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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등 봄나물과 야생화가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목장입니다.
고사리 등 봄나물과 야생화가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목장입니다. ⓒ 김영래
일요일(21일)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가족의 일요일은 평온한 때가 거의 없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 혹은 첫째·셋째 일요일에 가게를 쉬는 처갓집 호출 또는, 놀러가자는 친구들의 전화로 인해 늘어지게 쉴 수 있는 일요일을 보낸 날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아버지 전화가 아닐까 했는데 이번엔 장모님의 호출이었다. 무릎이 아파서 일하시기도 불편한데 처외삼촌이 운영하는 목장에 고사리를 꺾으러 가시자고 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장모님이 그 몸을 해 가지고 어딜 가시느냐고 졸린 목소리로 성화를 댔지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아내는 급해진 마음에 아이들부터 깨우기 시작했다. “자 빨리 일어나 오늘은 고사리 꺾으러 간다” 아이들이 낑낑대며 투덜거렸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못 들은 척 했다. 곧바로 아내는 협박성(?) 행동을 시작했다.

아내는 시댁이나 친정 부모님들의 호출이 있으면 그 기다림에 늦을까봐 언제나 이런 행동을 취했다. 시간을 세면서 아이들에겐 “그럼 다 집에 있어 엄마 혼자 간다” 라면서 재촉을 했다.

노란 애기똥풀꽃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야생화입니다.
노란 애기똥풀꽃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야생화입니다. ⓒ 김영래
우리는 매년 처외삼촌 목장에서 고사리를 꺾어 유난히 많은 제사상에 올리는데 요긴하게 썼다. 그 전엔 엄마가 산에서 조금씩 꺾어온 것으로 사용해왔다. 처갓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아홉 시가 넘어 20여분 차를 타고 목장에 도착했다. 어제는 친척과 친구 몇 분이 고사리를 꺾어 가셨다고 하셨다.

목장으로 통하는 작은 고개를 올라가니 입구에는 노란 애기똥풀이 인사를 했다. 아이들에게 이 꽃을 꺾으면 노란 애기똥 같은 액이 나오기 때문에 이름이 애기똥풀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예전에 시골에서 소 풀을 벨 때도 이 풀은 독이 있어 조심했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그것을 꺾어서 직접 노란액을 확인해 보았다.

풀밭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고사리를 꺾은 흔적이 있었지만 우리 몫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허리춤에 비료포대로 바구니를 만들어 차고 고사리를 꺾어 담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를 꺾으며 아이들은 마냥 신났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를 꺾으며 아이들은 마냥 신났습니다. ⓒ 김영래
자루가 필요해서 축사로 자루를 가지러 가는데 여기저기 보이는 고사리가 자꾸 눈에 들어와 발을 옮길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쭉 뻗은 놈이 하나 보여 손이 닿으면 그 옆으로 여러 개의 고사리대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 놈들도 심심한지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꺾이지 않으려는 듯 아니면 나와 숨박꼭질을 하려는 듯 내가 한번 꺾고 지나간 곳인데도 다시 돌아가다 보면 서너 개의 고사리가 불쑥 솟아나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신났다. 학교와 학원을 벗어나 푸른 초원 위에서 맘껏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한 나절에 한 자루를 꺾었다. 목장엔 고사리 뿐 아니라 여기 저기 산초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기름집을 운영하는 처갓집은 가을에 이곳에서 딴 열매로 꽤 많은 자연산 산초기름을 짜서 판매도 하고 여기저기 친척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신다.

심봤다고 크게 소리치라고 했더니 그게 뭔소린지도 모르고 목장이 떠들썩하게 아이들이 떠들어댑니다.
심봤다고 크게 소리치라고 했더니 그게 뭔소린지도 모르고 목장이 떠들썩하게 아이들이 떠들어댑니다. ⓒ 김영래
또 잔대 싹들이 많이 보여 고사리 포대를 내려놓고 아이들과 같이 캤다. 한 뿌리를 캘 때마다 아이들은 인삼같이 생겼다며 들고 엄마에게로 달려가 자랑을 늘어놓고 왔다. 어렸을 때는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이것을 캐서 고추장을 발라먹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목장의 경계로 소나무 숲 밑엔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잎 밑에 하얀색 종 같은 꽃이 조롱조롱 매달린 둥그런 밭이 나타났다. 마치 금낭화 꽃과 비슷한 배열로 매달린 꽃이 화려하지 않고 누룽지 같은 구수한 맛만큼이나 조용하고 순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둥글레는  모양새 만큼이나 조용하고 수수해 보입니다.
둥글레는 모양새 만큼이나 조용하고 수수해 보입니다. ⓒ 김영래
점심은 삼겹살을 텃밭에서 키운 상추와 잔대 싹을 곁들여 쌈을 쌌고, 두릅무침도 참기름과 뒤섞여 고소한 맛을 더했다.

성찬 후 겉잠을 잠깐 잔 뒤엔 아이들은 집에 두고 어른들만 올라가 두 시간 정도 꺾고 내려왔다. 하루에 두 자루를 꺾었으니 올 해 제사상엔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돈으로 치면 얼마 되지 않지만 내 손으로 직접 장만한 것이라 더 뿌듯했다.

이불 속에서 늦잠을 자는 달콤함보다 자연의 소중함과 아련한 어릴 적 추억을 되새김할 수 있었던 즐거운 휴일이었다.

한 자루는 처가집에 가져가고 또 한 자루는 엄마한테 가져갔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모였는데 며느리 자랑이 늘어졌습니다. 아내는 시간을 잘 맞췄다며 좋아했습니다.
한 자루는 처가집에 가져가고 또 한 자루는 엄마한테 가져갔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다 모였는데 며느리 자랑이 늘어졌습니다. 아내는 시간을 잘 맞췄다며 좋아했습니다. ⓒ 김영래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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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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