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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식날 담배를 끊겠다고 하자 가장 기뻐하는 큰 아이.
세례식날 담배를 끊겠다고 하자 가장 기뻐하는 큰 아이. ⓒ 유성호

"유세차 병술년 오월 십오일에 불혹인 유씨는 두어자 글로써 연초에게 고하노니, 인간 장부의 손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연초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도처에 흔한 바이로다.

이 연초는 한낱 작은 물건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 하리요. 슬프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하노라." <유씨 부인의 '조침문' 일부 차용>


20년 지기 '빵야'와 이별을 고했습니다. 빵야는 저희 집에서만 사용하는 은어입니다. 바로 담배를 뜻합니다.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해 아이들이 물어오면 그동안 얼버무리는 의미에서 '빵야한다'로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20년간 어머니의 구박과 또 몇년간은 아내와 아이들의 면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버텼는데, 갑자기 이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금연을 선포하기엔 기회가 좋았습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세례식' 날을 이용했습니다. 세례 간증을 하면서 금연을 선포한 것입니다.

세례식날 금연 선포... 20년지기와 생이별

사실 그 동안 아이들에게 면목이 없었습니다. 담배 피우는 모습만 보이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와 언제 끊을 거냐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 때마다 임시변통으로 "이게 마지막이다" "다음달에 끊는다" "음력 5월에 끊을 것"이라는 둥 얼토당토않은 답으로 아이들을 속여 왔습니다.

아이들이라서 곧 잊을 거라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지만 기막히게도 다음 번 질문에는 이전 약속을 되짚는 영악함을 발휘합니다. 최근에는 저의 거짓말이 측은했는지 연민의 눈빛을 보내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럴 때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입니다.

최근에 써먹었던 금연 디데이는 '음력 5월'이었습니다. 원래는 양력 5월이었는데, 지키지 못하자 그만 얼렁뚱땅 음력이라고 답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음력 개념이 생소했나 봅니다. 그게 언제냐고 묻습니다. 실은 저도 언제부터가 음력 5월인지 잘 몰랐습니다. 달력을 뒤적이니 양력 5월 27일이 음력 5월의 시작입니다.

"이제 너의 연기를 꾸역꾸역 폐로 밀어 넣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제 너의 연기를 꾸역꾸역 폐로 밀어 넣지 않아도 되는구나" ⓒ 유성호
따지면 약 2주 앞당겨 금연 약속을 실천한 것이 됩니다. 어깨가 절로 으쓱여지는 대목입니다. 금연한 지 비록 며칠 되진 않았지만 걱정했던 금단증상이 크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담배가 생각나면 재빨리 다른 생각으로 덮어버리는 방법을 씁니다. 머릿속에 잔상을 없애면 기호(嗜好)도 사라집니다.

당장 나타나는 장점은 주머니가 단출하고 깨끗한 것입니다. 답배갑과 라이터를 넣고 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몸에 묻어서 따라다니던 퀴퀴한 담배 냄새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주변 사람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경제적으로 하루 2500원씩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짭짤함도 무시 못할 이익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몸 속으로 니코틴과 타르를 더 이상 꾸역꾸역 밀어넣지 않아도 되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 아니겠는지요. 또 아이가 있는 방안이나 식당같은 곳에서 담배를 빼무는 일이 없어져서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술 마시는 것도 거의 줄였습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술을 찾아 마시는 버릇을 없앴죠. 그 결과 술살이 많이 빠져서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덕분에 두세 시간 씩 축구를 해도 그다지 힘든지 모를 정도입니다.

친했던(?) 담배와 술을 모두 멀리 하니 친구들이 '무슨 낙으로 사냐'며 힐난입니다. 너희같은 친구가 있어서 산다고 되받으니 입을 삐죽이고는 "나도 줄이긴 줄여야 하는데…"라며 혼잣말을 합니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못내 부러운 모양임은 틀림없습니다. 저 역시 금연하는 친구를 보고 그랬으니까요.

"문방사우와 아울러 육우(六友)를 꼽으라면 능히 자리를 차지할 담배와 술. 20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너희들이건만, 담배 너에게는 조문을 읽어 죽음을 슬퍼했으니 다시 볼 날이 없었으면 싶고 술 너는 가끔, 아주 가끔씩 만나 담배를 추모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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