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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둥이, 길동이 입니다.  눈이 참 슬퍼보입니다.
업둥이, 길동이 입니다. 눈이 참 슬퍼보입니다. ⓒ 양지혜
이사 짐 정리를 하고 있던 어제. 버릴 것과 정리할 품목들로 널브러진 집안은 온통 어수선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 일로 하루종일 시달린 터라 저녁밥 준비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황을 눈치챈 남편이 닭튀김이나 먹자고 해 아이의 손을 잡고 치킨 집으로 갔다. 고소한 닭튀김과 시원한 맥주 한잔에 상쾌해진 기분으로 아파트 출입문을 들어서는 순간, 낮에도 아이들 틈에 있던 눈에 익은 강아지가 졸래졸래 우리 뒤를 따라 왔다. 퍼그 종류라 집안에서 기르던 녀석이 분명하건만 밤10시 컴컴한 길에 있다니.

그때였다. 강아지를 살짝 안아든 아이가 "엄마, 얘는 민우 강아지야. 민우가 왜 강아지를 깜깜한 밤에 혼자 놓고 갔지? 내가 데려다 주고 올게"하며 옆 동 민우네 아파트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어둠 속에서 남자 한 분이 대답을 한다.

"그 강아지는 우리 강아지가 아니야. 누가 버렸나 본데..." 바로 민우 아빠란 분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민우란 아이가 하루종일 데리고 노는 것을 본 우리는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다.

강아지는 물조차 못 먹은 듯 기운이 없어 보였고, 배를 만져보니 역시 홀쭉해 있었다. "그럼 누구네 강아지예요?"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경비 아저씨가 나오셨다. "아침나절에 어떤 할아버지가 버리고 갔어요. 누가 데려다 키우라고 방송을 해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했더니 그냥 놓고 갔네요."

헉! 아니, 강아지를 버리는 것은 무슨 경우고, 누구더러 데려다 키우라고 했단 말인가? 황당한 상황이 수습이 안 되는데 강아지는 아이 품이 안심되는지 폭 안겨 있었다. '어쩌지...' 찰라이지만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일은 하루종일 유기 된 상태이니 음식을 먹이고 밤이슬을 피하게 해줘야만 했다.

남편 눈치를 살피는데 아이가 "아빠, 엄마, 이 멍멍이 우용이가 데리고 갈 거야. 어서 맘마도 주고 물도 주고 그러자" 한다. 남편은 "안돼. 우리 이사해야 하고, 그곳에는 강아지 키우면 안 된다는데..." 아이를 만류했다. "그럼 이 밤중에 굶어죽으라고 여기 둘 순 없잖아요. 일단은 데리고 가서 뭘 먹여야겠어요."

남편이 난감해 하고 있는 사이 경비 아저씨와 민우 아빠란 분도 끼어 들어 일단은 먹이고 나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상황을 눈치챈 듯 아이는 강아지를 품에 안은 채 벌써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 강아지를 목욕부터 시켰다. 마침 작년에 하늘나라에 간 우리 강아지 용품을 정리해 둔 것이 있어 다행이었지만, 사료는 버린 터라 급한 마음에 장조림을 삶아 식빵과 함께 잘라 주었다.

아이가 '길동이'를 앉혀놓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길동이 모습을 그려주더군요.
아이가 '길동이'를 앉혀놓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길동이 모습을 그려주더군요. ⓒ 양지혜
하루종일을 굶은 강아지는 차려준 음식을 순식간에 먹더니 그제서야 꼬리를 치며 아이에게 장난을 건다. 아이는 "불쌍한 녀석"이라며 자기가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연신 종알거리며 약속을 해댔다.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의 얼굴에는 곤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안되겠다 싶어 아이를 달랜 뒤, 베란다의 이동 장 속에 강아지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낯선 환경 탓과 사람 손길이 아쉬운지 연신 유리문을 긁어대며 낑낑거리는 업둥이. '큰일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업둥이가 안쓰럽고, 앞으로의 문제가 걱정이 돼 남편과 상의를 하러 서재로 살그머니 들어섰다. 그러나 남편은 눈치를 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무심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 "길동아 나 지금 잘 거야. 너도 무서운 꿈 꾸지 말고 잘 자. 밤에는 맘마 먹지 말고... 우리 엄마가 밤에 맘마 먹으면 뚱뚱이 된대. 안녕 내일 또 만나자." 긴 인사말 소리에 무심한 척 있던 남편도 나도 한참을 웃었다.

