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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들어진 스탭목걸이 티켓과 공연전단
ⓒ 김명진
지난 17일 저녁 7시 30분, 설레는 맘을 애써 진정시키며 친구들과 함께 대학로에 도착했습니다. 26살이 되도록 연극 한 편을 보지 못한 저에게 천금같은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제안으로 연극 <노이즈 오프>를 50% 할인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연기파 조연으로 각종 드라마를 종횡무진 활약 중인 안석환씨와 오랜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온 송영창씨가 출연한다는 것과 재미있다는 의견 외에 사전지식은 거의 전무한 상태로 입장권을 받아들었습니다.

관객과 함께 만들어 가는 연극 <노이즈 오프>

입장권을 받아들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반 입장권이 아니라, 'STAFF'라고 씌어있는 목걸이였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객은 스태프라며 수동적인 관객이 아니라, 극에 직접 참여하는 능동적인 관객을 원하는 듯했습니다.

극이 시작되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실제로 연출가로 출연하는 안석환씨가 객석 제일 뒤쪽에서 마이크를 들고 연기지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극을 보고 있지만, 실제로 연극이 아닌 것만 같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가 생각났습니다.

'낯설게 하기'란 관객들이 극중의 시간과 공간에 몰입하고 있을 때, 극에서 잠깐 빠져나와 연극이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다는 '현장성'을 관객들에게 환기시켜주는 기법입니다. 극중 상황에서 벗어나 현재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게 됨에 따라, 비판적으로 극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고 또다른 재미와 웃음을 유발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지요. 원래 NG장면이 더 재미있듯 말이죠.

스태프라는 명찰을 달고 앉아있는 이유를 더 잘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이 스태프이니 무대와 객석 사이를 오가는 연출의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밖에요.

1막이 지나고 2막이 오르니 이러한 '낯설게 하기'는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연극이 공연되기 전부터 시작해서 실제로 극이 진행되면서 벌어지는 무대 뒷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실제무대를 뒤로 돌려서 뒷모습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주고, 배우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무대 뒤로 나가서 실제로 연극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 사실적이지요.

하지만, 실제 관객들이 보는 무대에서는 대사를 작게 하고('노이즈 오프' 상태) 무대 뒤에서는 극중의 극 <낫씽온>의 대사를 크게 하는데다 모든 출연진들이 나와서 연기를 하기 때문에 다소 산만하여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디에 눈을 맞춰야 할 지 모르겠더군요.

2막과 3막사이는 아예 드러내놓고 무대를 돌리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극중의 극 <낫씽온>이 끝날 때는 막이 내려가는 것조차 계속 정지했다가 다시 내리고 하면서 극이 엉망임을 드러내며 끝까지 '낯설게 하기'를 놓지 않습니다.

연극을 본 소감 "웃다가 죽는 줄 알았어!"

1막의 시작은 가정부 클라켓 부인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져서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연출가 안석환씨가 극중의 극에서도 지루하다고 좀 빨리 해달라고 하더군요. '아~ 또 낯설게 하기!'

그리고 나중에 실제 연출을 맡은 김종석씨의 얘기를 들어보니, 코미디인 만큼 초반에 너무 빠르게 전개하거나 감정을 폭발시키면 나중에는 관객들이 더 높은 수준을 기대하게 되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했다더군요.

지루한 것도 잠시, 부동산 직원 로저와 그의 애인이자 세무서 직원인 비키가 재미를 보고자 들어오고, 탈세를 하기 위해 스페인에 가 있다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집으로 돌아온 집주인 필립과 플라비아, 거기다 빈집털이 도둑과 집을 보러 온 중동왕자까지 들어오면서 관객들은 극중의 극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숨고 도망치는 이들의 동선은 기막히게 잘 맞아떨어져서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대사도 아주 재미있는데, 특히 도둑의 "이게 뭐야? 창살도 없고, 경보기도 없으니 이거 절도 유혹죄잖아" 라는 대사가 재미있었습니다.

