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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당선이 확실시되자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부인 송현옥씨와 함께 축하 꽃다발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5.3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당선이 확실시되자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부인 송현옥씨와 함께 축하 꽃다발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경제 문제 다음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외교다. 동북아의 불안정한 현 상태를 생각해 보면 특히 더욱 그러하며 참여정부는 그 중요한 시기를 지금 관통하고 있다. 외교문제 또한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에서 한국 외교의 핵심인 한미동맹의 문제를 중심적으로 논하고자 한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데, 한미관계 소원?

보수 세력이 진단하는 한미관계의 현 주소는 "친북좌파정권이 북한에 퍼주기만 하면서 상대적으로 한미관계는 소원해졌다"는 말로 요약된다.

마침 지난 5월 1일 주일미군 재편에 관한 미·일 최종 보고서가 나온 이후 미일 군사일체화가 가속되면서 "미일동맹은 강화되는데 왜 한미동맹은 소원해지는가"라는 볼멘소리가 다시 터져나오고 있다. 이틀 뒤 <동아일보>가 '강화되는 미일동맹, 흔들리는 한미동맹'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쓴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대북정책 중에서 언론이 가장 심하게 왜곡하는 대목 중의 하나가 바로 '퍼주기'인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퍼준' 것들 합쳐봐야 김영삼 정부에서 '퍼준' 약 2억6천만 달러보다 적다.

'친북적'이라는 말을 듣는 노무현 정부로서는 억울할 만도 한 것이 정권 초반부터 대북 특검을 전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남북관계가 경색되기도 했었고, 대북지원과 북핵문제를 연계하기도 해서 오히려 김대중 정부에 비해 남북관계가 후퇴한 면도 있다.

내 주변에만 하더라도 친북좌파정권인 노무현 정권이 나라를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려고 하고 있다는 소문이 횡행하는 편인데, 적어도 현 정권이 친북적이라는 말은 매우 근거가 희박하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간혹 큰 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매우 '잘'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미군기지 이전이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그리고 FTA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원해왔던 것 중 얻지 못한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왜 한편에서는 한미동맹의 소원함을 말하는 것일까?

김영삼 정부보다 덜 퍼줬어도 '친북'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새로운 동북아 전략에 잠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련의 붕괴와 9·11테러는 미국으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 지배력을 강화하도록 요구했다. 냉전이 한창인 시절에는 북한과 남한이 각각 공산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의 첨병으로서 소련·중국과 미국·일본의 방패막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체제 경쟁이 한창일 때 미국 입장에서는 (소련에게 북한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남한이 자신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자 하는 하나의 선전장이자 군사요충지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시절에는 미국이 그야말로 목숨 걸고 '한강문명'을 지켜야 할 전략적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전 지구적인 냉전이 거의 와해된 지금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난 상황이다. 남한의 GDP는 북한보다 25배나 많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이언 라포트는 한국군만으로도 북한의 군사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9·11 이후 안보 상황은 비정규 테러집단에 대한 대응이 중요해지면서 미군의 전반적인 재편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모든 상황 변화는 남한의 전략적 가치가 예전과는 매우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목숨 걸고' 한강문명을 지킬 이유가 없어졌다. 휴전선 근방의 제2사단을 한강 이남으로 옮긴다는 상징적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구한말 조선 땅에 들어온 서구 열강에게 있어 조선은 교과서에 써있는 그대로 그들의 '전쟁터'에 불과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반도와 일본은 그 군사전략적 가치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천하의 몽고군이 일본 땅에 발도 못 붙인 역사적 사례는 단지 옛날 얘기만은 아니다. 주일미군의 새로운 재편 내용 중 핵심이 미1군단 사령부의 일본 이전인데, 아무리 한미관계가 돈독하다고 하더라도 군단사령부를 한반도에 두기는 쉽지가 않다.

