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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대학가 등에서 요란했던 "가출한 집전화기를 찾습니다" 이벤트는 LG텔레콤 광고로 밝혀졌다. 사진은 LG텔레콤 '기분존' 서비스 티저광고 한 장면.
지난 4월 대학가 등에서 요란했던 "가출한 집전화기를 찾습니다" 이벤트는 LG텔레콤 광고로 밝혀졌다. 사진은 LG텔레콤 '기분존' 서비스 티저광고 한 장면. ⓒ LG텔레콤 자료
요즘 "전화번호가 뭐예요?"라는 물음에 집 번호를 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처럼 '전화'의 대명사가 '집전화'에서 '휴대폰'으로 바뀐 지 오래다.

섭섭함이 북받쳤을까? 멀쩡한 집전화가 갑자기 가출(?)하나 싶더니 LG텔레콤에서는 집 전화요금보다 싸다는 '기분존' 서비스를 내세워 순식간에 1만여 가입자를 끌어 모았다. 이에 맞서 KT에서는 문자서비스 등 휴대폰 기능을 갖춘 전화기 '안(ANN)'을 내놓고 보상판매까지 하며 '집전화 구출 작전'에 나섰다.

KT 입장에서야 '기분 나쁜' 일일지 모르지만, 사실 휴대폰에 밀려 집전화 가출이 늘고 있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다. 집전화(유선전화)는 이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마는 것일까?

집전화 가출? 우리 집은 실종 10년째!

자취 생활 10년에 접어든 나 또한 초기에는 휴대폰과 집전화를 모두 설치했었다. 그러나 휴대폰이 있는데 굳이 따로 집전화를 쓸 일이 없어 곧 해지한 기억이 있다. 하루종일 울려대는 휴대폰과는 달리 한 달이 지나도 벨소리 한 번 듣기 힘든 집전화.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휴대폰 벨소리를 바꾼 뒤 잘 바뀌었는지 확인한다거나 아주 심심한 날에 집전화로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 내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끔 집 전화번호조차 가물거릴 정도였으니.

또한 매달 통화료의 몇 배나 되는 기본요금만 축내는 죄 없는 집전화기를 원망하며 '이번 달에는 끊으리, 이번 달에는 끊으리' 다짐하곤 했다.

그때부터였는지 모르겠다. 휴대폰 없이는 인간관계조차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게. 처음 만난 사람들과 연락처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휴대폰 번호가 아닌 집 전화번호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한 번 더 유심히 보개 됐다.

막상 그들에게 전화를 걸 일이 있으면 항상 그 집 어머님, 아버님이 전화를 받으시고 예전 집전화 전성기 때처럼 '○○집이죠? ○○있나요?'라고 묻는 것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친구가 전화받으면 첫 마디가 '아 쫌! 휴대폰 하나 사! 이 궁상아!' 하고 외치곤 했다.

교환원을 반드시 거쳐 통화해야 했던 70년대 공중전화.
교환원을 반드시 거쳐 통화해야 했던 70년대 공중전화. ⓒ 정통부 자료
추억으로 남은 '집전화 전성시대'

버튼 없이 달랑 수화기만 달려 꼭 교환원을 찾아야 했던 60~70년대만 하더라도 전화기는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이후 지금과 같은 자동식 전화기가 선을 보이면서 가정용 전화는 국민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비비 꼬인 전화선을 만지작거리며 밤새도록 통화를 하거나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며 전화기가 놓여 있는 거실이나 안방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 700서비스의 시작으로 151 사서함 서비스, 어린 학생들의 폰팅, TV의 전화 연결 프로그램 등 유선전화기로 만들어진 문화는 헤아릴 수도 없었다. 또 발신번호가 뜨지 않는 것을 악용한 장난전화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나 또한 아주 어린 시절, TV에서 86아시안게임 방송을 보다가 심심함을 금치 못해 장난전화를 생각해냈다. 차별화된 아이디어. 119도, 중국집도 아닌 114. 차분한 목소리의 교환 언니가 전화를 받자 난 "지금 받으신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고 잘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웅얼거렸다. 이에 교환 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모님 어디 계시니, 바꿔 봐."
"헉… 지금 안 계세요."

이런 걸 속된 말로 '말린다'라고 하던가. 교환언니의 '포스'에 그대로 '말려버린 것'이다. 장장 30여분에 걸친 상담과 꾸중을 듣고서 난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어린 마음에 큰 잘못을 한 것 같아서.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환원분이 무척 심심하셨던가, 아니면 한 통의 장난전화라도 뿌리 뽑으려는 노력이었지 싶다.

이뿐이랴, 멋모르고 빠져든 700서비스로 전화요금이 100만원 넘게 나와 전화국에서 직원들이 급파되고, 호적에서 파느냐 마느냐를 놓고 가족들과 심각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직 호적에는 내 이름이 남아있다.

1960년대 13만명에 불과했던 유선전화 가입자수는 1987년 1000만명을 돌파하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다. 1997년 2000만명을 돌파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2000년대 휴대폰에 밀려 상승세가 꺾이며 현상 유지에 급급한 처지다. 반면 '1인 1전화 시대'를 연 휴대전화 가입자수는 3900만명으로 유선전화의 2배에 육박했다.

단순한 음성통화 기능뿐 아니라 문자서비스, 카메라, TV, MP3플레이어 등 온갖 디지털 기능이 붙은 휴대용 복합 디지털기기로 계속 변신해가며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공중전화와 집전화의 변신

KT에서는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공중전화의 변신을 선언했다. 공중전화에서 발신자번호 표시기능도 추가하고 휴대폰보다 싼 요금에 문자도 보낼 수 있게 하는 등 다양한 부가기능을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집전화라고 가만 둘 리 없다. KT는 문자서비스 및 모닝콜, 알람, 자동응답 등 휴대폰 못지않은 다양한 기능을 갖춘 집전화기를 내놓고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휴대폰의 기존 기능을 본뜨는 데 그쳐 집전화에서 마음이 떠난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이 집전화보다 사용료가 몇 배나 비싼 휴대폰을 고집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 한발 앞서 새 기능을 추가하는 신속함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휴대폰의 기능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현재의 위치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집전화 구출 작전? KT는 문자메시지 등 휴대폰 기능을 갖춘 집전화기 '안(Ann)' 보상판매로 '기분존' 서비스에 맞불을 놨다.
집전화 구출 작전? KT는 문자메시지 등 휴대폰 기능을 갖춘 집전화기 '안(Ann)' 보상판매로 '기분존' 서비스에 맞불을 놨다. ⓒ KT 자료
가출한 집전화들이 돌아올 날은?

56-5604.

내가 기억하는 우리집 첫 번째 전화번호이다. 5604, '오륙도 공사'라 하여 전화번호도 쉽다고 좋아하시던 어른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사용되지도 않는 2자리 국번. 이후 국번이 세 자리가 되고 네 자리가 될 때까지만 해도 이러다가 5자리, 6자리까지 늘어나면 외우기 힘들어서 어쩌나, 하는 고민까지 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휴대폰의 출연으로 이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집전화를 사용하지 않은 지 10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한 달 통화료가 기본요금에도 못 미치는 집전화가 수두룩한데 이 치열한 통신시장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집전화기뿐 아니라 유선전화 서비스의 혁신적인 변화 없이는 나 역시 다시 집 나간 전화를 다시 찾고픈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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