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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시작한지 한 20여분 되었을 쯤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정적을 깼다.
“호미 놓고 다 모이세요”

벌써 새참이 나올리는 없는데 무슨 일인가 해서 직원들이 밭고랑에 호미를 놓고 모여들었다. 감자밭 주인아저씨가 초보 농부인 직원들의 일솜씨를 보고 한마디 하셨는지 인솔을 맡은 소방담당이 그대로 일이 계속되면 안 한 것만 못해서 호출을 한 것이었다.

▲ 감자싹과 비름을 사이좋게 북돋어준었습니다. 어떤게 비름인지 구분하실 수 있으십니까?
ⓒ 김영래
“감자싹 주변에 있는 풀은 모두 뽑아주시고 흙을 좀 더 북돋아 주세요, 그리고 감자싹하고 비름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르겠으면 옆 사람한테 좀 물어보고 하세요.”

시골에서 자라고 주말이면 옥수수, 고추밭에 가서 일을 하는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고, 또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아마도 누군가 장난을 치려한 게 아닐까? 하다가도 잎사귀 모양이 비슷해 처음 보는 사람이면 구별이 안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밭 가득 아카시아향기가 진동을 해 24시간 교대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밭으로 한 직원들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주었다. 우리가 24일 농활을 나온 곳은 농협의 주선으로 지난해 11월 제천소방서와 고명동 세거리마을 사이에 ‘1사1촌자매결연’을 맺은 곳으로 통장님이 일손을 요청해서 이루어졌다.

소방서 직원들의 애환은 24시간 갑, 을조 교대근무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나 행사는 두 번씩 해야 하고 전 직원이 모이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다 이렇게 외부의 행사가 있을 때면 휴무 직원들이 밤샘 근무를 하고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넓은 밭에 한 고랑씩 앉으니 일이 쉽게 끝났습니다.
ⓒ 김영래
바쁜 농번기에 5.31지방선거까지 겹쳐 일손이 절대로 부족한 농촌에 50여명의 직원들과 의용소방대원들, 의무소방원들은 커다란 힘이 되었다. 2천여평이 넘는 감자밭 긴 밭고랑에 옹기종기 앉아서 어제의 근무로 쌓인 피곤함을 잊기 위해 옆에 있는 동료들과 출동에서 겪었던 갖가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손은 아주 바빴어요.
ⓒ 김영래
구조대 부대장은 시골마을에서 이웃집 개가 약을 먹고 집에 들어 온 것을 구조해달라고 요청해서 출동했는데 청소까지 부탁하며, 대원들을 타박했던 일과 산행 중 부상을 당해 4명의 대원이 탈진할 정도로 힘들게 구조해서 산을 내려왔더니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그냥 차를 타고 가버린 이야기 등을 하며 업무의 애환을 나누었고, 요즘의 최고의 화두인 월드컵의 이야기도 빠질 리 없었다. 화요일 벌어졌던 가상의 토고 ‘세네갈’과의 축구시합 뒤 각자가 분석한 견해로 얘기가 분주했다.

점심은 사무실에서 마련한 도시락과 밭주인 아저씨가 낸 막걸리 한통자로 갈증을 덜었다. 세거리 마을 통장 아저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막걸리를 잘 안 먹는다면 나이 드신 몇 몇 분과 거의 반통을 다 비우고도 오후의 일에 맡은 몫을 다해 내셨다.

▲ 이 정도면 초급은 아니겠죠. 저는 프로랍니다.
ⓒ 김영래
밭고랑엔 사람의 손이 닿은 지 오래 된 듯 쇠별꽃, 명아주, 쇠비름, 어린 여뀌 등 잡초가 무성했다. 예방담당외 몇 분은 밀짚모자를 쓰고 미리 작업복을 준비해 오는 치밀함(?)에 일솜씨까지 진짜 농부같이 일을 잘 하셨다.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이 났다.

▲ 일을 모두 끝내고 내려가는데 누군가 산 너머에 2천평이 더 있다는 말에 뒤집어 졌습니다
ⓒ 김영래
아마도 밭주인이 그 일을 했다면 처음 시작해서 끝날 때쯤이면 처음 시작한 곳엔 감자를 캐야할 것이라는 농담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일을 끝마친 감자밭을 돌아 나오면서 보니 피곤하긴 했어도 우리의 힘이 컸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혹시 중간에 간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니 출석을 불러야한다며 모두를 한자리에 모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것을 21세기 정보화시대의 또 다른 출석부였다.

▲ 내 얼굴은 잘 나왔습니다. 안 나온 사람은 사진찍는 사람 하나 밖에 없어요.
ⓒ 김영래
“얼굴이 없는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도 억울함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얼굴을 길게 내미시고, 자 호미를 높이 들고….”
직원들의 얼굴에 핀 웃음은 하루의 피곤함보다는 남을 우선 배려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몸에 밴 직업의식 듯 했다.

직원 여러분 어제 농활 하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출동 없는 편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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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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