중국과 육로로 연결된 한반도에서 300만 인민해방군을 감당하기란 미국도 벅차다. 일본은 섬나라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있는 것이고 한반도는 반도국으로서의 전략적 가치가 있다. 전체적인 군사력은 중국이 앞설지 몰라도 지금에도 중국군은 일본 땅에 상륙하기 전에 일본 해군에 의해 모조리 수장당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미국에 있어 일본의 가치와 한국의 가치는 여전히 천양지차임을 우리는 냉엄하게 직시해야 한다. 일본은 사실상 제1세계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이 일본과 군사일체화에 나선 것은 미국이 이제 일본과 더불어 세계 재패의 길에 나서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밀월관계는 역설적이게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를 살려 둔 것은, 한반도는 물론이고 당시 무주공산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만주까지의 지배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만주국 정부 수반이었던 기시만큼 적임자가 미국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미국에 있어 조선의 자존심이나 식민지배 청산 등등은 염두에도 없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소련의 남하와 중국공산화를 막을 것인가가 지상과제였고 그를 위해서라면 일본을 통한 한반도와 만주의 재지배도 미국에게는 바람직한 대안이었다. 그 와중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가 미국에 의해 반환 대상에서 빠지게 되기도 했다. 차기 일본 총리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아베 신조는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이다.

지난 2003년 5월 15일 한미 정상회담 뒤 결과를 설명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지난 2003년 5월 15일 한미 정상회담 뒤 결과를 설명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 청와대
일본은 넘버2, 한국은 넘버3

한국전쟁이 어정쩡한 휴전으로 끝난 것은 미국과 일본의 이러한 프로젝트에 큰 오점임에 틀림없다. 물론, 지금 미국과 일본이 군사일체화를 통해 다시 한반도와 만주를 지배하자고 나선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점은 미국과 일본의 동맹관계는 한미동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전략적 의미가 역사적으로도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그 하나의 예가 60년대 일본의 '미쓰야 계획'으로서, 유사시 미국의 묵인 하에 일본군이 한반도로 진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 일본과 군사일체화를 강화하면서 주한미군에 전략기동군을 배치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넘버2'에 보다 큰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일관계의 역사적 일관성에 잘 부합하고 있다. '넘버2'와 '넘버3'가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것보다 확실한 위계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관리하기 편리함은 상식이다.

남한의 전략적 가치 변화와 미일동맹 강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는 것이 사실이다. 미군의 새로운 기지가 평택으로 정해지고 거기에 전략기동군이 상주한다는 것은, 예컨대 중국-대만 양안간의 분쟁에 미군이 개입했을 경우 중국 동해안의 둥펑 미사일이 평택으로 날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말하지만, 국가안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적 가능성보다도 '구조적 개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시중에는 대만의 2008년 올림픽 직전 독립선언을 사전에 저지하기 위한 중국의 2007년 대만정복 시나리오가 다 나와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미일동맹과 비교해 한미동맹의 위상이 차이가 나는 것은 남한 정부가 미국에 밉보여서가 아니라 미국의 이해와 관심이 변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에 있는 것을 두고 그것이 한국정부의 무능한 외교력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기본적으로 일본정부의 역사인식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관계가 예전만 같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모조리 외면한 채 좌파정권이 자주외교하려다가 미국에게 왕따 당한다고 단순하게 평하는 것은 사태파악을 완전히 잘못하고 있거나, 오로지 정권비판을 위해서 국가의 중대사를 왜곡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미국은 자신의 이해를 위해 남한을 수단시해 왔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파병이니 자주외교니 하고 나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왜 지금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체결을 서두를까? 내가 보기엔 경제적인 문제는 부차적이다.

노무현은 '반미' 딱지가 억울할 것이다

경제블럭을 만드는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미국의 안보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최신 시리즈를 보면 결국 문제가 됐던 것이 '무역연합'이었는데, 이 영화가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칼 맑스가 알았다면 무덤에서도 놀랐을 게 분명하다.

