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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일보>는 7일자 지역종합면에서 최근 확산된 김제 지역 살생부 논란에 관한 새 단체장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전라일보>는 7일자 지역종합면에서 최근 확산된 김제 지역 살생부 논란에 관한 새 단체장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다. ⓒ 전라일보
살생부 저널리즘이 부활했다.

선거가 끝나면 의례히 등장했던 몹쓸 '편 가르기 병'이 어김없이 도지고 있다.

민선 4기 출항을 한 달여 앞두고 지방정가에선 인사 루머가 계속 흘러나오고 언론은 이를 열심히 주워담는 형태다.

신문사들마다 마련한 '의제 바구니'엔 온갖 살생부 시나리오가 재포장돼 담기고 있다.

'5·31 민심의 쓰나미'가 할퀴고 간 자리엔 참패와 압승의 두 코드가 선명하게 그려지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참패지역이건 압승지역이건 어두운 '살생부' 그림자가 밀려오는 듯한 모습이다.

"OO는 좌천될 것", "OO는 살생부에 올랐다"는 등 지방 관가에 나도는 유언비어에 사람들은 다시 귀를 쫑긋 세운 모습이다.

지방선거 후폭풍을 보도하던 언론사들이 갑자기 숙청의 피로 물든 '계유정란'의 주인공인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살생부를 연상하게 하고 있다.

출처 불분명한 살생부, 어두운 그림자로 떠돌아

<전북일보>는 7일 고정칼럼 '오목대'에서 선거 직후 떠도는 살생부 논란에 대해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전북일보>는 7일 고정칼럼 '오목대'에서 선거 직후 떠도는 살생부 논란에 대해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 전북일보
살생부는 이미 선거전부터 예고된 시나리오였다는 해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체 없는 살생부 논란은 또다른 살생부를 불러올 수 있다며 경계하는 시각도 엿볼 수 있다.

'새로운 수장의 등장이 정체된 공직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출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거 막판 줄대기가 극심했던 일부 지역에서는 출처가 불분명한 살생부가 밑도 끝도 없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특정 정당이 압승한 지역이건, 참패한 지역이건 살생부가 거론되는 건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그러나 누가 암운에 휩싸인 살생부를 생산하는지 등 살생부의 실체를 쫓기보다는 실체가 불분명한 내용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는 분위기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열린우리당 출신이 광역단체장으로 선출된 전북 지역엔 살생부가 제법 빨리 나돌았다. 실체는 불분명하다.

이 바람에 해당 광역단체의 국·실장들은 좌불안석이라는 지적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당선자와 사사건건 부딪치며 서로 인신공격을 퍼부을 만큼 지역의 민원과 현안을 놓고 갈등의 골이 깊었기 때문이다. 몇몇 간부들은 퇴출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설이 한차례 나돌기도 했다.

살생부는 보복차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새전북신문> 사설.
살생부는 보복차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새전북신문> 사설. ⓒ 새전북신문
출처 불분명한 '살생부' 선거 끝나면 늘 '술래잡기'

이러한 설을 일축하기 위한 언론의 보도행태도 갖가지다. "보복성이 있는 살생부나 물갈이 등 지방 관가의 여러 루머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보복차원의 인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새전북신문>의 5일자 사설은 이러한 실상을 반증해 준다.

이 사설은 "이번 선거 결과 단체장이 바뀌게 될 전북도를 비롯한 9개 시・군지역에서 새 단체장 취임을 앞두고 나도는 살생부는 지역발전과 화합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북일보>의 7일자 고정칼럼인 '오목대'에는 '5·31 살생부'란 제목으로 선거 기간 중 대립각을 세웠던 후보들 간의 감정대립이 공직사회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실렸다.

그런가 하면 <전라일보>는 이날 '살생부는 낭설'이라는 기사에서 새 기초단체장의 발언을 크게 인용 보도하는 한편 "인사에 개인감정이 절대 개입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5·31 선거 직후 기획시리즈 주된 이슈, '악성루머'

광주·전남지역도 후유증이 확산되기는 마찬가지. <무등일보>는 5․31 지방선거를 결산하는 기획시리즈에서 선거 후유증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했다.

