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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현
몇 몇은 긴 하품을 하고
몇 몇은 끄덕끄덕 고개질 하고
여우잠 스치는 꿈결에 누굴 만나는지
배실 배실 침 흘리며 웃다가
네 이 녀석!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튀어 오른 침줄기
낄낄낄 클클클 키득키득 거리다
어머! 저 침 좀 봐 하며 웃는 소리에
교실엔 잠시 파도 같은 진동이 울려 퍼진다.

그 짧고 신선한 시간, 잦아지길 기다리다
자, 우리 책과 한 판 겨루기 해야지
넌짓 우스갯소리로 공부하자 하면
눈빛 좋은 진이가 은근 화제를 돌린다.
선생님, 교실 밖 화단 보셨나요?
장미꽃이 참 예뻐요 하는 소리에
눈을 시나브로 안본 척 돌려보니
붉은 장미가 무리무리 피어 열정을 토해내고 있다.
오래 전부터 피었을 꽃들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 김현
잠시 창가 너머 아름다움에 한눈파는 사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북소리
쉬-잇!!!
북소릴 향해 귀 쫑긋 세우니
가람이의 코에서 나는 소리이네
이를 어쩌나
깨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멀똥한 아이들 눈을 바라보니
일제히… 쉿…!
깨우지 마세요 네? 하는 눈빛

가람일 제외한 채
이제부터 침 흘리거나 코고는 사람
복도로 나간다 엄포하니
꼿꼿한 허리춤을 세우고 눈망울만 가물가물
녀석들 눈꺼풀에 저울추 달았나
하는 찰나에 한 녀석 벌떡 손들고
화장실 갔다 오면 안 되나요?
끄덕끄덕 신호를 보내니
물 컵을 들고 나간다
화장실에 웬 물 컵? 하면
아시잖아요 헤헤헤 저 능청스러움

그러다 나른한 5교시 마치는 종소리 울리면
일제히 책상머리에
낮은 포복 자세로 엎드리는 열여덟의 숙녀들,
그래 자거라
잠은 보약이란다


여름과 함께 맞이하는 5교시는 절인 배추 마냥 축축 쳐져있습니다. 점심 후의 식곤증에 더위까지 스멀스멀 책상 위로 기어와 아이들의 눈꺼풀을 노곤하게 합니다.

아이들의 그 졸음을 막아보려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 사람과 졸음을 핑계로 수업을 단축시키려는 아이들의 긴장감 아닌 긴장감이 잠시나마 졸음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게 하지만 일시적 현상일 뿐입니다.

ⓒ 김현
특히 여학생들은 여러 생리적인 현상에다, 수시로 먹는 아이스크림 같은 차가운 음식에 이상이 생겨 화장실을 자주 갑니다. 요즘 아이들은 화장실 갈 때면 손을 들고 "저 화장실이요" 하고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화장실 갈 때 꼭 물병이나 컵을 들고 갑니다. 웬 물 컵? 하면 애교 섞인 웃음 한 번 보내면 그만입니다.

생리적인 현상에 의해 조퇴를 할 때도 떳떳하게 이야길 합니다. 그런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보면 참 좋아 보입니다.

예전엔 남교사 앞에서 말 못해 끙끙댔는데 요즘은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이야길 하곤 합니다. 아직 쑥스러워 친구를 통해 이야길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 의식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더위와 함께 찾아오는 몸과 정신의 노곤함.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참고 참으며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쳐듭니다. 그러다 간혹 자신도 모르게 꾸벅꾸벅 좁니다.

옛날 우탁이란 시인은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라고 노래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 노래를 해야 할까 봅니다.

한 손에 연필 잡고 또 한 손에 결심 쥐고
졸리움 연필로 막고 오는 잠 굳은 결심으로 치려하니
졸음이 제 먼저 알고 눈꺼풀 타고 오더라.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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