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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평론집 <순결과 숨결> 표지
김용희 평론집 <순결과 숨결> 표지 ⓒ 문학동네
저자는 말한다. 소위 말하는 예술적 천재성(모차르트, 이상, 김유정 등을 예로 들고 있다. - 80~82쪽)이 남성 내 여성성의 발현 또는 남성성의 거세에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자신에게 짐지워져 있거나 옭아매져 있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그래서 억압된 성(남성, 여성 모두 사회로부터 강요당하는 성적 억압이 있다.)의 거부와 그것의 극복(때에 따라서는 자기 파괴까지도 감행해야 하는)을 통한, 자기 내의 또 다른 성성과 온전히 결합(대화, 소통)할 수 있을 때의 희열이 바로 천재성의 시현은 아니냐고.

"천재들은 스스로의 육체를 잘라 그 파괴의 흔적을 남기고서 비로소 저 숭고한 천재의 운명을 쟁취한다." (82쪽)

"신체적 경계를 넘어서는 여성/남성의 몸의 결합, 몸의 전이는 신적인 재능과 예술적 영혼을 지닐 수 있다." (87쪽)

가장 흥미 있었던 부분은 '음식남녀'로 시를 분석한 내용이다. 저자는 '남성은 먹는 존재였고 여성은 요리하는 존재였'다고 쓰고 있다. (97쪽) 백석과 송수권의 시를 예로 들어 차려놓은 음식을 먹는 존재로서의 남성의 삶을 지적하고, 나희덕과 김혜순의 시를 제시하면서 음식을 차리고 먹이는 존재로서의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나희덕의 시는 먹을 것을 준비하는 여성으로서의 '존재 나눔' '생명 나눔'으로 보고, 김혜순의 시는 "식욕에 굶주린 신들린 육체"를 내세운 "억압을 벗어나려는 욕망의 발산"으로 본다.

"백석과 송수권은 음식을 통해 소통하는 관계를 지향하지만 결국은 음식을 먹은 기억, 먹고 싶은 욕망이 각인된 대접받는 몸이라 할 수 있다." (107쪽)

"태아를 키워내는 어머니는 자신의 몸을 먹도록 내어주는 카니발리즘으로서의 몸이다. 이 세상의 어머니는 세상의 몸을 먹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놓지만 자신의 몸을 먹도록 내어주는 남성은 예수밖에 없다." (110~111쪽)

이렇게만 보면 자칫 '먹는 것'과 '먹이는 것'이 단순화될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음식'은 '남녀'의 문제를 떠나 다양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신체를 허여하는 행위는 그것이 꼭 '여성'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또 굳이 그것이 '여성성'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먹이는 행위가 '희생'과 '사랑'에 그 맥이 닿는다고 했을 때 이러한 행위는 남성에게서도 찾아질 수 있는 부분이다.

흔히 표현하듯 '벌어 먹인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어찌 보면 이 '벌어 먹인다'의 이면에는 남성권력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여성의 먹이는 행위와 같을 수는 없다. 문제는 이 남성권력이 근대 남성들을 억압하는 역설로 나타나는 현상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한국의 근대사(를) 부권 실추의 과정"(47쪽)으로 보면서 "구체적 맥락 속에서(의) 남성성"(49쪽)을 살펴보는 시도를 한다. 김수영의 시를 근거로 삼아 한국의 근대 남성들에게 있어서의 심리적 강압 기제는 "자신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여성성을 추방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으로써 "그들의 남성성이 구제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52쪽)라고 분석한다.

"80년대 말 이후 90년대 남성들은 급진화된 산업사회 속에서 자본주의의 도구적 삶, 결코 실현할 수 없는 남성적 유형과 싸우며 근대문명과 은밀하게 공모한 가부장적 권위의 역설적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62쪽)

다시 음식남녀 이야기(?)로 돌아와 저자는 갈무리를 한다. 즉 음식을 어떤 소통 양식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음식 먹기는 상대와 관계를 이루어가는 대화와 소통의 한 방식이다. 음식에는 특정한 순간과 경험이 녹아 있다. 역사적 기억이, 전신감각적 느낌이, 존재를 허여하는 몸의 제의(祭儀)가 숨겨져 있다."(114쪽) 나아가 이러한 '음식 먹기'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권력, 젠더/권력을 지적하면서 "여성들(이) 먹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성적인 욕망의 주체로 나아가려"(116쪽)는 새로운 흐름을 짚어낸다.

평문을 읽어가면서 저자의 독특한 비평 방식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시가 더 이상 대중적 기호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라는 대중적 기호를 가져다가 더불어 비평하는 형식이었다. 시도 그렇고 평도 그렇고 독자들에게 제대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비평 방법과 독자들을 배려하는 자세가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용희 평론가는?

이화여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2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했으며 현재 평택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론집 <천국에 가다> <페넬로페의 옷감 짜기―우리 시대의 여성시인> <순결과 숨결>, 연구서 <정지용 시의 미학성>, 영화평론집 <천 개의 거울>, 문화평론집 <기호는 힘이 세다> <우리시대 대중문화> 등이 있다.

순결과 숨결

김용희 지음, 문학동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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