강아지를 목욕시키며 길에서 얻은 친구니까 길동이라고 하자며 내가 지어준 이름인데 금세 기억을 했던가 보다. 그러나 길동이는 눈치도 없이 좀 전보다 더욱 심하게 낑낑거리며 유리문을 긁어댔다. 걱정이다. 이러다간 당장 아랫집에서 난리 날텐데...

그런 내 마음 졸임을 알았는지, 어느새 아이가 다시 나와 길동이를 달랜다. "길동아, 내 방은 저기고 니 방은 베란다야 어서 자고 내일 만나. 뭐라고? 내가 버릴까봐 그런다고? 난 너를 버리지 않아. 너 많이 슬프지? 이젠 슬퍼하지 마. 버리지 않는다니까. 정말이야. 너 걱정하지 말고 잘 자. 좋은 꿈 꿔."

아이 혼자서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이 빙그레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우리 우용이는 정말 너무 감성적이고 순수해. 내 아들이지만 녀석이 제대로 심성이 밝아서 기특하네." "그나저나 저 업동이를 어쩔 생각이야? 당신 다시 키울 거야?" "도대체 어떤 무책임한 사람이 자기가 키우던 녀석을 저렇게 버리는지... 괜히 우리 아이한테 안보일 모습 보여준 것 같아. 일곱 살 애만도 못한 인간들이 많으니..." 남편은 일단 아이의 입에서 길동이가 버려진 상태라는 것을 들은 게 마음이 상해 있었다.

아이와 길동이를 생각하면 키워야 하지만 새로 이사가는 아파트에선 '애완견'을 키울 수 없다는 문구가 턱 하니 박혀 있는 것을 본 터라 답을 찾지 못했다. 더구나 지난해에 17년을 키웠던 까꿍이란 녀석을 하늘로 보낸 터라 남편도 나도, 아이에게 죽음과 이별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아 속마음은 더 불편했다. 그런데 이제 '버림'의 아픔까지 보여주게 되다니. 아이는 절대 길동이를 버릴 수 없다고 말했지만 아이와 정이 들기 전 길동이의 거취를 결정해야만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다.

세상이 각박해졌고, 자신만의 불가피한 사정이 생겼다고 백 번 양보하자. 그렇다고 애정을 쏟아 키우던 생명을 유기하는 이 무책임함이라니. 자신을 따르고 의탁하는 생명체에 대해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반려동물들을 유기한다는 기사는 봤지만 내게 이런 현실이 오게 될 줄이야. 화나고 속상함에 죄 없는 세탁기만 한밤중에 돌려댔다.

함께 하는 세상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함께 하는 세상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 양지혜
하지만 밤이 지나고 오늘 아침. 유난히 일찍 일어난 아이는 길동이를 거실로 들여다 놓은 채 7시부터 나를 깨웠다. 이른 새벽부터 길동이의 맘마를 사러 가자고 졸라대는 아이의 성화가 간신히 마음을 다스린 나를 다시 약오르게 만든다. 그러나 길동이를 키울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한 터라 아이의 말을 적당히 둘러댔다.

이사와 오늘 있을 방송촬영을 준비하는 급한 마음과 길동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뒤섞였다. 며칠 있으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길동이 녀석은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지금은 나직이 엎드려 아침밥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버림받음'은 상처인데 선뜻 거두지 못하는 나의 현실과 함께 두 번(?)의 버림을 받을 길동이가 안쓰럽다.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는 날, 누군가 길동이를 거둘 따뜻한 손길이 없을까?

덧붙이는 글 |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전경옥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님께(환경운동연합 소모임 '하호'에서 야생동물 보호와 동물복지 활동을 함) 문의를 했더니 포천 동물보호소로 보내야 한답니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 길동이를 잘 키워 주실 분은 누구일까요? '복'을 대신 받게 되실 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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