1막에서 이 연극이 원래 어떤 내용이라는 것을 인지시킨 후, 2막에서는 이 연극이 앞으로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계'에 대해서 조명을 하고 있는데요, 비키역의 광덕과 연출·조연출의 삼각관계에다 클라켓 부인역의 이숙과 로저역의 현철의 싸움, 자꾸 이숙과의 관계에 있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하게 되는 영창. 계속 술을 먹고 사라져 고생하게 하는 도둑역의 정현, 무대 조연출하랴 대역하랴 잔심부름하랴 바쁜 화룡. 거기다 주책맞게 이말 저말 전하는 플라비아 역의 호영. 이쯤되면 정말 정신이 없습니다.

3막이 오르면, 실제 <낫씽온>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보면서 관객들은 웃느라고 힘이 들 정도입니다. 정말 원없이 정신없이 눈물 흘리면서 웃어봤습니다. 원래 대사를 알고 있는데 어떻게 잘못하는지, 또 중요한 소품들이 있어야 할 장소에 없어서 어떻게 엉망이 되는지를 알게되기 때문에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에 따라 애드립으로 잘 넘어가려는 사람, 애드립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자기 대사만 외워서 하는 사람, 될대로 되라며 막 하는 사람, 끝까지 부여잡고 극을 이끌어 나가려는 사람 등 작은 연극에서도 수많은 인간군상을 보여줍니다.

극중 극인 <낫씽온>도 동선이 까다롭고 정신없는데, 그것이 망가지는 모습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정말 힘들게 준비했을 것 같았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이러한 멋진 연극을 만들어 냈고, 또 그 뒤에는 훌륭한 연출가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1막과 2막은 3막의 폭발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대와 무대 뒤, 그리고 실제 공연모습이 딱 들어맞지는 않지만 헤겔의 변증법의 논리의 3단계인 정반합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월 19일부터 시작된 이 공연은 오는 28일 막을 내립니다.

연극이 끝나고 나선 연출가 김종석씨를 마주할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교수님의 절친한 선배이자 저희학교 선배님이시기도 합니다.

다음은 연출가 김종석씨와의 일문일답입니다.

"연출이 보이지 않는 연극이 좋은 연극"

- 연극 재밌게 잘 봤습니다. 특별한 관전포인트가 있다면요?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다 여러분들과 같은 관객분들이 즐거워해주시고 즐겨주셨기 때문에 좋은 연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연극을 처음 보시는 분도 있다고 하셨는데, 이번 연극의 목표 중 하나가 연극을 처음 보시는 분들도 아무 부담없이 즐겁고 유쾌하게 즐기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연극을 보시는 동안에는 순수하게 웃고 즐기시다가 연극을 보고 집에 돌아가셨을 때는 다시 한번 돌아보며 음미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 연극에 정어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데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정어리는 영어로 'sardine'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숨바꼭질 놀이 (Hide & Seek)역시 'sardine'이라고 합니다. 작가가 중의적인 표현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흡사 숨바꼭질 같으니까요."

- 이번 연극에서 연출하실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다면요?
"이번 작품은 연출하기가 수월했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졌을 만큼 유명한 작품인데다 특별히 연출에 힘을 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연기자들에게도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극에서 연출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을 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의도한 것도 있지만, 연출이 보이지 않는 연극, 관객을 위한 연극이 좋은 연극이기 때문입니다."

- 작가가 10년이나 걸려서 집필을 했고, 장르가 블랙코미디라고 되어있던데 숨겨진 의미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사실 이 작품은 굉장히 생각할 것이 많은 철학적인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관객들에게 전혀 강요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관객들이 느끼는대로 관람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관람법입니다.

그래도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1막에서 영창씨가 "왜 중동왕자랑 필립이랑 얼굴이 똑같아요?"라고 대사를 하니까 석환씨가 "모든 일이 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돼?"라는 대사를 하지요? 그리고는 석환씨가 신과 같이 대사를 하구요. 그래서 연출인 석환씨가 하자는대로 결국 연습을 하죠.

그런데 3막에서는 어떻던가요?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배우들의 자유의지대로 하니까 더 재미있지 않던가요? 이렇게 신에 의해 지워진 운명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노이즈 오프>라는 연극입니다. 여러분들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면 훨씬 더 재미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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