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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아버지가 가꾼 봄배추 입니다.
어머니,아버지가 가꾼 봄배추 입니다. ⓒ 권용숙
며칠 후 엄마는 손수 가꾸신 배추를 따 소금에 밤새 절여놓고, 동네 아주머니 한 분과 김장속을 만들어 새우젓 듬뿍 넣고 봄김장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숨돌릴 겨를도 없이 커다란 플라스틱통에 김칫국물이 새지 않게 비닐봉지에 차곡차곡 쌓아 포장을 해놓고 김치 수송 작전을 펼치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김치통 위에 굵은 유성 매직으로 딸이 살고 있는 동네 주소, 이름, 전화번호를 꼼꼼하고 큼지막하게 써놓으셨을 테고... 그리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여보세요, 큰애냐. 오늘 김치 부쳤다, 내일이면 들어갈 거다."
"네, 김치 도착하면 전화 할게요."

행여 하루라도 더 있으면 김치가 시어버릴까봐 담그자마자 바로 충청도 권씨(종가)집 김치가 서울로 서울로 이동을 합니다.

김치 부쳤다는 다음날 택배회사에서 아침 일찍 전화가 왔습니다. 오후에는 우리 동네에 올 수가 없다며 꼭 오전에 배달을 오겠다고 합니다. 오전엔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고민 끝에 그냥 현관문 앞에 내려 놓으라며 택배비(착불)는 온라인 송금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설마 누가 김치통을 들어갈까, 그냥 믿어 버리고 보는 겁니다.

점심이 되고 저녁이 가까워 오는데 자꾸만 불안해졌습니다. 딱 한 명, 백 명이 착한데 딱 한 명이 김치가 다 떨어져서 김치통 살짝 들어가 버리면 어떡하지? 현관 앞에 놓여 있을 김치통이 그려지며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믿을 사람은 막내밖에 없습니다. 지금쯤 학교에서 도착했겠지.

막내 현욱이
막내 현욱이 ⓒ 권용숙
그냥 김치통 잘 있는지 물어보기라도 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아 전화를 걸었습니다.

"현욱이니. 집에 들어오다 김치통 봤어?"
"응, 봤어."

휴~ 안심이다.

"너, 그 김치통 잘 지켜야 한다."
"엄마, 그 김치통 벌써 베란다에 다 들여 놨는데요."

도대체 막내가 슈퍼맨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한 통에 30킬로그램은 될 것 같은 통이 두 개라고 했는데, 참으로 신기하도다...

"네가 어떻게 그걸 베란다까지 날랐는데..."

놀라서 물었더니 막내는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베란다에 나란히 서있는 김치통 2개, 실제로 통이 엄청 큽니다.
베란다에 나란히 서있는 김치통 2개, 실제로 통이 엄청 큽니다. ⓒ 권용숙
학교에 갔다 돌아오니 현관문 앞에 커다란 김치통 두 개가 있더랍니다. 오늘 김치가 온다는 말은 들었고, 하얀통 두 개의 정체는 미리 알고 있겠다,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하는데 김치통이 걱정이 되어 맘놓고 놀 수도 없고 고민하다가, 둥근 김치통을 일단 옆으로 쓰러뜨려 현관문 앞에서부터 굴리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주방통로를 지나 거실을 지나 베란다까지 굴려와 베란다에서 일으켜 세웠답니다. 그렇게 해서 김치통 들여놓기 끝~! "아우 시원하다 이제 나가서 놀아야지~" 탁탁(손뼉치는소리)

짜식~! 장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철없을 나이에 김치 배달까지 신경써야 하고 말입니다. 일 학년때부터 잘 돌보아주질 못한 막내입니다. 어떤 날은 자려다 갑자기 밖으로 나와 현관문 잠궜는지 확인하고, 까스불도 한 번 켜보고 그럽니다. 그러다 중간밸브 안 잠궜으면 가스 조심하라고 엄마를 혼내고, 저녁밥도 저 혼자 차려먹을 때가 많습니다.

퇴근길, 오늘은 막내 생각이 자꾸만 났습니다. 너무 못 챙겨줘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티없이 맑고 밝은 막내가 참 대견합니다.

"엄마, 아버지! 현욱이가 김치 잘 받아 놨어요. 맛있게 먹을게요."

오늘 저녁에도 빨간 고추가루에 새우젖 듬뿍 넣어 담근 엄니 손길이 닿아 있는 김치를 먹었습니다.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이렇게 김치를 먹고 있습니다. 철이 덜들었다 손가락질 해도 좋습니다.

난, 아주 오래도록 엄마, 아버지가 담궈주신 김치를 먹고 싶습니다.

ⓒ 권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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