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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에 고향집에 갔더니, 텃밭에 잡초가 제법 많아졌다. 올해도 옥수수와 감자, 고구마, 고추 따위를 오밀조밀 심어놓았다. 무슨 소득을 바라고 심은 것이 아니라서 애면글면 풀을 매지는 않았더니, 어느새 풀이 무성해질 조짐이다.

긴 호미로 한참 잡초를 긁어주다가, 지난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가지가 죽어버린 장미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추운 곳이라서, 해마다 장미는 꽃을 피웠다가도 큰 줄기는 죽고 새순이 나와 또 꽃을 피우곤 했다.

죽은 가지를 잘라줄 셈으로 전지가위를 가지러 집 뒤 창고로 가는데, 담벼락 아래서 무언가가 파닥거리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커다란 나방 같기도 하고, 작은 새 같기도 했다.

▲ 담벼락 모퉁이에서 바둥거리는 박쥐.
ⓒ 최성수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놀랍게도 박쥐였다. 어디를 다쳤는지, 날아가지는 못하고 몸을 뒤집은 채 날개를 움직이고 있었다. 막대기로 건드리니, 입을 벌리고 찍찍대는데 이빨이 아주 날카롭게 생겼다.

"여보, 진형아. 나와 봐라.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오셨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아내와 늦둥이가 얼른 달려 나왔다. 박쥐를 난생 처음 본 늦둥이 녀석은 그게 뭔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무슨 동물이야?"
"박쥐란다. 너 박쥐 처음 보지?"

▲ 몸을 뒤집지도 못할 만큼 박쥐는 지쳐 있나 보다.
ⓒ 최성수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박쥐를 유심히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설마 흡혈 박쥐는 아니겠지?" 아마 책에서 흡혈박쥐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나 보다.

"우리나라에는 흡혈 박쥐가 없단다. 우리나라 박쥐들은 대개 나방이나 곤충을 잡아먹거든. 흡혈 박쥐는 아메리카 대륙 쪽에 있는데, 소나 새의 피를 빨아먹는대."

설명을 들으면서도 녀석은 박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유, 불쌍해라. 날개를 다쳤나? 왜 날지 못하고 퍼덕거리기만 하지? 박쥐는 낮에는 잘 날아다니지 못한다는데... 그래서 담벼락에 부딪쳤나?"

아내가 안타까운 듯 꺼낸 말이다.

돌바닥에서 몸을 제대로 일으켜세우지도 못하고 버둥거리는 녀석이 안됐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풀숲에 놓아줄 생각으로 나무 막대기로 집어들자 박쥐가 찍찍 소리를 내며 울었다. 울음소리가 꼭 쥐 울음소리 같다.

▲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박쥐.
ⓒ 최성수
개나리숲 그늘에 녀석을 놓아두었다. 그제야 조금 진정됐는지 박쥐는 몸을 바로 세우고 엎드려 있었다. 밭을 매고 화단의 잡초를 뽑는 사이사이에 가 보면, 박쥐는 엎드린 채 죽어 있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혹 죽었나 싶어 나무 막대기로 박쥐 앞 땅을 톡톡 치니 입을 딱 벌리고 대드는 폼이 기력이 떨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박쥐는 저녁 때까지 그렇게 엎드려 있었으나 밤에 찾아가보니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기력을 되찾아 날아가 버렸나보다. 어둠이 짙어지자, 제 본성이 살아났을지도 모른다.

"박쥐가 초음파를 이용해서 날아갔을 거야."

늦둥이 녀석이 제 나름대로 추측해서 풀이했다.

"죽으면 어쩌나 걱정했더니, 그래도 다행이네요."

아내도 안심하는 표정이다.

▲ 숲 그늘로 옮겨주려 하자 기를 쓰고 몸부림치는 박쥐.
ⓒ 최성수

ⓒ 최성수
박쥐는 조류가 아니라 포유류다. 날아다니는 포유류인 박쥐는 백악기에서 신생대 3기 사이에 발생한 식충류(Tupaia)에서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야간에 주로 활동하며, 초음파를 발생하여 물체를 확인하고 사냥도 한다. 눈이 밝다고 해서 박쥐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주로 동굴이나 오래된 헌 집에 살며 겨울잠을 잔다. 박쥐의 날개는 앞발이 변한 것인데, 발가락 사이에 비막(飛膜)이 형성되어 잘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한다.

주택 개량 사업과 무분별한 개발로 박쥐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많이 파괴돼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그 귀한 박쥐가 집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한동안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그 덕분에 나도 입 속으로 어렸을 때 본 만화영화 <황금박쥐> 주제가를 오랜만에 흥얼거렸다.

황금박쥐 어디 어디 어디에서 왔느냐 황금박쥐
빛나는 해골은 정의의 용사다
힘차게 날으는 실버 배턴
우주의 괴물을 전멸시켜라
어디 어디 어디에서 왔느냐 황금박쥐
박쥐만이 알고 있다


"나 박쥐 봤다. 이빨이 아주 날카롭게 생겼어. 소리는 쥐처럼 찍찍거려. 그런데 그 박쥐는 어디에 가서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을까?"

서울로 돌아온 늦둥이 진형이 녀석은 그렇게 한동안 박쥐 이야기를 했다. 녀석도, 우리 부부도, 우리 집에 찾아왔던 박쥐 손님이 건강하게 잘 살아가길 비는 마음은 똑같은가보다. 보리소골에는 나방이 많으니까,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 기운을 제법 차린 듯한 박쥐.
ⓒ 최성수
'박쥐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박쥐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하도 초심을 잃어버리고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그 말이 더 실감난다. 아니, 박쥐가 살 수 없도록 환경을 파괴하면서도 인간이 최고라고 고집을 부리는 우리는 어쩌면 박쥐만도 못한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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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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