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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변화가 짧은 시간 동안 이뤄낸 엄청난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 변화의 증표 중 하나가 서울시내 곳곳에 있던 자그마한 야산들이 사라진 것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쉽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 그래 내가 살기도 했고 뛰놀기도 했던 바로 그 산들이 사라졌어' 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것은 마포의 성미산 사람들이었다.

서울의 녹지율이 26.5%라는 통계를 어느 잡지에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이는 대체로 서울 중심부의 남산과 시 외곽의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관악산 같은 큰 산들 덕분이다. 필자처럼 서울서 나서 서울서 자란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작은 산들이 눈앞에서 사라져가면서 이제는 기억에서도 사라져간 모양이다.

건설 구호 속에 사라져간 산

▲ 지난 4월2일 성미산 복원을 위한 가족나무심기 장면.
ⓒ 마포연대 제공
과거엔 산이었지만 이제는 단지 '높은' 지역일 뿐, 이미 산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대부분 변화했다. 필자가 일하는 사무실이 있는 성북동의 낙산, 중학교를 다니던 아현동의 노고산, 와우산 이런 곳이 언제 산이었던가 싶다. 그나마 남아있는 산마저 호시탐탐 개발을 앞세워 깎아버리려는 시도가 진행된다. 성미산이 그랬고, 우면산이 그렇다.

뉴타운 00개, 00만호 건설, 경전철 설치, 도심복합문화공간 건설 그리고 또 건설, 또 건설… 선거때마다 건설의 홍수다. 동네에서 구의원, 시의원으로 출마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내거는 구호도 건설, 유치, 조기착공, 건설완수 이런 구호들이다.

마을과 동네의 모습에 대해 다른 발전을 꿈꾸는 사람들의 선택지는 없다. 건설을 구호로 내거는 사람들에게 동네 야산은 없애야 할 그 무엇이었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경우라도 그저 보기 좋게 다시 꾸밀 개발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런 생각들이 오늘의 서울을 만들었고, 또 한동안 만들어 갈 것이다.

많은 출마자들이 주민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복합문화공간. 이들에게는 낡은 건물을 허물고 멋진 현대식 건물을 세우고 그 안에 극장이며, 쇼핑공간이며, 음식점 등을 깔끔하게 세워주겠다는 약속보다 스스로 만든 복합문화공간인 작은 야산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이 더 반가운지 모른다. 어차피 서로 다른 생각으로 서울을 만들어 갈 것이 뻔한데 그저 내 생각대로 주민들 스스로 결정한 대로 마을이 유지되는데 방해만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또다른 발전'... 선택하기 나름이다

아침이면 물통 하나 들고 산책하고 운동하는 사람들, 낮이면 소풍 나온 아이들, 그림 그리는 아이들, 각종 놀이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 저녁이면 가족들 모두 나와 산책하며 거닐 수 있는 공간에서 간혹 열리는 마을 행사들.

유명한 강사도 없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화제의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 스스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며 공유하는 소중한 문화공간이 바로 성미산인 셈이다.

어디 성미산만 그렇겠는가? 우면산 주변의 주민들이 우면산 트러스트 운동을 시작한 것도 물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 아니겠는가?

공동육아운동으로 시작한 성미산 주민들의 삶의 궤적은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출마자들의 구호에 담겨 있기보다 어울려 지내는 마을 사람들의 선택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 마포연대는 지난 2004년 성미산 나무벌목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 시청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 마포연대 제공
"의도한 건 절대 아니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마음이, 그런 배경이 되었고, 우리 또래 386들이 가진 세계관,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지. 공동육아의 이념 자체가, 내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로 키우자는 것이니까. 프로그램중에 나들이가 있는데, 마을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개념이지. 세 번째가, 산으로. 자연친화적이어야 한다는거지. 애들이 타잔이야. 걷기 시작하면 산으로 가니까.

이게 몇 년 지나다보니, 문제의식이 생겼어. 부채의식 같은 것이기도 했는데, 우리 아이들만만 잘 키우려는 거 아닌가 하는 부담 같은 거야. 그래서 1년에 두 번 정도, 방학 때나 명절 때 지역 놀이마당 열고 전통놀이 하고 또, 어린이집을 일요일에 동네 애들 와서 놀도록 공개했지. 부채의식과 이념들을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 공간에서 묶으려고 시도한 것이었어.

점차 애들이 크니까 품엣자식이 아니거든. 학교 가면서 동네 친구들 중요해지고 하니까. 살기 좋은 동네 만들지 않으면, 내 아이만 키우는 게 웃기는 얘기다 생각이 들어. 생협을 만든 것도 1차적 계기는 지역의 열린 교육기관 만들고 싶은데, 출자금 없어서였어. 그런데, 생협 만들면 인건비도 지원해주고 융자도 해준다더라 하니까. 그럼 먹거리도 해결하고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해결되고 하는 계산이 있었지." - 성미산 주민이자 마포방송이사인 유창복씨의 말


뒤늦게 생태와 환경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사람들에게 몇 자락 남지 않은 작은 산들은 소중하다. 이들에게 산은 그저 산이 아니라 휴식의 공간이며, 육아의 공간이고, 교육의 공간이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 삶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을 지켜 낸 사람들은 산을 지켜낸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지켜낸 것이었다. 우리가 그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그들이 산을 지켜 낸 물리적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다른 발전의 길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주는 힘에 있는 것이다.

