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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관점에서 전두환 군사정권의 정당인 민정당을 승계한 한나라당의 승리는 6월 민주항쟁의 퇴장과 구세력의 권토중래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사진은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항의하는 학생 시위대. 가운데 '연세' 깃발 아래 흰색 반팔 셔츠를 입은 이가 당시 서대협 의장이었던 이인영씨다. 왼쪽이 우상호씨.
ⓒ 이인영 홈페이지
5·31 지방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약진' '압승' '독점' 등 온갖 용어를 동원해도 그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말 그대로 한나라당은 거칠 것이 없었고 열린우리당은 백약이 무효인 선거였다.

한나라당의 승리가 2002년 지방선거에 비해서도 지나친 것이기에 오히려 축하를 보내는 것이 꺼려질 지경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참패한 열린우리당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자체가 무안할 지경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6월 민주항쟁의 퇴장, 구세력의 권토중래

이미 지방선거 이전부터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징후였지만, 지방선거에서 87년 6월민주항쟁의 역사적 퇴장을 알리는 조짐이 감지됐다.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를 위한 국민적 항쟁이었고, 이 항쟁에서 민주화 세력은 단결된 힘으로 군사정권을 몰아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 결과가 비록 노태우 군사정권으로 일시적으로 연장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를 출범시키는 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6월 민주항쟁은 한국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관점에서 전두환 군사정권의 정당인 민정당을 승계한 한나라당(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의 승리는 6월 민주항쟁의 퇴장과 구세력의 권토중래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총선거도 아닌 지방선거 결과를 이렇게까지 평가하는 것이 무리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을 알 수 있고 언뜻 발견한 단풍잎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지방선거에서 이 경향을 감지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예측이 아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특히 그렇다. 지난 2004년 탄핵사건 이후의 변화된 정치사회적 세력관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지방선거가 내년 대통령선거 결과를 예고하는 강력한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점에서 또한 그러하다.

사회와 지역이 빠진 '중앙정치혁명'의 결과

누구나 알고있는 것처럼 '혁명'은 홍수와도 같은 것이어서 모든 것을 일거에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이를 통해서 정부와 사회 등 모든 분야가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고 그 당연한 결과로서 정치가 바뀌게 된다.

우리 정치사에서 6월 민주항쟁은 민주화를 위한 혁명 혹은 준혁명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6월 민주항쟁은 사회혁명을 동반하지 못한 정치혁명이었고 그 이후의 변화 역시 부분적이고 점진적인 정치적 변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금융실명제와 재벌개혁 등 일부 경제개혁이 수반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변화와 지역변화에 취약한 혁명이었다. 달리 표현하면 정치권력을 교체하고 중앙정치를 교체한 정치혁명인 반면 사회적 변화와 지역의 변화를 동반하지 못했다는 것이며, 그 결과가 지방선거에서 반복적으로 개혁세력의 패배로 나타났다.

이제 돌이켜보건대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는 평가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 군사정권을 대체하는 민간정부를 출범시켰다는 것, 여의도 국회에서 군출신 국회의원들이 자취를 감추고 개혁세력이 대거 진출하였다는 것, 그 결과로서 일련의 개혁적 조치가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를 뒷받침할 사회적 토대나 지역적 토대는 구축되지 못한 불완전한 것이었다.

사회적 변화를 동반하지 못한 정치적 민주화는 집권세력과 사회세력 사이의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역대 민간정권 하에서 나타났던 수많은 사회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역을 장악하지 못한 중앙권력은 중앙과 지역의 갈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역대 지방선거 결과가 또한 이 사실을 증명한다.

이제 지방에는 민주주의가 완전하게 사라질 정도의 정치상황이 조성되었다. 중앙정치적 수준의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지방권력이 일당독재형으로 구축된 상황은 민주주의의 후퇴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실종을 알리는 시그널로 읽혀야 할 것이다.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 민주적 대안

▲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한 가운데 박근혜 대표가 1일 오전 염창동 당사에서 확대당직자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이재오 원내대표, 허태열 사무총장 등과 함께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제비를 민주주의의 후퇴에 비유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한 것이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지방선거 결과는 한 마리의 제비가 날아온 상황이 아니라 수백수천 마리의 제비가 날아와 둥지를 튼 상황과 맞먹는 것이다.