현 정부가 FTA에 급히 매달린 이유는 바로 급변하는 동북아의 안보 상황에서 어떻게든 미국의 보호막 속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목숨 걸고 '한강문명'을 지켜줄 명분도, 또 그렇게 지켜 주던 2사단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의 경제시장'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반도를 단순한 '전쟁터' 이상으로 여기게 할 좋은 계기임이 분명하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는 이러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미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삐걱대는 한미동맹에 대해 과연 어떠한 책임을, 또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인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국내정치나 다른 사회 문제들에 대한 '심판론'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이제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자는 <조선일보>의 6월 1일자 사설을 보면 현 정부의 과거사 정리, 행정부처 이전, 양극화 해소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사사건건 편가르기를 하면서 증오의 정치를 한다는 주장도 이 일간지의 전매특허에 속한다.

일본 천황폐하 사진을 1면 머리에 올리고 역대 독재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해 온 <조선일보>가 과거사 문제를 좋아할 리가 없다. 한일관계에서도 보듯이, 과거사 문제는 국민들이 피곤한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피곤해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과거사 문제 때문에 할 일을 못해서 국민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현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 이유로 우리가 정말 현 정부를 심판했다면, 우리는 내일 당장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에 침묵해야 마땅하다.

참여정부가 사사건건 편가르기를 통해 증오의 정치를 해 왔다는 것도 보수언론으로서는 염치없는 지적이다. 오히려 보수진영들이 자기 주장에 맞지 않는 다양한 의견들을 좌익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편을 가르고' 또 증오해 오지 않았던가.

"내가 공부할 때 화염병 들던 운동권들이"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제3투표소가 마련된 근내리 마을회관앞에 주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제3투표소가 마련된 근내리 마을회관앞에 주민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마지막으로 현 정부의 '태생적 원죄'에 대해서 잠시 언급해야겠다.

내가 만나 본 소위 각계 '전문가'들이 현 정권에 대해 가장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소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동안 화염병 들고 데모하던 무식한 운동권들이 갑자기 나라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하필이면 대통령이 대학도 못 나온 상고출신이라 '무식한 노무현이 뭘 안다고…' 하는 정서가 아주 팽배해 있다. 정권 초기 각종 보수인사들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는 천출의 대통령을 섬길 수 없다는 그들의 귀족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일반 유권자들의 이중적인 성격이다. 자기는 직장에서 학벌 때문에 온갖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나라님만큼은 번듯한 대학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네 정서이다.

전셋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집값이 6억원 넘는 부자들의 '세금폭탄'을 걱정하고, 변호사들의 이중 플레이에 분노하면서도 그런 변호사가 압도적 표차로 시장으로 당선되는 상황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우리네 정서를 수백 년 동안이나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구성해 온 우리의 역사에서 찾을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나보다도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그 갸륵한 마음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마는, 유신시절의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이 근본임을 깨달아"야만 했던 결과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는 점도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민심은 천심이다

황우석 사건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나는 우리 사회가 일종의 거대한 '매트릭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과학자의 길을 살아가면서, 과학자로서의 내 양심과 본능이 여론의 1%에 속한다는, 그리고 다른 99%의 사람들이 나와 다른 편에 있다는 두려움은 멀쩡한 세상이 나를 미치게 한다는 고흐의 심정을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만약 유권자들이 보수언론과 기득권 세력의 논리에 완전히 동의해서 한나라당에게 몰표를 주었다면, 나는 다시 한 번 그 끔찍한 '매트릭스'의 악몽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대부분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조작되거나 과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명한 우리 유권자들이 그런 판단으로 '심판'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심판은 비유컨대 < PD수첩 >에 대한 성급한 심판과도 같을 수가 있다.

정부와 집권당은 어찌되었든 국정에 무한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여기에 일차적인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그 또한 합리적인 사회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정권에 대한 '심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심판하고 싶은 것은 그 너머에도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민심은 천심이다.

심판은 내려졌다. 그러나 그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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