도대체 왜 한거야...잘 들리지도 않는데
1W 출력의 공동체라디오, 미디어의 벽 넘어서기

다음은 하승창 기자가 지난 4월23일 함께하는시민행동 홈페이지 '에피소드'란 코너에 쓴 글을 요약한 것입니다. <편집자주>

성미산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공간이 되어 버린 성미산을 지켜 낸 이야기는 이런 작은 산들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일이었다.

이 '동네'사람들이 지난 해부터 라디오 방송(www.mapofm.net)을 하고 있다. 무슨 생각으로 '라디오'를 할까? 1년여의 준비를 거쳐 지난해 9월 개국한 마포방송을 찾아갔다.

옛날 내가 알던 거리는 아니어서 성미산 주민이자 마포방송의 이사기이도 한 친구 창복이가 전철역으로 나와 주었다. 방송국은 자그마했다. 스튜디오 공간 하나와 작은 사무공간이 맞붙어 있다. 낯익은 사람이 환하게 웃는다. 김종호 위원장. 이미 한두 번인가 세 번 여러 번 인터뷰했었다.

일하는 상근자는 4명. 자원봉사자는 150명. 이 150명은 다 PD고, 작가고, MC고 그렇다. 혹시나 해서 알 만한 사람도 있었냐고 했더니 없었단다. 창복인 옆에서 '나도 했었어'라고 말한다.

현재 새벽 6시부터 1시까지 19시간 방송한다. FM 100.7Mhz로 주파수를 맞추면 마포 일원에서 들을 수 있다. 난 운전하면서 내부순환로 위에서 딱 한 번 들은 적 있다.

출력이 1W라 아직 동네 안에서도 잘 들리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천영세 의원 발의로 출력을 10W로 높이는 법안을 내놨다. 방송국 발전과 관련해 가장 결정적인 것 중의 하나다.

재정하고도 당근 연결되어 있다. 뭐 들려야 어디 협찬이나 기부라도 받지. 어차피 광고는 법으로도 안되고, 별 그럴 생각도 없고. 월 1천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 데, 시범사업이라 방송위와 구청에서 상당부분 나온다.

후원회비는 현재 10% 정도. 일본의 경우에 이같은 소출력라디오의 청취율이 높은 곳은 10%가 나오기도 하고 고베대지진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단다. 지방선거때는 후보자 초청토론회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기초의원들까지. 도대체 왜 한거야? 돈도 만만치 않고, 아직 잘들리지도 않는 데. 김종호 위원장과 유창복 이사의 말을 섞어서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가 계획했다기 보다 미디어연대에서 일하는 송덕호씨가 여기 주민인데, 우연치 않게 제안하게 된 것이야. 지역에서 공동체운동, 생협, 성미산 싸움… 그 외 여러 공동체 관련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처음엔 지역미디어센터 이야기가 나왔는데, 소출력라디오 시범사업이 시작되고 우연히 그 관련 공청회에 참여하게되면서 시작했다.

당시엔 라디오에 방점이 있기 보다 지역의 다양한 활동을 소개해 줄 미디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고 공청회를 통해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알게 되어서 시작한 거야. 기존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 우리가 접하는 것은 커다란 사건, 사고나 큰 (국가적) 이슈다. 내 이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특히 소소한 미담이나 지역의 작고 다양한 현안들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주간지 <마포신문>이 있으나 아무래도 시의성이 떨어진다. 다양성에서 한계도 있고. 주민들에게 방송출연을 부탁드리면 보통 '아구 내가 뭘 안다고…'(어휴 방송인데, 이런 생각이겠지), 손을 흔들지만 일단 출연하고 나면 그 벽이 깨진다. 동네 식당 아줌마, 가게 주인 등 살고 있는 주민들이 출연한다.

이를 통해 기존 미디어에 대한 벽을 깨고 있는 것이다. 기존 미디어의 벽만 넘어서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방송을 통해 성미산 사람들은 새로운 가치에도 귀기울이게 된다."

프로그램이 뭐… 어떤 거 있어? 되돌아온 답변은 이렇다.

"< L양장점 >은 레즈비언 방송으로 아마 성적 소수자 프로그램으로 공중파에서는 처음이고, <꽃다방>은 여성주의 프로그램인데 이런 것들은 외부에서 제안이 와서 하고 있는 것이고, 동네 노점상 분들이 하는 <희망마트>, 저녁 6시에 하는 <아름다운 인생>은 마포 노인대학의 어르신들이 한다(이건 우리가 부탁드린 거고).

<랄랄라 아줌마>는 주부 관련 프로그램, <톡톡 마포>는 마포구 현안이나 의정 활동 관련된 프로인데, 이건 릴레이 프로그램이야. 이번주 출연한 사람이 다음주 출연할 사람 추천해주는 방식.

밤 프로는 <마음(마포 음악) 가는 대로>는 음악 프로그램이지. <톡톡 마포>는 생협과 함께 생태환경에 대한 꼭지들을 이야기하고 성미산 학교 교사 분들은 교육 관련 주제 등으로 지역자원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하고 있는 데, 자원활동가 중에서 지역주민은 30-35% 정도지."

아직 잘들리지 않는다. 이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출력의 정도가 약해 잘들리지 않는 만큼 지금은 딱 그 1W만큼의 울림으로 보일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성공하든 실패하든 '동네' 사람들 스스로 기존 미디어의 벽을 체험적으로 넘어서고 새로운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동네 일을 갖고 논하면서 이미 이들은 목표한 10W의 출력은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0W의 출력으로 만드는 것은 이들의 몫이 아니라 이들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도들을 만들어 내야 하는 나머지 사람들의 몫일 게다. / 하승창

덧붙이는 글 | 하승창 기자는 함께하는시민행동 정책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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