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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블로그에 만화 <당그니의 일본표류기>를 연재하고 있는 시민기자 김현근씨.
오마이블로그에 만화 <당그니의 일본표류기>를 연재하고 있는 시민기자 김현근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만화가를 꿈꾸던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전산과를 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도 했지만 어렸을 적 꿈에 미련이 남았다. '그래, 망할 때 망하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자.'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짐을 꾸렸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6년 뒤, 소년은 자신의 일본 유학생활을 담은 만화책 <당그니의 일본표류기1>(미다스북스)를 출판했다. 만화가를 꿈꾼 지 20여 년, <오마이 블로그>에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표류기'를 연재한 지 9개월만에 따낸 열매다.

독자들에게 '당그니'로 더 알려진 김현근(33·일본 모 애니메이션 회사)씨. 출간 사인회 및 강연회를 위해 잠시 한국을 방문한 그를 20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아담한 공원에서 만났다.

별 볼 것 없는 평범한 공원에서 휴대폰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한국의 모든 게 그리웠어요"라며 방긋 웃는 모습, 영락없는 소년의 얼굴이다.

당그니 '단골' 아이디, 모두 기억

'블로그 추천글'에 자신의 글을 한 번쯤 올려본 블로거라면 느껴 보지 않았을까. 비록 원고료는 지급되지 않지만, 기사와는 달리 자기 자신만의 자유로운 글쓰기로 독자들을 기쁘게 했다는 뿌듯함.

게다가 그런 글들이 팬들의 사랑을 받아 한 권의 책으로 묶이고, 대형서점 한켠에 진열돼 팬 사인회와 강연회까지 열게 된다면?

"뿌듯함보다는, 3권 완결판이 올해 말 나오는데 그때 가서야 '책을 냈다'는 느낌이 들 듯해요. 강연회는 제가 유명인사라서 하는 게 아니라 사인회만 하면 왠지 사람들이 덜 올 것 같아서…(웃음) 만화로 독자와 만나는 일도 좋지만, 직접 마주하고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한국을 찾았습니다."

<당그니의 일본표류기1>(1화~36화)은 블로그 연재 분 중 1~20화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업그레이드' 판으로 기존과는 색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편집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20가지의 구체적인 일본 '표류 정보'도 블로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이다. 여행, 유학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다. 더 이상의 구체적인 정보는 비밀로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사서 보시길.

당그니 블로그의 하루 평균 방문객 수는 약 2000여명. 고정 팬들도 제법 많다. 그래도 '소심한 소년' 당그니는 단골 방문객의 아이디를 다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이날 팬 사인회에 오기로 한 분들의 아이디도 직접 출력해 일명 '출석부'를 만들어 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한국에 있는 분들과 작품을 두고 얘기하기가 쉽지 않은데, 오마이 블로그를 통해 그 분들과 만나고 반응도 살피는 게 즐거웠어요. 만화 그리는 데 힘도 많이 되고…, 작품은 애정을 먹고 자라는 듯해요. 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니죠."

그가 오마이 블로거들을 유독 사랑하게 된 이유는 만화를 연재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한 블로거가 '영어'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는 걸 읽고 재미난 글에 댓글을 달았어요. '나는 일본에 사는데 미국에서는 이러저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군요' 했더니 그 분이 '그럼 일본 이야기도 들려달라'고 해서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게 됐죠. 처음에는 글만 쓰다 나중에 몇 개 그려 놨던 만화를 올렸고, 그게 인기가 있자 오마이뉴스가 장기 연재의 길을 터주었죠."

"당그니 그리다 회사에서 조는 건 다반사"

ⓒ 오마이뉴스 남소연
90년대 한국 가요계를 주름 잡던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그들은 어느날 문득 '창작의 고통'을 눈물로 고백하며 잠시 무대를 떠났었다. '블로거 저자' 당그니도 만만치 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

"인간 이하의 삶을 영위하고 있죠."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표류기> 한 편을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무려 60여 시간. 평일에 짬짬이 밑그림을 그리고 토요일에는 그 원판을 스캔해 컴퓨터 파일로 저장한다. 이날 인물 배치와 인물 채색도 어느 정도 끝내야 한다. 채색은 주로 '포토샵'을 이용한다.

그리고 일요일, 배경과 대사를 넣고 나면 어느덧 월요일 새벽 3~4시께. 회사에 출근해 조는 건 다반사다.

