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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사상최악의 참패를 당해, 당사에 마련된 선거상황실이 썰렁하다.
5·31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사상최악의 참패를 당해, 당사에 마련된 선거상황실이 썰렁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번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압승이라기보다는 열린우리당의 참패다. 이를 두고 수구세력이 돌아온다느니, 조·중·동에 놀아났다느니, 국민 수준이 삼류라느니 따위의 경거망동은 하지 말자.

87년 이후 20여년간 민주화 시대를 살아오며 축적된 한국 시민사회의 역량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민생이 파탄 나고 민초들의 삶이 고달픈데도 집권여당이 승리한다면 그야말로 그 나라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고장 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집권세력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리만큼 정확했으며, 그 평가에 걸맞은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을 뿐이다.

선거 완패를 목전에 둔 열린우리당은 "민주·개혁 세력의 몰락을 막아 달라"고 읍소했었다. 스스로를 '민주세력'으로 규정하고 '반민주세력'인 한나라당의 독주를 제지해 달라며 표를 구걸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애처로운 호소에도 국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는 민주·개혁·평화 대 독재·수구·냉전이라는 대립구도가 더는 현실성을 갖지 못하는 낡은 패러다임임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수명 다한 '민주 대 반민주' 패러다임

절차적 민주주의는 직선제를 쟁취한 87년 이래로 착실히 뿌리를 내려왔다. 97년에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되었고, 2002년에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의 역동성에 힘입어 참여정부가 탄생하기도 했다.

이를 인정하지 않은 구세력들이 국회에서 대통령을 탄핵하는 구태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이 총선에서 이를 단호히 심판했으며, 헌법재판소는 판결을 통해 식물 상태였던 대통령을 현업에 복귀시켰다.

이는 한국의 절차적, 제도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은 거듭된 시행착오와 혁신 속에서 20여년 동안 줄곧 정비되어 온 것이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도 변해왔다. 특히 탄핵이라는 자살골 이후로는 그 변화의 속도와 강도가 두드러진다. 서울시장 선거를 진두지휘했던 이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원희룡이다. 사무총장은 이재오이고, 경기지사로 당선된 이는 김문수다.

그들도 80년대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주역들이었다. 한나라당은 이들을 당내로 흡수하고 전면에 포진시킬 만큼 민주화에 적응한 것이다. 저들에게 침을 뱉고 욕을 퍼붓든, 술자리에서 잘근잘근 씹어대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거듭났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10여년의 야당 세월 속에서 한나라당은 처절한 학습과정을 통해 '민주적'인 보수정당으로 자력갱생했다. 이제는 한나라당을 '보수꼴통'이라고 칭하는 자칭 '개혁세력'이야말로 세상의 변화에 둔감했던 건 아닌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노무현'을 탄생시켰던 국민경선제도를 활용해 오세훈을 시장후보로 선출하는 한나라당의 놀라운 응용력과 기동력을 보라. 그들은 이제는 총과 탱크로 정권을 탈취했던 20세기의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민주 대 독재'의 대립구도를 반복하는 열린우리당의 안이한 현실인식이야말로 구시대적이며 수구적인 것은 아닌지 되물어 보아야 한다. 즉 그들의 사고와 언어가 여전히 80년대에 갇혀 있거나, 아니면 권력 유지를 위해서 '민주'를 팔아왔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거듭난 한나라당'을 인정해야 할 때

5월 31일 저녁 오른쪽 뺨에 반창고를 붙이고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사에 마련된 5·31지방선거 개표 상황실을 찾은 박근혜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5월 31일 저녁 오른쪽 뺨에 반창고를 붙이고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사에 마련된 5·31지방선거 개표 상황실을 찾은 박근혜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과 현 정권을 차갑게 외면하고 사실상 탄핵한 이유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2006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요구하는 민주주의란 예전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민주화였기 때문이다.

현 집권세력은 오늘의 한국이 요구하는 새로운 민주화 요구에 너무나도 무력했고 무능했다. '국민의 정부'로부터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개혁정부 시절,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오히려 후퇴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정도다.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심판이 한나라당의 대승으로 끝난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기회가 될 수도 있으리라.

개혁 우파의 쇠퇴로 인해 90년대 이래 한국 정치 지형도를 틀지었던 '개혁 우파 대 보수 우파'의 양강 구도가 급격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그동안의 양강 구도가 얼마나 기형적인 정치질서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즉 개혁 우파의 내부 분화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라는 정책 대결 구도로 재편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이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것은 물론 시민사회의 몫이다. '개혁정권' 8년여 동안, 그들의 개혁성에 희망을 걸고 애매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시민사회는 87년의 그 거대한 활력을 다시 회복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는 결코 제도적 완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면 선거철이 돌아오고 투표만 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80년대 거리에서 피 흘리며 요구했던 그 '민주'도 법률적인 틀과 선거제도의 도입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5·31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자기반성과 각성이다. 이른바 민주화세력들이 정치권을 접수하면서 한 발 뒤로 물러나 방관자로 안주했거나, 기껏해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희미해져 가는 지난날의 사회의식을 인터넷에 배설하는 것만으로 만족해 왔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타성에 젖어서 정권을 잡은 민주화세력의 진면모를 못 보거나 혹은 외면했던 건 아닌지도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어쩌면 스스로 개혁적임을 의심치 않는 사람들의 관습적인 사고가 열린우리당을 망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각을 통해 '개혁정권'과의 미묘한 애증관계 속에서 번뇌했던 시민사회가 예전의 그 특유의 역동성과 자율성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5·31 선거는 민주주의의 질적 심화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정당의 참패가 곧바로 역사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혁우파'의 몰락...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시민사회의 몫

진보는 역사의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부단한 자기성찰과 자기혁신을 반복함으로써 진보로서의 생명력과 자기정체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시대의 변화에 탄력 있게 대응하는 역동성과 운동성이야말로 참된 진보다움이다.

오늘의 진보가 감당해야 할 제1의 시대적 과제는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달성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EU헌법 비준 거부를 계기로 유럽은 '사회적 유럽' 노선을 모색하고 있으며, 남미에서도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신사회주의 운동이 실험 중에 있다. 한국도 신자유주의를 탈피한 대안적 노선을 적극 모색해 나가야 한다.

군사파시즘 시대의 '진보'였던 민주화세력은 이제 그 명을 다했다. 그들은 그 나름의 역사적 소임을 마치고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다. 다만 그 한 줌의 권력 유지를 위한 퇴행적인 이합집산을 도모하면서 마지막 모습마저 추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개혁정권에 위임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는 다시 정치세력으로부터 시민사회로 넘어왔다. 이제 역사의 향방은 온전히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참여정부의 최대 업적은 무능과 무기력으로 스스로 몰락함으로써, 나른해진 시민사회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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