지방선거 및 그 이후 예상되는 모든 복잡한 정치상황은 내년에 있을 대통령선거로 합류되고 종합적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이것은 지방선거가 단순히 지역의 일꾼을 뽑는 기술적인 선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지방선거는 중앙정부와 중앙정치에 대한 심판의 차원을 훨씬 넘어 역사적 심판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결과는 내년 대선국면을 예고하는 것이자 그 연장선상에서 6월 민주항쟁 및 이를 바탕으로 진행된 민주화 과정의 후퇴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거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 내부로부터 촉발될 정계개편 논의가 정치권의 축을 흔들 것이다.

대대적인 정치변화가 연속적으로 발생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이 과정 자체는 불가역적인 것이어서 달리 토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 결과가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부호가 달려 있다. 앞으로 전개될 무수히 많은 변화와 수많은 토론과 논쟁이 다시 새롭게 민주주의를 잉태할 가능성에 대한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사회적 흐름이 빠르게 보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한 데다 그간의 반복적인 실패로 열린우리당의 가용자원이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는 민주당과 고건 정도일 것인데 이것만으로는 정세 반전이 불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내부적 손실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자원이 제한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나라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치세력의 활동범위 역시 매우 제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광주전남에 둥지를 튼 지역적 수준의 정당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국민중심당은 지역주의적 자민련을 축소 승계한 충청지역정당으로 폐칩(廢蟄)할 것이며, 민주노동당 역시 확대재생산의 기회를 창출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운동의 현 주소를 재점검할 시점

▲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1일 오전 당사에서 5.31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지방선거에서 대통령선거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동기에 대한 대응 전략이 정치권 내부에서 마련될 가능성이 예측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정치권 외부의 시민사회로 눈을 돌려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방선거 결과는 시민사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그 결과에 대해 시민사회운동은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이 질문은 단순하게 지방선거 혹은 지방정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내년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것이자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분명한 사실은 6월 민주항쟁의 성과물로서 출발한 시민사회운동이 두 가지 근본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80년대 이후 민주화와 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온 시민사회운동이 민주화 이후의 대안적 발전전략을 가지고 있지 못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시민사회운동이 역대 민간정부에 대한 견제장치로서 일정한 위상을 확보한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보수적 민간정부를 넘어서는 대안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 하나는, 시민사회운동이 민주주의의 사회적 확산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권교체를 경험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적 보수화 경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제를 마련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안팎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2000년 낙선운동 이후 시민사회운동은 새로운 운동과제의 발굴을 통해 시민사회를 정치사회적으로 동원하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한 시민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시민사회운동이 민주화 세력으로서의 독자적인 위상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운동은 한편으로는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테제에 얽매여 정치영역과 단절됨으로써 민주화의 관점에서 정치전략을 모색하는 데 근본적인 장애물을 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정권과 개혁적 정치세력의 의제에 수동적으로 편승함으로써 독자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혁 무임승차 공간' 사라져... 시민사회운동의 앞길은?

그러나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압도적 승리로 확인되고 개혁적 정치세력의 정치적 입지가 확연히 축소된 시점에서 시민사회운동의 '개혁무임승차'의 공간은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지방선거를 계기로 시민사회운동에게는 6월 민주항쟁 이후 지난 20년간 일관해온 전략과 노선에서 벗어나 한국사회의 민주화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수립하고 그 속에서 시민사회운동의 노선과 전략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 긴급한 과제로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운동전략과 새로운 정치전략으로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며, 그 속에는 시민사회의 활성화 전략과 민주진보세력과의 연대전략 및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 확대발전의 전략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세 차례의 민간정부를 거쳐 6월민주항쟁 20년을 내다보는 현 시점에서 시민사회운동의 제1단계 국면이 마감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 동시에 제2단계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대화 기자는 상지대 정치학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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