그래서일까. <당그니의 일본표류기1>에 대한 그의 애착에는 '비장감'이 서려 있다.

"판매실적이 낮으면…, 칩거해야죠. 주말마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했는데 결국 인간 이하의 성적이 나온다면, 정말 비참해집니다!"
"일본에는 책이 다 팔릴 때까지 있을 겁니다! 1권이 안팔리면 2권 내서 다 팔릴 때까지."
"잘 안 팔리면 블로그 폐쇄해야죠. (웃음) 3권 끝내고 팔린 상태 봐서."

"당그니, 이젠 본업이 됐어요"

그는 만화와 관련된 후일담도 들려주었다.

먼저 <당그니의 일본표류기1>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34화 만리장성을 넘어라'와 '35화 군대쑤리가의 힘?' 뒷담화.

이야기에서 정아무개 선배는 당그니에게 "'군대쑤리가'(군대 축구) 경험이 있는 한국 남자들은 무조건 이긴다"면서 중국 사람들과 고기내기 축구 시합을 하자고 꼬드긴다. 운동장에 끌려가다시피한 당그니, 그러나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사실 6대 1로 졌는데 아무래도 강연회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 3 대 1로 진 것으로 그렸죠(웃음). 그런데 정작 화가 났던 건, 중국팀이 '공짜 고기'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말도 없이, '우리가 이겼으니 당연히 당신들이 내야 한다'는 식으로 자기네끼리만 모여 신나게 먹고 훌쩍 자리에서 떠버린 거죠. 우리가 고기를 얻어먹게 되면, 상대에게는 맥주 한 잔 정도는 사 줄 수 있는 게 한국 문화잖아요."

'5화 첫 외출'에서는 편의점에 진열된 소위 '야한 잡지'를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보고 있는 일본 남자들이 묘사된다. 콜라를 사러 간 당그니도 그 틈에 끼여 1시간 동안 잡지를 열독하는데.

"1시간은 좀 과장된 거죠. 하지만 일본 남자들의 그런 행동은 사실이에요. 일본 여자들도 그렇게 서서 본다 하더라구요. 내가 뭘 해도 남들이 간섭하지 않는, 한국과는 조금 다른 문화적 차이가 있죠."

일본 문화의 특징을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에 빗댔다. 제작에 참여하는 애니메이터들에게 각각 캐릭터가 지정되고, 그들은 마치 하나의 부품처럼 정해진 캐릭터만 그려야 하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해도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그래서 "내 작품을 만들어 보자"며 머리도 식힐 겸 시작했던 '당그니'가 이제는 아예 본업처럼 되었다고 한다.

'당그니'의 다음 이야기는?

ⓒ 오마이뉴스 남소연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표류기'는 52회가 최종회가 될 예정이다. 또 책으로 나오는 <당그니의 일본표류기> 전 3권은 올해 말까지 완간된다.

그는 "당분간 좀 더 재미있는 일본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가 현재 흥미를 느끼는 것은 '한-일 부부'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의 언어문제나 한-일 양국 간의 역사교과서, 독도 문제가 터질 때 둘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국가 간의 거대 담론을 떠나 실제 사람들이 사는 모습,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지금까지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 대한 정보를 흥미롭게 전달해주는 게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표류기'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면, 앞으로는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가 더해질 것 같다.

"글로만 보면 실감이 가지 않는 일본 문화를 '당그니'란 캐릭터를 통해 자연스럽게 느껴보세요. 일본 가시는 분들에게 시뮬레이션(모의 실험)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여전히 꿈 많은 소년처럼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당그니'. 그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김현근씨는 6년 전 가을, 결혼한 지 꼭 한달 되던 날 사랑하는 아내를 뒤로 하고 어학연수 겸 탐사차 일본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연수를 마친 뒤 애니메이션 전문학교(동방학원전문학교)에서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공부했고, 이듬해 겨울부터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모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 일본에서 사랑하는 아내,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김씨가 참여한 작품으로는 <건담SEED>, <이누야사>, <아톰>, <마이히메>, <고찌카메>, <아이실드21>, <듀얼마스터차지> 등이 있고, 현재는 <제가페인>, <메이져(NHK)>, <가고일> 등의 제작에 참여(원화작업)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그니'란 별명은 주변 사람들이 지은 것으로 별 의미는 없고, 단지 이름이 '근'으로 끝나 붙여진 거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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