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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립미술관의 <리얼리즘 다큐멘터리 사진전> 포스터.
전북도립미술관의 <리얼리즘 다큐멘터리 사진전> 포스터. ⓒ 전북도립미술관
세바스티앙 살가도, 김중만, 성남훈은 이미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또한 알 만한 사람들에겐 그들의 작품들도 그리 낯설거나 생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뒷북치는 소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전시회가 뿜어낸 후광이 꽤나 색달랐기 때문이다. 아마도 뭔가에 홀린 듯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와 힘들게 찾아간 탓도 있겠고, 비가 와서 봄답지 않게 을씨년스러운 모악산 풍경이 미술관 뒤에 떡하고 버티고 있었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숱한 찬사의 말은 다른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면, 전시장에서 사진을 보고 남는 건 감동이나 연민이라기보다 세상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봐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분노와 저항에 앞서, 현실을 머리가 아닌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는 수고스러움과 번거로움 말이다. 달리 말해 수많은 구호가 소음처럼 들리는 이유가 세상을 직시하지 못한 허상의 토대 위에 있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코렘(Korem) 캠프의 피난민들, 에티오피아, 1984, 세바스티앙 살가도.
코렘(Korem) 캠프의 피난민들, 에티오피아, 1984, 세바스티앙 살가도. ⓒ 전북도립미술관

비라트나가르, 네팔, 2004년 11월 13일, 김중만.
비라트나가르, 네팔, 2004년 11월 13일, 김중만. ⓒ 전북도립미술관

루마니아 집시,낭뜨, 프랑스, 1992, 성남훈.
루마니아 집시,낭뜨, 프랑스, 1992, 성남훈. ⓒ 전북도립미술관

'광주, 한반도 ing..'

한편 십수년을 거쳐 이제는 변색되다 못해 탈색해 버린 5월의 기억을 예기치 못한 이미지로 다시 마주하는 건 가슴을 두드리는 울림이었다. 만약 김영하가 진행하는 '문화포커스'를 듣지 못했다면 이런 기회를 올해도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어쨌건 '광주, 한반도 ing..'라는 주제로 열린 '5·18 민중항쟁 26주년 기획전'(지점과 지향, 쌍방소통, 조국의 산하, 5·18 민중항쟁 아카이브)은 전날까지만 해도 차갑던 가슴을 뜨거운 무언가로 채우고 있었다.

‘광주, 한반도 ing..’ 안내막(왼쪽)과 전시회의 설명을 듣고 있는 젊은이들.
‘광주, 한반도 ing..’ 안내막(왼쪽)과 전시회의 설명을 듣고 있는 젊은이들. ⓒ 권오성

‘광주, 한반도 ing..’ 참여 작품들.
‘광주, 한반도 ing..’ 참여 작품들. ⓒ 권오성

‘광주, 한반도 ing..’ 참여 작품들.
‘광주, 한반도 ing..’ 참여 작품들. ⓒ 권오성

옛 전라남도 도청 본관 창문 사이로 본 광장 풍경.
옛 전라남도 도청 본관 창문 사이로 본 광장 풍경. ⓒ 권오성
5월에 광주를, 그것도 옛 전남도청을 찾는다는 건 아직까지도 특별하다. 5·18 항쟁은 차가운 머리보다는 항상 뜨거운 가슴으로 다가온다. 세상사의 관심이라곤 오로지 출세에만 있던 철없는 대학 초년의 어느 화창한 봄날, 캠퍼스에 전시된 충격적인 사진들은 기껏해야 종교와 연애라는 대학의 낭만에 휘둘리던 이 무뇌아를 여지없이 휘저었다.

그 해, 그리고 그 다음해 5월에도 친구들의 머리는 깨져나갔고, 어설픈 내 몸뚱이도 시퍼렇게 멍들곤 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5·18 민중항쟁 아카이브' 전시 공간에 한참 동안 앉아 지난 5월의 편린들을 마주할 때엔 심장이 두근대기까지 했다. 아직까지도 한 구석에 열정이 남아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이 열정은 전날의 냉정함과 교차하더니 힘이 다한 증기기관차처럼 계속 씩씩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직도 이 혼란스러움은 완전히 걷히지 않았지만, 이것이 '세상을 차갑게 보되 열정은 잃지 말라'는 어설픈 깨달음은 진정 아니었는지!

참고로 '리얼리즘 다큐멘터리 사진전'은 다음달 25일까지 찾아볼 수 있다. 반면 '5·18 민중항쟁 기획전'은 아쉽게도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다만 오는 27일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부활제가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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