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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갈매기의 모습
한가로운 갈매기의 모습 ⓒ 김현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입니다. 생각이 고여 있으면 사고가 고착화되어 편협에 빠지기 쉽고, 생각이 너무 많으면 결단이 어려워져 늘 복잡한 머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말없이 흐르는 물을 보노라면 고인 생각도 없고, 많은 생각도 없는 듯 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따금 바다에 갈 때가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그 수평선 너머로 한가로운 듯 나는 갈매기들. 먹이를 찾아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이 한가하게 보이는 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렇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안가의 모습
해안가의 모습 ⓒ 김현
탐라의 한 바닷가에 섰습니다. 용머리 해안입니다. 이곳은 네덜란드의 상인 하멜이 표류하다 떠밀려온 곳이기도 합니다.

해변가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배(하멜 상선)가 건조되어 있습니다. 하멜은 널빤지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표류하다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상상해봅니다.

또 처음 이상하게(?) 생긴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을 발견했을 때의 당시 주민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하멜 상선의 배
하멜 상선의 배 ⓒ 김현
용머리 해안가는 오랜 세월에 파도에 씻겨 생긴 절벽의 모습이 기묘합니다. 꼭 여인의 손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모습 같기도 하고, 홈이 퐁퐁 파인 곳을 보면 역사의 상흔을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산방산 자락에 위치한 용머리 해안의 ‘용머리’는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듯한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합니다. 또 누룩을 쌓아놓은 듯 하다해서 ‘누룩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기도 합니다.

대체로 ‘용’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은 대부분 하나의 전설을 지니고 있게 마련입니다. 이곳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용머리 해안의 전설은 그 시원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 같습니다. 전설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파도에 씻기어 부드러운 절벽
파도에 씻기어 부드러운 절벽 ⓒ 김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제주의 용머리 해안의 형세가 앞으로 왕이 나타날 형세임을 간파하고 ‘고종달’이란 신하를 보내 용의 꼬리 부분과 잔등 부분을 칼로 끊어버렸다 합니다.

이에 바위에서는 많은 피가 흘러내렸고, 산방산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며칠 동안 괴로움에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전설이란 실존과 상상적 소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용머리의 전설은 강대국에 의해 약소국의 비상을 억압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진시황이 제주도의 형세를 알았을 리 만무하겠지만 세상을 빛 낼 왕의 출현을 기대하던 사람들의 소망이 무너짐을 당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라는 강자에 의한 횡포로 보고 그 소망을 간접적으로 표출시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 김현
해안을 따라 쑥 걷다보면 잔잔한 바다가 가슴을 시원스레 합니다. 그 바다 위로 몇 마리의 갈매기가 날고 있습니다. 세월의 파도를 타고 오랜 세월 저 바다 위를 날았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롭고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유영하는 갈매기들의 몸짓을 따라가기 힘듭니다.

푸른 바다를 한가로이 나는 갈매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이란 친구가 생각납니다. 먹고 날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날아오른 조나단. 혹 저 갈매기들 중에도 조나단과 같은 갈매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동물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지요. 갈매기라고 합니다. 갈매기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 헤어지지 않고 정절을 지키며 살아간다 합니다.

특히 특기할 만 것은 거의 완벽한 평등 부부라는 것입니다. 갈매기는 남편과 아내의 구분 없이 모든 일을 반반씩 나누어 일을 한다고 합니다.

헌데 연구에 따르면 근래 들어 갈매기들의 이혼율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언지 아시나요. 자식을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면 가차없이 헤어진다고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 성격 차이, 고부간의 갈등 등 여러 가지 이혼 사유가 있지만 자식 양육 문제로 이혼을 했다는 소린 못 들었는데, 갈매기는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이혼을 한다고 하니 인간의 이혼 사유보단 좀 더 고차원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김현
바다와 갈매기, 그리고 전설이 묻어 있는 해안가에서 모처럼 가슴을 열고 상상하는 즐거움에 빠져 걷는데 소라 껍데기를 파는 할머니 한 분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니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소라 껍데기를 귀에 데어 봅니다.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파도 소리 같기도 하는 소리가 '위이잉' 하며 들립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아이들 생각이 납니다. 아이들에게 바다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에 두 개를 샀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건 사서 뭐하게요?" 하며 웃습니다. "아이들 갖다 주려고요" 했더니 또 한 번 웃으며 그냥 지나갑니다.

흔하디 흔한 소라 껍데기를 사는 이유를 그 사람은 이해가 안 됐겠지만 아빠의 마음은 사소한 것에서도 묻어남을 알까요. 바다를 떠나는 등 뒤로 갈매기가 더 놀다가라고 손짓하는 듯 합니다.

물에 내려 앉으려는 순간
물에 내려 앉으려는 순간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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