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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도깨비 난장이 한창인 6월 3일 오후 1시 고슴도치 섬 숲속 무대. 해맑은 표정을 가진 몇 명의 아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모두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자신감 있어 보이는 얼굴들. 그 아이들은 인천 성동학교 청각 장애학생들로 이루어진 마임 동아리 '동그라미'였다.

청각 장애 학생들은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런 그들이 언어가 없는 마임공연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까. 무대에 올라간 그들은 진지한 얼굴로 공연을 시작했다.

'미션 임파서블'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마임을 시작하는 그들. 아이들은 정말 힘차게 그리고 당당하게 세상을 향한 그들의 '언어'를 외치기 시작했다.

▲ 2006년 6월 3일 동그라미 마임공연 '생활속 리듬을 찾아서'
ⓒ 심유정
비록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그들이지만 무대에서 마임을 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시간이고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소외받는 장애우가 아니었다. 주인공이었다. 세상의 중심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 몇 가지 질문을 하기로 했다. '동그라미'를 이끌고 있는 서준환 선생님을 만났다.

- 학생들과 마임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자부심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인천 성동학교는 개교 40주년을 맞아 마임공연을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마침 유진규 선생께서 학교에 직접 찾아와 3년간이나 아이들에게 마임을 가르쳐주셨고, 지금은 문화관광부에서 나온 김정연 선생님이 있어 마임과의 인연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 '동그라미'를 이끌고 있는 서준환 선생님
ⓒ 심유정
- 춘천 마임축제와는 어떤 인연인지?
"2006 춘천마임축제를 담당하고 계시는 유진규 선생님의 권유로 이 축제에 참가하게 됐다. 올해로 7년째 공연하고 있다."

- 오늘 공연했던 '생활 속 리듬을 찾아서'라는 마임공연의 기획 의도는?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음악에 맞추어 즐겁고 흥겨운 마임을 선보이고 싶었다. 아이들이 표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제일 하고 싶은 것 위주로 극을 구성했으며 두 달 동안 아이들이 직접 준비해 만든 공연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 어려운 점이 있다면?
"공연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눈빛과 감정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반인만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면서 극을 준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열의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우리 학교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말하고 듣는데 불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쉽게 접하기 힘든 '마임'이라는 것에 도전했다. '마임'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일반인들과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학생들의 언어인 수화를 배운다면 더욱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싶다."

다음으로는 '동그라미' 김미래 학생과의 대화 내용이다. 인터뷰는 서준환 선생의 수화로 이루어졌다.

- 마임을 직접 공연한 느낌은?
"너무 재미있다. 게다가 평소에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어려운 점이 많은데 마임을 할 때만큼은 그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몸짓, 표정 하나하나에 환호해주고 기뻐해주며 이해해주는 모습들이 너무나 고맙고 기쁘다. 그리고 같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극을 준비하고, 공연할 때의 뿌듯함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 정말 열심히 공연에 임하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의사소통이 매우 힘들다. 그래서 서로의 감정이나 느낌, 그리고 눈빛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고 극을 준비한다. 그것이 서로간의 마음을 더욱 열리게 하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어려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무대에 올린 마임공연인데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지 않을 때 속상하다. 그 외에는 어려운 점이 전혀 없다."

▲ 김미래 학생
ⓒ 심유정
- 마임을 배우고 나서 변하게 된 점은?
"몸짓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말하고 듣는 아이들이 약간은 부러웠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도 대화할 수 있다. 언어는 아니지만 나의 마임공연을 보고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 내가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자신감을 더욱 가지게 된 것 같다. 마임을 시작하며 선생님을 비롯해 친구들과 더욱 가까워지고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저번에 친구와 사소한일로 마음이 토라졌던 일이 있었는데 방과 후에 마임준비를 함께 하면서 나도 모르게 화해를 한 적이 있다. 마임을 배우고 나서 나타난 그러한 소중한 변화들이 나로 하여금 더욱 마임에 몰두하게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에게 마임을 가르쳐 주고 계신 선생님들께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서 마임극을 만드는 친구들에게 고맙고, 무엇보다 마임, 그 자체에 감사한다. 마임은 나에게 새로운 삶의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잘 모르지만 나는 꾸준히 마임을 공부하고 익혀서, 세상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동그라미'팀에게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처음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하지만 뒤이어 '최고'라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그제야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들에게 인사해주었다.

마임은 그런 것이 아닐까. 언어는 분명 편리한 수단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언어로도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는 것이 '마음' 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들에게 다가와 하나의 의미가 된다.

'동그라미'는 그렇게 마임을 하고 세상과 대화하며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들 그리고 편견이라는 장벽과 함께.

▲ '동그라미'학생들
ⓒ 심유정

덧붙이는 글 | 최진홍 허우진 김보람 조영미 심유정이 함께 취재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 신문 뉴스토피아에 게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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