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국의 아름다운 배우 장쯔이. (자료사진 사진제공 Agence Saint-Clair Internationale)
중국의 아름다운 배우 장쯔이. (자료사진 사진제공 Agence Saint-Clair Internationale)
‘다빈치 코드’ 상영으로 화제를 모으며 개막된 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괴물’이 극찬을 받고 있다는 흐뭇한 소식이 들려온다.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이 집중된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올해 심사 위원장을 맡은 이는 홍콩 출신의 명감독 왕자웨이(왕가위)다.

그러나 위원장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칸 영화제 사상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장쯔이이다. 중국 여배우가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장쯔이 이전에도 공리와 량쯔충(양자경) 같은 명배우들이 칸의 붉은 카펫을 수놓았다. 홍콩 출신의 장만위은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들 중국계 여배우들은 이미 중국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대스타들이다. 미국의 PEOPLE 지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0인 가운데 궁리와 장쯔이를 함께 선정했으며, '할리우드의 악몽'팀 버튼 감독은 차기작의 주연으로 궁리를 캐스팅 할 예정이다.

할리우드에까지 이른 중국 여성들의 바람몰이는 비단 영화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시아계의 불모지였던 패션모델 계에서도 대륙의 딸들은 무서운 기세로 무대를 접수하고 있다. 그 대표주자가 상하이 출신의 미스 차이나, 뚜줸이다.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톱모델로 성장한 그녀의 활동 범위는 아시아와 유럽, 호주, 미국을 넘나든다. 패션업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VOGUE 지는 올해를 빛낼 10대 뉴 페이스 가운데 그녀를 으뜸가는 신성으로 꼽았을 정도이다.

이처럼 아시아 여성, 특히 중국계 여성들이 대중문화 영역에서 각광을 받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UCLA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아시안-아메리칸 연구를 하고 있는 박혜경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아시아의 미학과 동양적 미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과 차이가 강조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보편적인 문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명품 넘치는 중국시장, 루이뷔통 매장 100개 넘어서

그러나 ‘아시아’라는 공간과 ‘동양적 미’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그리고 유독 여성들이 주목을 받는 것도 석연치 않다. 우리는 리롄제와 박중훈 등 기존의 잘나가던 아시아 남자 배우들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어떤 이미지로 등장했는지를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특히 중국의 여배우가 각광받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대중문화 산업 규모에서 중국을 훨씬 앞지른 일본에서는 왜 세계적인 여배우나 모델이 없는 것일까?

여기서 VOGUE 중국어판의 편집장의 의견은 귀 기울여 볼만하다. 자사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그는 ‘비록 양국은 모두 아시아이지만 일본은 중국과 매우 다르다. 일본 동료들의 작업을 보면서 느꼈던 인상은 일본의 독자들은 서양의 이미지와 서구인의 얼굴을 보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일본의 독자들이 서구인 모델을 선호하는 반면 중국의 독자들은 중국인 모델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패션 잡지의 독자는 곧 소비자이다. 특히 명품 브랜드의 광고로 가득 찬 VOGUE의 독자라면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를 의미한다. 잠재적 소비자인 그 잡지의 독자들이 중국인 모델을 선호한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세계의 주요 명품 브랜드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들이 이 사실을 간과할 리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더불어 중산층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명품 시장도 확대일로에 있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명품 브랜드 시장의 규모가 큰 나라이다.

루이뷔통 매장은 이미 100개를 넘어섰고, 아르마니는 올림픽이 열리는 2008년까지 30여 개의 매장을 더 늘릴 예정이다. 중산층 인구가 5억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0년경에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가장 큰 명품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계 배우가 각광받지만 패션의 중심은 뉴욕, 파리, 밀라노

상하이의 쇼핑 중심가에 걸린 VOGUE 광고판. 각국의 명품 브랜드가 중국의 여성 이미지를 활용해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상하이의 쇼핑 중심가에 걸린 VOGUE 광고판. 각국의 명품 브랜드가 중국의 여성 이미지를 활용해 시장에 침투하고 있다. ⓒ 이병한
중국계 배우와 모델들이 각광을 받게 된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에 대한 의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거나 동양의 고유한 미를 재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근저에는 거대한 규모의 중국 시장이 있었고, 그 시장을 노리는 자본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중국계 여성 모델에 대한 수요가 확장된 것이다. 부(富)가 미(美)를 쫓고 미(美)가 부(富)를 낳는다.

즉 중국계 여배우와 모델의 르네상스는 다양성과 차이가 공존하는 문화 현상의 하나로 이해하기보다는 중국에 자본주의가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반증하는 징후로 보아야 한다.

가령 뚜줸을 동과 서를 아우르는 21세기형 모델로 극찬한 VOGUE는 대표적인 글로벌 미디어이다. 이 잡지는 각국마다 그 나라의 특성을 반영해 여러 판본을 동시에 생산해 내는데, 뚜줸의 이미지는 이 다국적 미디어에 실려 국경을 넘나들며 자유로이 이동하면서 ‘아시아 여성성의 재발견’이라는 환상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환상적인 무대의 장막을 걷어 젖히고 현실을 보노라면 패션 산업의 중심은 조금도 변함없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시아 여성의 이미지가 전 세계로 떠돌아다니는 현재에도 패션 산업 자본의 중심지는 여전히 뉴욕이고, 파리이며, 밀라노이다.

즉 다국적 미디어와 글로벌 문화 산업은 예전처럼 ‘금발의 백인 미녀’라는 동질적인 이미지를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본토의 이국성을 적극 활용해 차이를 촉진하고 다양성을 조직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한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은 세계를 향해 문호를 열고 자본주의 시장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30여년 이제는 자국의 여성 이미지를 문화 상품으로 수출하기에 이르렀을 만큼 중국은 크게 변화했다. 이는 이 거대한 나라가 자본주의의 그물망 속에 깊숙이 포획되었음을 의미한다.

바꿔 말하면 정점에 오른 듯 화려하게만 보이는 한 중국 여배우들의 황금시대는 중국의 경제가 흔들리고 시장이 위축되는 순간, 즉시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자본은 언제든지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서 인도로 중동으로, 남미로 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와 칸을 사로잡은 장쯔이의 그 우아한 미소와 요염한 자태도 중국 자본주의의 거품이 꺼지는 순간, 신기루처럼 은막 속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중국 교민지에도 함께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