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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고이즈미'를 노리는 일본 정계의 실력자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최근 들어 그의 위치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후쿠다 전 관방장관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그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2004년 7월 11일 도쿄의 자민당 본부에서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당원들 이름 위에 붉은 장미꽃을 꽂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와 박수를 치고 있는 아베 신조(오른쪽).
'포스트고이즈미'를 노리는 일본 정계의 실력자인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최근 들어 그의 위치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후쿠다 전 관방장관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그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2004년 7월 11일 도쿄의 자민당 본부에서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당원들 이름 위에 붉은 장미꽃을 꽂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와 박수를 치고 있는 아베 신조(오른쪽). ⓒ AP/연합뉴스

작년 9월, 나는 도쿄에 있었다. 선거 전날이었던 9월 10일, 시부야에서 열렸던 고이즈미의 최종 유세 현장의 그 뜨거운 열기는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고이즈미의 '개혁' 마술 지팡이에 홀린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의 연설에 연신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고, 일부는 디카와 핸드폰 카메라에 고이즈미의 모습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네들의 상기된 표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찔함과 아연함을 느꼈고,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날의 선거에서 자민당은 의석수의 70%를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고이즈미와 아이들, 그리고 한국

당내 기반이 턱없이 취약했던 고이즈미가 일약 폭발적인 인기로 총리가 되고 5년이나 집권한 배경에는 '자민당을 깨부시는 한이 있어도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호언장담이 있었다.

자민당의 낡은 계파 정치에 오랜 염증을 느꼈왔던 일본 국민들에게 혜성처럼 나타난 그의 등장은 새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는지도 모른다. 탁월한 미디어 정치를 구사하며 단호한 구원자의 이미지를 구축한 그는,'고이즈미 극장'이라고도 불렸던 기막힐 정도로 능숙한 상징 조작을 통해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보수적 관료들과 사회 각계의 기득권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그는 시장원리주의를 도입했고, 이로 인해 '1억 중산층'의 신화를 자랑했던 일본은 신자유주의의 격랑 속에서 급격하게 '격차 사회'로 전락해 갔다.

그리고 이 '격차 사회'의 음울한 사회심리가 퇴행적인 내셔널리즘이 창궐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고, 역설적으로 당내의 가장 반동적인 극우파가 꿈꾸었던 상태가 현실이 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고이즈미 식의 이미지 정치가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일본의 허약한 시민사회가 있다.

일본에서 양자의 관계는'단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따로 굴러간다. 그 거대한 격절의 공간 속을 메우는 것이 매스 미디어인데, 이 미디어를 확실하게 장악한 고이즈미의 원맨쇼로 일본의 암울한 미래가 결정된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사이의 그 긴밀한 연동 관계는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줄곧 생각해 왔다.

오랜 민주화 운동으로 축적되어 온 시민사회의 활력과 역량이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개혁 정권을 탄생시켰고, 이 10여년의 세월 동안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회 개혁의 버팀목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양자 간의 역동적이고 건강한 선순환 관계는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이번 5.31 지방 선거를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상하이에서 지켜보면서,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연동 관계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엄습해 왔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개혁한 것은

지난달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도두리에서 군인들이 논과 도로에 겹겹이 바리케이트를 설치하자 한 주민이 항의하다 지친 듯 도로에 앉아 있다.
지난달 14일 오전 경기도 평택 도두리에서 군인들이 논과 도로에 겹겹이 바리케이트를 설치하자 한 주민이 항의하다 지친 듯 도로에 앉아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 경제적 민주화에 실패한 현 정부를 국민들이 표로서 심판한 것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 열린우리당이 내세웠던 민주 대 독재의 구도는 이미 시대착오적이며, 오늘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신자유주의와의 대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의 몰락의 충격파가 시민사회와 진보 진영에까지 파급되는 것은 안타깝고 또, 심히 우려된다.

열린우리당의 참패가 민주노동당의 약진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귀결된 데에는 범개혁 세력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불신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실패로 범개혁 진영의 동반 몰락마저 걱정해야 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돈도 조직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국민적 지지를 발판으로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오랜 보스 정치에 신물이 났던 젊은이들에게 거침없는 언변을 구사했던 그의 정치 스타일은 참신해 보였고, 뭔가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리라는 바람도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한 것도 탄핵이라는 엽기적인 자충수를 두었던 지역주의 정당과는 다른 모습을 신생 정당에게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가장 열심히 '개혁'한 것은 한국 사회의 전면적인 신자유주의적 재편이었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와 그의 충실한 후계자들인 '고이즈미 아이들'이 열렬한 신자유주의자들인 것처럼 말이다.

일본의 그 탄탄하던 중산층이 붕괴되고 '격차사회'로 변해간 것처럼, 한국의 양극화도 나날이 심각해져만 갔다. 군사일체화로 가는 퇴행적인 미-일 동맹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참여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해 주었고, 평택에 군대마저 투입해 주민들을 진압하기도 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참여정부를 탄생시켰고 스스로 개혁적임을 자임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현 집권 세력이 팔아먹고 있는 그 '개혁'과 '민주'의 환상적 주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서 작년 9월 10일, 시부야에서 고이즈미에 열광했던 일본의 젊은이들이 연상된다면, 이는 과연 지나친 과장일까?

시민사회, 개혁정부와의 애증 관계를 청산하라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세력이 거침없는 기세로 부활하고 있다. 20세기의 역사 박물관에 처분시켜야 할 그들을 다시 복원시킨 건 '의식 수준이 낮은 국민들'이 아니라 현 집권 세력이다. 그들의 무능과 실정이 야기한 민생 파탄이 보수의 귀환을 가능케 하는 기름진 토양을 제공한 것이다. 마치 일본에서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극우파의 재림을 야기했던 처럼 말이다.

따라서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최악의 상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참여정부'에 대한 인식을 정확하게 해야만 한다. 열린우리당과 함께 침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민사회와 진보 진영은 한층 더 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부여잡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제도적 '민주주의'에 안주해 '민주'를 자칭하는 신자유주의 정권과의 비판적 거리 두기와 전면적 대결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민사회는 개혁정부 8년여 동안 이어진 끈적거리는 애증 관계를 청산하고, 한시라도 빨리 재출발에 나서야만 한다.

아직도 과거의 아련한 추억의 향수에 빠져, 옛 사랑에 미련을 못버리고 미적미적거리다가는, 거대한 반동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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