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옥루몽> 표지. 1~5권까지 있다.
<옥루몽> 표지. 1~5권까지 있다. ⓒ 그린비
누구나 그렇듯이 현실의 삶이 고달프면 꿈속에서나마 행복하길 바란다. 하루하루를 억압 속에서 살아간다면 꿈속에서만큼은 훨훨 날고 싶어한다. 발버둥치며 애써 나아갈지라도 현실의 틀이 가로막고 서 있으면 꿈속에서나마 그 틀을 부수고 자유하길 원한다. 부정과 부패가 온통 가득 찬 세상이라면 꿈속에서만큼은 정의와 진리가 구현되길 바란다.

물론 꿈같은 세상이 현실의 삶으로 된 적은 여태껏 거의 없다. 아무리 유토피아를 꿈꾸어도 그것은 한낱 몽상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꿈같은 정의와 진리를 올곧게 실현하려해도 이 세상의 틀이 너무나도 뒤틀려 있기 때문에 어렵다. 인간군상만 해도 다르지 않다. 꿈속에서 마주친 사람들과는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천양지차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씩 현실 세계를 뛰어넘으려고 꿈같은 세상을 이 땅 위에 그려내는지 모르겠다. 남영로가 쓴 <옥루몽>(그린비·2006)도 그 중의 하나에 들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천상과 지상을 넘나들며, 현실 세계에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신기한 현상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를테면 천상의 세계에서 옥황상제를 보좌하는 문창성군(文昌星君)이 양창곡(楊昌曲)이란 현실 인물로 태어나는 모습이라든지, 천상의 옥녀들이 현실 세계의 어여쁜 아녀와 기생으로 태어나 양창곡과 애틋한 사랑을 나눈다든지, 현실 세계의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 사회를 타파하려는 양창곡의 개혁 의지라든지, 그와 더불어 왜놈들의 침입에 맞서 싸우되 신기한 둔갑술로 적을 유도한다든지, 높은 성벽을 바람처럼 뛰어넘는 기묘한 모습들은 가히 상상 속의 일들이다.

"과인이 철목동 앞에 이르러 칼을 집고 성을 넘었어요. 그런데 성 위에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앉아 있거나 서 있더군요. 과인이 바람으로 변신하여 아홉 개의 성을 넘는데, 여덟 번째 성에 이르니 성 위에 쇠로 만든 그물을 설치하고 활을 곳곳에 숨겨 놓았더군요. 또 그 성을 넘으니 궁의 담장이 하늘처럼 높은데, 이는 나탁의 처소였습니다. 둘레는 6, 7리나 되고 높이는 수십 길이나 되었습니다. 몸을 솟구쳐 담장을 넘으려는데 앞길이 갑자기 끊어지고 쟁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군요."(2권, 97쪽)

그 때문인지 이 책에서 엮어내는 꿈과 현실을 오가는 그 상상력의 극치는 <구운몽>을 훌쩍 뛰어넘는 듯 하고,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은 <춘향전>을 능가하는 듯 하고, 부정과 부패를 타파하려는 사회개혁의 의지는 <홍길동전>을 앞서는 듯 하고,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양창곡과 강남홍을 비롯한 여러 영웅들의 활약상들은 감히 <삼국지>를 넘어서는 듯 하다.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그 현실 밑바탕을 명나라로 두고 있다. 명나라 시대의 광활한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여러 걸출한 영웅들이 북쪽으로는 몽골에서부터 남쪽으로는 베트남 지역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다. 그만큼 활동 범위가 넓은 까닭에 다양하고 재미난 인간군상도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이 책을 엮어 나가는 중심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양창곡'이다. 그는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주름잡는 제상이 되고, 또 황실 천자의 총애를 받는 왕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물론 그 자리에 서기까지 몇 해 동안을 바깥으로 떠돌며 왜놈들의 침입에 맞서서 이겨내야 했고, 조정내의 '노균'이 이끄는 반대세력과도 긴긴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유배지로 끌려가는 등 험난한 인생 여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양창곡과 더불어 이 책의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강남홍'이다. 그녀는 일개 기생출신에 지나지 않았지만 양창곡과 함께 여러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다. 그때마다 그녀는 양창곡의 숙소에만 머무르며 몸종 노릇을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최전방에 나서서 적들을 물리치는가 하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여러 진법들을 펼쳐 보이며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래서 황실 천자로부터 제상의 관직을 하사 받는 영광도 누렸다.

그런 모습들을 하나하나 보노라면, 분명 이 책은 남존여비 사상을 타파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모든 관직의 중심에는 남성이 자리하고 있었고, 여성은 그 근처에도 얼씬거릴 수 없었다. 집안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하는 일에 아내는 좀체 끼어 들 수 없었다. 그저 아내는 집안 살림에만 신경 써야 했던 '집안 지킴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양창곡과 부부로 살아가는 다섯 명의 부인들이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그 부인들이 집을 지키는 집안 지킴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가정의 대소사(大小事)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또 사회 관직에도 충분히 오를 수 있음을 곁들여 보여주고 있다.

특히 양창곡의 오른팔과 왼팔 격인 '마달'과 '동초'가 혼인할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 강남홍의 하인인 '연옥'과 벽성선의 몸종인 '소청'을 상대로 혼인을 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혼인할 상대자로 낙점을 받기까지, 결코 양창곡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들의 주인마님 격에 해당하는 강남홍과 벽성선이 직접 나서서 혼사를 중재하고 나섰음을 알 수 있다.

"동초의 이 말에 강남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연옥이 비록 천한 하인이나 나는 즐겁게 속신(贖身)을 허락할 것이오. 그러니 장군이 하인으로 대우하는 것은 안 됩니다. 좋은 날을 잡고 혼례를 행하며 전안(奠雁)과 납폐(納幣)를 해서 정식으로 혼인해야 한다는 것이 첫째 조항이요, 장군이 연옥을 옆에 둔 뒤에 다시 소실(小室)을 구하여 연옥에게 헛되어 늙어 가는 백두음(白頭吟)을 짓도록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둘째 조항입니다. 장군은 잘 생각하여 결정하세요.'"(4권, 137쪽)

완역작 <옥루몽>은 가히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꿈 속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이 책을 들여다보노라면, 낮잠을 거나하게 자고 나면 한결 개운해지듯, 답답한 현실 세계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재미들로 인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어디 기분뿐이겠는가? 적지 않는 교훈도 안겨주고 있으니, 그 가치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현실의 틀을 어떻게 개혁할지, 차별과 억압 때문에 고통 당하는 이들을 어떻게 자유롭게 할지, 군자와 소자로 나뉘는 다양한 인간군상 속에서 나는 어떤 유형의 인물일지, 그래서 참다운 인물로 거듭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완역 옥루몽 1 - 대한민국 대표 고전소설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그린비(2006)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