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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18일 박근혜 대표 등이 기념식에 참석한 이후 충장로에서 지방선거 첫 거리유세를 벌인 예정이다. 앞서 12일 한나라당 박희태 부의장 등은 5.18묘지를 찾아 정화작업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18일 박근혜 대표 등이 기념식에 참석한 이후 충장로에서 지방선거 첫 거리유세를 벌인 예정이다. 앞서 12일 한나라당 박희태 부의장 등은 5.18묘지를 찾아 정화작업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한나라당 서울 시장 경선에서 오세훈이 당선되었음은 '수구꼴통'이라고 불리던 한나라당이 그동안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으레 자신들의 몫이었던 정권으로부터 멀어진 지 10여년, 한나라당과 한국의 보수 진영은 철저하게 거듭났다. 국민 경선과 각종 선거 등의 민주적 시스템에 조직적으로 적극 참여함으로써 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민주주의'에 놀랍도록 적응한 그들은 이제 민주적으로 '보수 혁명'을 꿈꾸고 있다.

세련된 보수의 진화-낡은 개혁의 퇴화

세련된 보수의 등장은 한나라당 내부에서 이미 착실히 진행되어 왔다. 지난 번 최고위원 선거에서 '유신공주' 박근혜가 1위로 당선된 것은 한나라당이 여전히 '보수꼴통'이라는 증거로 간주되었으나, 바로 그 선거에서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던 원희룡이 2위로 선출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후 한나라당의 사무총장 자리는 과거 민중 운동을 주도했던 이재오가 꿰찼고, 경기도지사 후보 김문수도 노동운동가로 명성을 날렸던 구 민중당 출신이다.

저들에게 '변절자'니, '배신자'니 비난하며 침을 뱉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확고부동한 사실 하나는 한나라당은 더이상 '수구꼴통'이 아니며, 몇 번의 시행착오(가령 탄핵이라는 자살골) 끝에 민주화에 단련되어 마침내 자력갱생에 성공한 보수 정당이라는 것이다. 민주화 세력의 일부마저 품에 껴안고, 세련된 이미지 정치까지 구사하면서 한나라당은 '일일신 우일신'(日日新又日新),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개혁 세력'은 정권 교체 후 10여년 만에 놀랍도록 '한나라당'스러워졌다. 열린우리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는 한국의 최고 재벌 삼성의 CEO 출신이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왔던 이계안 역시 재벌 기업의 경영자 출신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행정과 정치를 '경영'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이명박의 충실한 후계자들이다.

17일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당 의장 등을 비롯해 소속 의원들이 광주로 총출동했다고 과언이 아닐 만큼 80여명이 광주를 찾았다. 정 의장 등은 이날 오후 5.18기념문화관에서 특별회견을 열고 지지를 호소했다.
17일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당 의장 등을 비롯해 소속 의원들이 광주로 총출동했다고 과언이 아닐 만큼 80여명이 광주를 찾았다. 정 의장 등은 이날 오후 5.18기념문화관에서 특별회견을 열고 지지를 호소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스스로 5·18 민주화 운동의 후예이며 6월 항쟁의 적통임을 의심치 않은 현 정권은 지난 5월 4일 평택에서 20세기의 야만을 되풀이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당성과 정통성 그리고 정체성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서부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한·미 FTA 졸속 추진 등 그들은 정권을 잡은 후 급속하게 퇴화해 갔다.

그러고 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추진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정권 교체 후 10여 년 동안, 양 세력들은 '역지사지'의 옛 지혜를 발휘해 차츰 상대방과 닮아갔으며, 정책적 측면에서는 놀라우리만치 신자유주의 일색으로 수렴되어 쌍생아가 되어 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가 대연정을 넘어 '한우리당'으로 통합된다고 하더라도 그리 놀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없이 우울하고 서글픈 사실 하나는 현 정권의 주류와 한나라당의 젊은 리더들, 그리고 장외에서 매섭게 대열을 정비하며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회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른바 '뉴라이트'들이 하나같이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후예들이며, 그네들의 그 화려한 탄생 설화의 시초에는 '오월의 광주'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금배지를 단 채 광주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그들은 기실 광주의 정신, 즉 5월의 참 정신을 무참하게 배반한 철면피들이다.

