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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겉그림
책 겉그림 ⓒ 갤리온
천만 개의 계란으로 바위를 치다보면 그것도 언젠가는 금이 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 변화의 징조가 털끝 만큼도 보이지 않는 힘겨운 시간을 오로지 확신 하나로 버틴 사람이 있다. 숱한 인생의 고비를 넘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일만 개척하여 무쏘의 뿔처럼 거침없이 가는 사람이 있다. 중국에서 드라마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태형'이 그다.

그는 드라마 제작자로서 미친 듯이 일해 왔는데, 그 일에 우뚝 서기까지 왜 미쳐야 했는지, 무엇 때문에 미쳐야 했는지, 어떻게 미쳐야 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확신에 찬 사람답게 일이 더디더라도 결코 불안해하지 않으며, 결과를 셈하지 않고 과정에 충실하게 살아 왔다.

바로 그가 살아 온 삶의 발자취,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어 온 열혈인생 노트가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미쳐야 통한다>(갤리온·2006)가 그것이다. 이 책은 젊은 시절, 그는 무엇을 위해 신명을 바치려 했고, 또 드라마 제작자의 과정 속에 뛰어들어서는 어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는지, 그 모든 것을 보여준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그의 삶은, 마치 광인(狂人)의 삶을 보는 듯하다.

1988년 5월, 그는 통일결사대에 들어가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를 점거한다. 민주화를 부르짖는 대열에 그도 한 몫 했던 것이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쳤고, 방벽을 쌓았고, 현수막을 내걸었고, 그리고 화염병을 던지며 쇠파이프도 휘둘렀다. 그 때문에 결국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갇힌다.

그를 맡은 변호사는 그를 돕겠다고는 하나 오히려 회유하기에 바빴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자며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은 잘못 한 것이 없기에 그 모든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하여 그는 재판 당일 변호사를 물리면서, 카스트로가 혁명 죄로 재판을 받았을 때 했던 것처럼 자기 스스로 변호를 했다. 물론 재판부는 그의 항변을 받아들일 리 없었고, 결국 감옥으로 옮겨졌다.

그 감옥 속에서 1년간 고생한 뒤 1988년 12월 하순, 12·12사태와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때 전두환 대통령이 국회에서 대 국민사과를 발표하자, 그는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다. 곧이어 산업현장을 돌며 노동운동을 하지만 어머니의 눈물 앞에 군에 입대하여, 만기전역을 하게 된다.

그것이 젊은 날 민주화 운동을 위해 바쳤던 그의 신명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젊은 날에는 민주화 운동에 온 힘을 바치며 노동 운동에도 투신할 수 있었지만, 막상 군에서 전역한 뒤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수로 지내면서 한 일이라곤 집 근처에 있는 영화개봉관을 전전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는 중국 5세대 감독들이 만든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현 위의 인생> 등을 보고 눈을 뜨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영화산업에 빠져들었고 그래서 무작정 북경으로 날아가 그곳 근처에 있는 어학원에 접수하여 열심히 공부한다. 그와 동시에 베이징의 '전영학원'에도 기웃거린다. 그곳은 이른바 영상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중국 최고의 예술대학이었다. 운 좋게, 그는 그곳에서 민레이와 양청이라는 두 학생을 만났는데, 훗날 그들은 그에게 영화산업에 대한 기회와 함께 크나큰 시련까지 안겨 주게 된다.

그 뒤 1년짜리 단기유학생 생활이 끝나, 한국에 돌아와 해운업에 취직하여 맨몸으로 일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중국 현지에 파송되어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중국인과 조선족의 특성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영화산업에 투자자로 나선 김태진씨와 전영학원에서 만난 민레이, 양칭과 함께 본격적인 영화 산업에 뛰어든다. 그래서 세운 것이 바로 '몽타주 프로덕션'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세운 프로젝트는 <가을동화>의 판권을 확보하여 중국의 방송사에 배급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드라마의 판권 금액이 곱에서 곱으로 뛰고, 대만의 한 업체에 그 판권이 넘어감으로 인해 쓰디쓴 패배의 잔을 마시게 된다. 그야말로 일확천금을 바로 코앞에서 놓친 꼴이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할 줄 몰랐다. 그 뒤 오락 프로그램의 하나인 <돌파 2000>을 제작하기도 하고, 또 '재물의 신이 될 수 있는 길을 안내한다'는 뜻의 <재신도>를 촬영한다. 하지만 연이어 벌인 그 일들이 모두 실패로 끝나고, 같은 업계 내에서 신용 상에 큰 타격을 입어, 결국 문을 닫아야만 했다.

"강을 건넌 후에도 다리를 없애지 마라."(過河替橋) (137쪽)

이는 그가 모든 것을 정리 한 뒤, '성일해운'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게 된 까닭을 설명하는 글귀이다. 그가 다시금 그곳의 대표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지난 날 사표를 낼 때 피해가 없도록 그 회사의 모든 미수금을 '제로'로 만들어 놓은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며 1년이 지날 무렵, 그에게 다시금 기회가 찾아온다. 그때부터 천군만마와 같은 후원자들을 등에 업고 보란 듯 재기에 성공한다. 그 길을 터준 게 <사명대포>였고, 그 뒤에 길을 활짝 열어 준 것은 <101번째 프러포즈>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었다. 물론 그 당시 차인표와 최지우를 각각 주연배우로 캐스팅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에겐 크나큰 행운이기도 했다.

그렇듯 어려운 난관에도 아랑곳없이 오직 드라마 제작에만 미치고 미쳤던 까닭에, 드디어 그는 E&B스타스(Entertainment and Broadcasting Stars)라는 굴지의 제작사를 탄생시키게 된다. 힘겨운 줄다리기 끝에 얻어낸 값진 산물이었다. 그래서 <7월의 아침>이 방영 된 후에는, 그 전까지만 해도 명함 한 장 받아주지 않던 국내 창업투자회사들까지도 기꺼이 투자에 가담했고, 국내 유수 증권사에서는 펀드까지 만들어줄 정도가 되었다. 그야말로 미쳐서 살아 온 게 끝내는 통하게 됐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7월의 아침>이 내게 소중한 이유는 꿈을 계속 꾸면 그것이 결국 현실이 된다는 것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꿈은 꿈을 꾸는 그 순간부터 이뤄지기 시작한다. 결코 꿈꾸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 미친 듯 꿈을 꾸고, 미친 듯 꿈에 매달리면 씨앗 한 톨이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되듯 내 안의 작은 바람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이 되어 되돌아온다."(188쪽)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만약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 되면 괜히 짜증만 나고 능률도 떨어진다. 오로지 미칠 정도로 빠져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치지도 않고, 설령 실패를 맛보았을지라도 나름대로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다시금 도전할 의욕도 생기는 법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이태형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오늘도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한국과 중국을 누비고 다닌다. 그것도 미친 듯이 쏘아 다닌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싶은데 아직까지도 두려움과 망설임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열혈인생 노트가 담긴 이 책을 펼쳐 보길 바란다. 그러면 왜 미쳐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미쳐야 하는지를 속속들이 깨닫게 될 것이고 미친 듯 꿈을 꾸면 반드시 씨앗 한 톨이 커다란 나무가 된다는 비결도 얻게 될 것이다.

미쳐야 통한다 - 한 남자의 열혈인생노트

이태형 지음, 갤리온(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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