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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은 7일 오전 당사에서 의원총회를 갖고 향후 당 진로를 논의했다. 김근태, 김혁규 최고위원과 김한길 원내대표, 의원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칫국부터 마실 때가 아니다."

이른바 '김근태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의 말이다. 7일 중앙위원회·국회의원 연석회의가 끝난 뒤 '이제 된 거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또 다른 인사는 "권한만 강력하면 뭐하나 (비대위) 인선도 안됐는데…"라며 중앙위원회가 비대위로 사실상 전권을 넘겨준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권한이 크면 클수록 책임도 늘어 난다. 그만큼 리스크(위험도)가 높은 게임이다.

불안한 추대

'만년 2인자 김근태'가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중진 8인'으로 구성된 인선위원회(위원장 이용희)가 비대위 체제를 꾸리게 된 마당에 '김근태=비대위원장'은 기정사실화된 분위기다. 인선위원 8명 중 5명이 '김근태 추대'에 찬성하고 있다는 근거에서다. 문희상·이부영·신기남·임채정·김한길 등이 그렇고, 김덕규·유재건·이용희 등은 반대쪽이다.

소극적 찬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안한 과반이다. 아울러 3명의 반대가 강력한 목소리를 낸다면 밀어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근태계의 한 인사는 의원총회가 끝난 뒤 "연석회의가 길어질 수도 있겠다"며 우려했다. 총회에서 '김근태 불가론' 주장이 상당수 나온 까닭이다. 한 참석자는 "대변인 브리핑이 상당히 걸러졌다"고 분위기를 달리 전했다.

조경태 의원은 "대선주자는 제외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이석현 의원은 '미봉책'이라는 입장이었다. 김성곤 의원은 "특정 계파를 대변해선 안된다"고 우려했고, 송영길 의원도 "계파 중심을 초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복심 의원은 김근태 의원의 개혁 노선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 불필요한 빌미(좌파 논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의 존폐 위기에서 꾸려진 비상 지도부라는 점에서 보자면 불안한 추대다.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줘도 될까말까한 상황에 여기저기서 '힘 빼기'가 진행되고 있다.

당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정동영계의 겉내와 속내가 좀 다르다. 한쪽에선 "추락하는 비행기의 랜딩기어를 누군가는 잡아야 한다"(정청래 의원)고 말했지만, 다른 한쪽에선 "중립적 인사로 당을 혁신해야 한다(김혁규·조배숙)"고 반대하며 견제구를 날리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지방선거 이후 한국갤럽의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김근태·정동영은 각각 1.8%와 1.6%로 나타났다. 둘은 줄곧 엇비슷한 바닥세를 보여왔지만 백의종군을 선언한 정동영 전 의장에 비해 김근태 의원에겐 '치고 나갈' 기회가 부여된 셈이다.

이런 계파적 시각과 별도로 반대 여론은 여전히 살아 있다. "김근태가 등장할 조건과 시기가 성숙되지 않았다"는 논리의 '고언 그룹'이다. 초기엔 김근태계 내에서도 이 같은 의견이 우세했다. 당내 전폭적 지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결국 김근태 의원 본인이 "독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승부수를 던져 정리되었다.

'김근태 비토' 그룹은 아니지만 초·재선 사이에서 '대안 부재론=김근태'로는 당을 살릴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무능에 더해 인물마저 없는 정당으로 국민에게 인식될 우려가 있다"는 논리다. 또 김근태 의원이 전임 지도부라는 점에서 "새롭게 출발한다"는 인식을 주는데도 한계가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재천 의원은 "40대 재선그룹에 맡겨 당이 완전한 혁신구조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당직자는 집권여당 사상 최초로 '여성 당의장'을 내놓는 파격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조언한다. 인선위원회는 이처럼 당 밑바닥에 도는 의견들까지 최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 비대위 인선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4가지 시험대

▲ 김근태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이 7일 오전 당사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기침을 한뒤 손수건으로 닦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김근태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이 된다는 전제로, 그가 짊어질 과제 또한 만만찮다.

① 지도부 인선권 얼마나 쥘까
우선 함께 손발을 맞출 비대위원들을 선정하는 일이다. 인선위원회에서 김근태 의원에게 얼마나 권한을 줄지 아직 미지수다. 중앙위원회로부터 인사권, 재정권은 물론 당헌 개정권까지, 전례 없는 권한을 부여받아 강력한 리더십의 위상은 갖춰졌지만 인선을 통해 '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정동영계의 한 의원은 "결국 계파별 안배가 불가피하지 않느냐"고 말했고, 조경태 의원은 "선수, 성별, 지역, 연령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눠먹기식으로 가다간 공멸이라는 위기의식이 당면한 현실이다.

② 계파 갈등이냐 혁신이냐
지방선거 참패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당내 노선차가 분출할 공산이 크다. '부동산 세제 완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보수화 경향에 대한 여론의 호된 질타를 받고는 한발짝 물러섰다. '개혁' 색깔의 김근태 의원이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노선도 선명하다. 아울러 외부의 '개혁 vs 실용 = 김근태 vs 정동영'이라고 치환하려는 시도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당 혁신이 아닌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③ 노 대통령과 '계급장 떼고' 한판?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문제를 놓고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며 노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던져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 의총에선 의원들이 노 대통령에 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대통령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넓다. 당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사실상 '역탄핵'이라며 '재창당'을 위한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 놓고 있지만, 노 대통령은 "선거 한두 번 졌다고 민주주의 후퇴 아니다"라고 말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리고 아직은 탈당할 시점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당·청 갈등은 정책노선으로 불거질 공산이 크다.

④ 정계개편 논의 어디까지
비대위의 임기는 최대 내년 2월까지다. 정기 전당대회 전까지다. 그 사이 물밑에선 다양한 수준의 정계개편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계파별 방법론이 저마다 다르다. 중도보수 성향 의원들의 고건 영입론, 수도권·호남 의원들의 민주당 통합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영남 친노'쪽은 반대다. 김근태 의원은 고건·강금실·박원순·이수호·문국현 등을 모두 아우르는 범민주세력 대연합론을 주장해 왔다. 당내 이견은 물론 여론의 역풍도 고려해야 한다.

대권 레이스, 도약이냐 좌절이냐

모처럼 2인자 딱지를 뗄 그에게 "잘해야 본전"이라는 우려가 더 많다. 시험대의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앞으로 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 성과는 내년 대권 레이스로 직결된다.

김근태 의원은 의원총회가 열린 날, 당사에 머리카락을 바짝 자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유를 묻자 다음처럼 답했다.

"화도 나고 해서…(웃음). 우리가 잘못이 많다. 선거 결과 참담하지 않았나. 여성들만 머리 자르는 게 아니다. 우리(남자)도 결심하면 자른다."

그의 결기가 어떤 리더십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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