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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미암일기>(보물 제260호) 판본이 소장된 '모현관' - 2004년 10월
ⓒ 한지숙
인터넷으로 주문한 <미암일기>가 도착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가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 남태윤님의 갤러리 '시나위'에서 - 2004년 10월
ⓒ 한지숙
2년 전 가을 전남 담양에서는, 6인의 도예가들이 그들의 작업장을 전시장으로 꾸며 가사문화권을 더불어 돌아볼 수 있게 배려한, 알찬 행사가 열렸다. 그때의 여행담을 미처 풀어내지 못한 채 사진으로만 아쉬움을 달래던 가운데, 어느 도예가가 적극 추천한 덕에 들른 후 마음자리에 곱게 여며, 담양 여행길이면 꼭 다시 찾고 싶었던 곳이 바로 미암의 체취가 남은 연계정과 모현관이었다.

▲ 그해 가을, '모현관'을 한가운데 두고 너른 연못에 드리워진 연잎 - 2004년 10월
ⓒ 한지숙
<미암일기>(眉巖日記. 보물 제260호)는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인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이 개인사를 친필로 기록한 일기이다. 야트막한 언덕 위의 소박한 정자 '연계정', 미암일기 판본을 보관하고 있는 '모현관', 연못 한가득 드리워진 연잎의 수런거림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잔잔하면서도 평화로웠던 그 가을의 잔상이 늘 잊혀지지 않았다.

▲ 맨먼저 눈에 뜨인 것은 '살림살이'였다.
ⓒ 한지숙
미암 개인의 일기이지만 16세기 양반가의 의식주와 조선시대 여성의 가사생활의 기록을 엿볼 수 있는 <미암일기>를 받자마자 '차례'부터 훑어 내려갔고, 그 가운데 <살림살이-9.임금이 미암의 관복을 하사하다>에 이르러 눈이 번쩍 뜨인다.

'희디흰 모시베 백설처럼 새하얗네(皎皎白紵白如雪)' (중략) /
'당신이 창문 앞에 앉아서 바느질하던 그적에(憶昔君在突前縫)'


그러면 그렇지. 한 쪽을 넘기자마자 모시 이야기며 바느질 이야기며, 내가 궁금했던, 진정 보고 싶은 장면이 펼쳐진다.

▲ 올 여름에 찾은 '모현관'엔 연잎 대신 개망초가.
ⓒ 한지숙
조선시대 관복(冠服) 등 복식 용어가 낯설고 어려워 사전을 뒤적여 가며 눈높이에 끼워 맞추기도 하고, 사모와 이엄 등 머리에 쓰는 것이 고전 속에 녹아내린 장면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의 나래도 펴 본다. 미암의 부인 송덕봉(宋德峯)은 의복을 짓기도 했으나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고 한다. 위의 시구(詩句)는, 조선시대 문신인 번암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부인과 사별하고 지은 시로, 당시 여성들의 옷 짓는 모습을 열여섯 줄의 7언 절구(七言節句)로 표현한 것이다.

▲ 아청(鴉靑 야청)색은 검푸른(darkish blue) 빛깔을 말한다. 5월, 모시에 쪽염
ⓒ 한지숙
'미암은 평소 입고 있던 바지저고리 위에 철릭을 입었다. 그리고 단령을 껴입은 뒤 머리에는 사모와 이엄을 쓰고 허리에는 각대를 둘렀다.'

'아청색 무명베의 단령 하나, 초록색 명주베의 답호 하나, 하늘색 명주베의 철릭 하나, 흰색 모시베의 철릭 하나, 흰색 명주베의 토수(손목싸개)와 행전(다리싸개) 하나, 흰색 비단 적삼 하나, 검정색 사슴가죽으로 만든 신발 등 출퇴근에 필요한 의복 일체가 들어 있었다.'

▲ 미암이 후학을 가르치고 시회를 즐기던 연계정(蓮溪亭).
ⓒ 한지숙
'주상으로부터 하사받은 의복을 받아 손수 상자를 열어 확인을 한 미암은, 곧 뜰로 내려가 무릎을 꿇고 대궐을 향해 네 번 큰 절을 올렸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 눈에 어른거리는 유희춘 할아버지의 옷매무새를 떠올리며 나도 함께 공손한 마음이 되어본다.

▲ 화려한 외출, <미암일기>에서.
ⓒ 한지숙
물들이고 바느질하는 짬짬이 들여다보며 나의 요즘 관심사와 더불어 공부해 보고 싶은 욕심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참 좋은 이야깃거리를 하나 만났다.

옛 의복과 관련된 용어는 어떤 것이 있을까

* 철릭 : 직령(直領:깃이 곧은 겉옷)으로, 허리에 주름이 잡히고 넓은 소매가 달린, 무관이 입던 공복의 한 가지.
* 사모(紗帽) : 관원이 관복을 입을 때 쓰던, 검은 사(紗)로 만든 모자로, 오늘날에는 흔히 전통 혼례 때 신랑이 쓴다. 오사모(烏紗帽).
* 이엄(耳掩) : 관복을 입을 때 귀를 가리기 위해 사모 밑에 쓰던, 모피로 된 방한구.
* 단령(團領) : 조선 시대, 깃을 둥글게 만든 공복(公服)의 한 가지. 벼슬아치가 평소 집무복으로 입던 옷.
* 각대(角帶) : 벼슬아치가 예복에 두르던 띠를 통틀어 이르는 말. 각띠.
* 답호(쾌자(快子)) : 조선 시대에, 벼슬아치가 입던 관복 또는 군복의 한 가지. 조끼 모양이며 뒷솔기가 단에서 허리께까지 트였고 길이가 두루마기처럼 길다. 전복(戰服).
* 토수(토시) : 한복을 입을 때 팔뚝에 끼워 추위나 더위를 막는 제구. 한 끝은 좁고 한 끝은 넓게 생겼는데, 겨울용은 비단·무명 따위로 만들고 여름용은 대나무, 등나무 따위로 만든다. 투수(套袖).
* 행전(行纏) : 한복 바지를 입었을 때, 발목에서 장딴지 위까지 바짓가랑이를 가든하게 둘러싸는 물건. 각반(脚伴).
* 적삼 : 윗도리에 입는 홑저고리. 단삼.

덧붙이는 글 | 옛 선인들의 '(문화)살이'에 관심이 많습니다.
미암의 개인기록사인 일기를 통해 
그 시절 의식주(衣食住)를 들여다 보고
때에 맞춰 계절에 맞춰
공부해 가며 읽고 싶은 '미암일기'입니다.

'조간경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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