그네들의 5·18, 우리들의 5·18

5·18이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일획을 긋는 결정적인 사건인 것은 5·18을 시점으로 '민주주의'의 의미가 질적으로 도약했기 때문이다. 야만적인 군사 독재의 탄압 속에서 기존의 민주화 운동은 제도적·절차적 수준의 민주주의 운동에 머물러 있었다.

김지하가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주의가 바로 이 형식상의 민주주의였다. 그토록 애타게 민주주의를 갈급했던 그가 90년대 초 <조선일보>에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며 학생운동을 질타한 것도 87년 직선제 쟁취를 민주주의의 완성인양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5·18로 촉발된 80년대의 거대한 민주화 운동은 이미 그 기원에서부터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즉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려는 근본적인 변혁 운동이었다. 이는 광주 진압을 묵인한 미국의 행태를 통해 비로소 그 나라의 실체를 자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즉 미국에 대한 각성으로부터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허상을 꿰뚫는 인식의 비약으로 심화된 것이다.

이 통렬한 각성과 자각은 NL과 PD로 상징되는 자생적인 변혁 이론 생산과 근본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분출되었다. 5·18 이후 한층 가혹해진 신군부의 공포 통치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동력도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87년 6월의 거대한 함성은 폭압적인 군사 정부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이 빛나는 승리는 5월의 광주가 보여준 참된 민주주의 정신이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5·18이 4·19를 뛰어넘은 것은 그 사회 운동의 주체가 학생에 머무르지 않고 노동자와 농민을 포함한 기층 민중 전체로 확장, 심화되었다는 점에 있다. 흔히 '노학연대'라고 표현되었던 이 광범위한 연대 운동은, 군부의 폭력적 기제를 압도할 정도로 대규모적이고 전사회적이었던 것이다.

황석영의 르포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는 5월의 광주,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5월 22일부터 닷새 동안 해방된 광주의 모습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그런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광주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사람들은 학생이나 먹물들이 아니라, 사회의 밑바닥에서 몸뚱아리 하나에 의지해 살아가던 보통 사람들이었다.

'민주주의'는 결코 선거에 국한된 정치 개혁의 요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5·18로 촉발된 그 '민주'는 결코 법률적인 틀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사회 가치의 변혁과 인간됨의 거듭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5·18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래형의 5·18

오늘은 2006년 5월 18일이다. 1980년 5월에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어 벌써 이십대 후반이 되었을 시기다. 그만큼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고, 5월의 정신도 시간의 흐름에 풍화되어 '역사'가 되어간다.

이제는 국가가 앞장서서 5·18을 민주화 운동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기념'이라는 공식 행사를 통해 5·18을 영원히 과거의 한 순간으로 봉인하고 봉합함으로써, 광주의 참 정신을 박제화하고 있는 것이다.

'노학연대'의 연합전선으로 군부를 타도한 후, 학생들과 먹물들은 썰물처럼 그 운동에서 철수했다. 그들은 제도적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마자 그 제도 속에서 과거의 영광을 들먹이며 금배지를 차지했다. 함께 거리에 나섰던 기층 민중들은 팽 당했고, '386'으로 불렸던 일부의 학생 운동가들은 민주화의 열매를 독점했다. 그리고 이제는 '선진 한국' 운운하며 신자유주의의 전도사가 되어 또다시 민중들을 배반하고 있다.

이처럼 그들이 '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제도 안에 안주해 감에 따라, 구체제 세력들도 안도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그 '민주주의'에 적응해 왔다. 정치권력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재벌과 언론 등, 사회 경제적 지배 세력들이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건재함은 이 때문이다. 즉, 민주화 세력들은 새로운 세상을 구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구체제 속으로 '포섭'당한 것이다. 군홧발로 짓밟혔던 오월 광주의 정신은, 민주화 세력에 의해 '민주적으로' 다시 한 번 구겨졌다.

오월의 광주가 보여주었던 그 세상은 아직도 오지 않은 '미래' 속에 존재한다. 5·18을 그네들에게 맡겨두고 방치하는 것은 5월에 죽어간 이들에 대한 모독이다. 그분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온몸으로 증언하며 숭고하게 저 세상으로 떠났다. 이제 이 세상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사그라들어가는 그 5월의 불씨를 되살릴 차례이다. 이는 민주화 이후 세대인 우리에게 맡겨진 역사적 책무이자, 인간으로서의 예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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