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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떠올리면 옛날일이 새록새록 생각난다는 이영병 할아버지.
ⓒ 이진희
▲ 지금까지도 하루에 담배한갑을 태우실 만큼 건강하시다.
ⓒ 이진희
꽃가루가 어지럽게 날리던 지난 5월 25일. 충남 천안시 유량동에서 살고 있는 이영병 할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할아버지는 오는 31일 치러질 5·31지방선거에서 천안에 적을 두고 있는 남자유권자들 중 최고령(100세)인 분이다. 밖에서 늦봄 볕을 쬐며 담배를 태우시던 할아버지는 70살은 어린, 증손자 같은 기자를 반가이 맞아주시며 이런 저런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건강한 비결? 뭐 팔자가 사나운 기지. 지금도 위장이 편하고 정신도 말짱하니까. 솥에 둘러낸 건 아무거나 안 가리는 편이야. 과일이고 뭐고 식성을 잘 타고나서 그런가?(웃음). 2~3년 전만 해도 대포 한, 두 잔은 했었는데 요샌 근력이 딸려서 반잔 정도 마시고 담배는 하루에 한 갑 정도 핀다네."

김소월의 <진달래 꽃>으로 유명한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나신 이영병 할아버지는 15살 때 동갑내기 마을 처녀와 가약을 맺고 자식도 뒀더란다. 하지만 6·25때 피난을 내려오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홀홀 단신 이남하게 돼 천안에 뿌리내리게 됐다. 할아버지의 말씨는 이제 대부분이 충청도 사투리고 간간이 '날래날래' '어드레' 등 평안도 사투리가 섞여 나온다.

"내 지나온 얘기를 소설로 풀어 써도 수십 권은 될 끼야.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지. 천안시 성거읍에서 한 5년 동안 머슴도 살았었고, 한 푼 두 푼 어렵게 모아 그래도 근근이 지금까지 살아왔다네. 아, 그런데 작년엔 적십자사에서 두고 온 아들·손자를 찾아준다지 않겠어. 이남한지 56년만이지. 그래서 대전 가서 화상상봉까지 했드랬지. 북에 두고 온 넷째의 손자·손녀와 TV를 통해 만나봤는데 나이가 벌써 서른여섯, 마흔일곱이더라구. 우리 아는 재작년에 죽었다고 하더구만. 혈육을 만났어도 너무 처음이라선지 오래돼서인지 눈물이 나지도, 울컥하는 것도 없더라구. 하지만 '아 무슨 나라가 새끼들을 만나서 밥 한때를 못 얻어먹나' 하는 생각에 어이없다는 생각만 들더군."

▲ '훌륭한 사람을 뽑아야 살기가 편해지지 않겠느냐'는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꼭 투표하겠다고 다짐하신다.
ⓒ 이진희
남한에 내려 온 할아버지는 새로 장가를 드셔서 딸만 넷을 낳으셨다. 현재 큰 딸이 마흔 여덟 살, 큰 사위는 쉰 한 살이다. 얼마 전부터 병약한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큰 딸네가 들어와 함께 살고 있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지. 손자들을 보고 오니까 한 20~30년 이따가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그럼 이 좋은 세상 좀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지(웃음)."

이남 후 대한민국 헌정사에 기록된 대부분의 대통령과 지역의 국회의원, 도지사와 시장, 도의원과 시의원을 뽑아오셨지만, '할아버지가 바라는 세상은 그리 쉽게 오기 어려웠나보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도 할아버지의 투표의지는 여전히 단호하시다.

"투표? 아, 당연히 해야지. 내 이제껏 한번도 빠짐없이 투표를 해왔거든. 당선될 만한 사람, 어떤 사람인가 똑똑히 따져서 말야. 정당하고 훌륭한 사람을 내야 그래도 살기가 편한 것 아닌가. 아~, 나이 한창 적에 왜 투표를 못 혀!"

덧붙이는 글 | 천안아산 주간지역신문인 충남시사신문 414호에 게재 예정. 생활정보신문 천안교차로 게재 예정.

이진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wordpa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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