<무등일보>는 6일 '우려되는 선거후유증'이라는 기획기사에서 이번 선거로 교체될 15곳의 시장・군수・구청장의 주변에 초점을 모았다. 이 지역 당선자들의 경우 현직 단체장과 피 말리는 싸움에서 승리했으며, 선거 과정에서 정치공무원들에 대한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 기사는 주목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에서는 살생부가 나돌면서 공직사회가 술렁거리고 있다"는 한 구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향후 인사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정치 공무원들을 비판하기 위한 의도로 엿볼 수 있지만 논공행상에 따른 갈등과 앙금도 크게 우려했다.

<대전일보>도 유사한 의제를 기획 시리즈로 다뤘다. <대전일보>는 '민선 4기에 바란다', '인사가 만사'란 기획기사에서 민선 4기 대전시장과 충남도정을 책임질 수장이 모두 새로운 인물이란 점에 초점을 맞추고 접근했다.

이 기사는 "선장들이 모두 바뀌면서 가장 먼저 나오는 소문들이 바로 인사와 관련된 것들"이라고 전하며 파다한 루머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살생부까지 나돈다"고 주장한 이 기사는 "문제는 이러한 인사와 관련된 흐름이 지방자치 발전이나 공직사회 안정과 전문성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도 선거만 끝나면 악성루머가 나돈다"며 우려했다.

<대전일보>는 "논공행상의 정실인사, 보복인사 등 루머가 나도는 것은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정치공무원들 때문"이라며 이러한 괴소문의 생산자들을 꼬집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지역 인터넷신문인 <디트뉴스 24>는 '앞서가는 언론 살생부 있나, 없나'라는 기사에서 "지방선거 후유증으로 후폭풍을 보도하는 언론들이 살생부를 거론하며 공직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살생부 논란을 주요 의제로 연일 다루는 지역신문들의 보도행태에 일침을 가했다.

대전 충남 지역 인터넷신문 <디트뉴스 24>는 살생부와 관련된 갖가지 보도 행태들과 반향을 진단했다.
대전 충남 지역 인터넷신문 <디트뉴스 24>는 살생부와 관련된 갖가지 보도 행태들과 반향을 진단했다. ⓒ 디트뉴스 24

<영남일보>는 선거 후 공직사회가 줄서기와 편 가르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내용을 1면에 부각시켰다.
<영남일보>는 선거 후 공직사회가 줄서기와 편 가르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내용을 1면에 부각시켰다. ⓒ 영남일보

"OO은 살생부 대상"... 출처는 과연 어디?

영남 지역에서도 지방 정가에서 살생부가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국제신문>은 5일자 사설 '지자체 논공행상・보복인사 안 된다'에서 선거 결과 부산에서만 16개 구・군 가운데 10곳에서 기초단체장이 바뀌고 경남 지역에서도 열린우리당 및 무소속 후보가 6명이나 당선돼 공직사회가 다가올 인사태풍으로 동요하고 있다고 경계했다.

이 사설은 또 "일부 지역에서 살생부가 나돌고 어느 곳에서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고 전했다. 이 사설은 모 구청장이 조례까지 바꿔 전임자의 측근을 쫒아버린 과거의 사례까지 들며 "파행인사를 반드시 바로잡지 않으면 악순환은 되풀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국제신문>은 '인사태풍 살얼음판'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에서도 살생부설에 몸살을 앓는 지방 공무원들의 실상을 전했다.

<영남일보> 6일자도 선거 후 나도는 살생부와 공무원들의 속사정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공직사회 선거후유증 몸살'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는 "아무개 공무원은 어느 후보 사람, 또다른 아무개 공무원은 살생부에 올랐다는 등 루머가 각 지역마다 나돌고 있다"고 지적한 뒤 "공직사회의 편 가르기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청송군수 당선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처럼 새로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취임하는 7월을 앞두고 전국 지자체가 '줄대기 바람'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지역 언론사들은 뜬금없이 나돌곤 하는 살생부 쫒기에 여념이 없다.

<국제신문>은 선거 후 몰아칠 인사 후유증을 살얼음판에 비유해 보도했다.
<국제신문>은 선거 후 몰아칠 인사 후유증을 살얼음판에 비유해 보도했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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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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