모신다고 해도 바다가 있는 고향이 좋다며 완강히 거절하셨다. 사위집에 와서 하룻밤을 지내실 만도 한데 하루라도 바다를 보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다며 그 다음 날 바로 집으로 내려가시곤 하였다.

장모님에게 자식 사랑은 사위, 며느리 할 것 없이 똑같다. 매번 처가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처가 마당에는 미역과 오징어가 널려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장모님은 직접 바다에서 딴 미역과 오징어를 직접 손질하여 말려 자식들에게 똑같이 나누어주시곤 한다.

2006년 6월 11일 빨래줄의 오징어
2006년 6월 11일 빨래줄의 오징어 ⓒ 김환희
자식들을 향한 그 마음이 너무 큰 탓일까? 어지간히 아파도 병원에 가겠다고 하시지 않던 분이 이번에는 병원에 가보자고 아내에게 전화로 이야기한 것으로 보아 많이 편찮으신 것 같았다.

퇴근을 하자 식탁 위에 아내가 쓴 짧은 메모와 함께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난 뒤 시계를 보니 7시 30분. 갑자기 몸과 마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냥 집에 앉아 소식을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내려가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리나케 차를 몰아 처가로 향했다.

가는 내내 장모님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밤 11시가 되어 처가에 도착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내는 믿어지지가 않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방문을 열자 한쪽 다리에 붕대를 감은 장모님이 화들짝 놀라시며 나를 맞이했다.

"김 서방, 미안하네. 사위사랑은 장모인데 이렇게 누워있어 미안허이."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장모님의 말씀에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동안 사위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하기까지 했다. 그날 밤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장모님과 함께 자리에 누워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근함이었다.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바다를 찾았다. 잔잔한 바다 위로 저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도심 속에 찌든 마음의 병이 씻은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장모님이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역시 바다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었다. 가끔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지는 날은 이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덧붙이는 글 | 강원일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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