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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인춘
캄보디아 여행을 하면서 앙코르 유적지도 중요하지만 우리네에겐 꼭 보아야 할 곳이 한군데 더 있었다. 수도 프놈펜에 있는 '킬링필드'박물관이다. 이곳은 청아익(choeungek)이라는 지역으로 크메르 루주군에 의한 대학살의 현장이기도 하다. 약 1만7천명의 무고한 시신을 매장한 곳이다.

▲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있는 '킬링필드'의 유골 박물관
ⓒ 강인춘
그러나 아쉽게고 나는 이번 여행에서 '왓트마이'의 작은 킬링필드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 '와트마이'의 작은 킬링필드 박물관
ⓒ 강인춘
▲ 사살당한 유골들이 탑으로 된 진열장에 쌓여있다
ⓒ 강인춘
앙코르 와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기에 쉽게 따라나설 수 있었다. 여러분들도 '킬링필드'란 유명한 영화를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1975~1979년 1월 사이에 일어난 공산혁명은 2백2십만 명에 달하는 양민을 학살한 인류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대 비극의 참사를 영화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보듯이 이 모든 것은 '폴포드(pol pot)'라는 한 독재자의 만행으로 이루어진 참극이었다.

▲ 탑의 뒷면에는 발목과 손목들의 유골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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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killing field)란 '죽음의 들'이란 뜻이다.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때의 악명높은 대 학살로 생긴 집단 무덤을 말한다. 남의 나라 정변의 역사지만 우리와 결코 무관하지 않는 역사이기에 이 자리에서 조금이나마 언급을 하고자한다.

흔히 들어왔던 '크메르 루주(krmer rouge)'란 과연 무엇인가? 글자대로 크메르는 '캄보디아 민족'를 뜻하며 루주는 캄보디아어로 '붉은'아라는 뜻이다. 합해서 '붉은 크메르'라는 캄보디아의 공산 무장단체의 이름인 것이다. 그러면 왜 '크메르 루주'란 이름이 그렇게 악명높게 알려졌을까?

▲ 탑의 앞면에는 두상으로만 된 유골들이 흉물스럽게 쌓여져 있다
ⓒ 강인춘
벌써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월남전 때이다. 베트남에 대항 목적으로 미군(닉슨대통령)이 양성시켜놓은 반인륜적 단체이다.1967년에 결성되어 월남전이 거의 끝나는 1975년에 이 단체는 캄보디아 정권을 장악했다. 이들의 잔인무도한 행위는 이때부터 시작했다. 행정, 관리, 문인 등의 모든 지식인들을 포함해서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깡그리 색출해 무참히 학살했다.

손이 곱고, 얼굴이 깨끗하면 지식인으로 낙인찍어 사살했고, 총알을 아끼기 위해 사람들을 생매장 시켰고, 우물에 마구 집어넣어 죽이기도 했다. 살인 도구로는 곡괭이, 대나무 창 그리고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워 질식시켜 살해 했다. 심지어 부모가 안고 있는 아이를 빼앗아 공중에 던져 사격연습용 총으로 쏘아 죽였다.

▲ 킬링필드의 주역이며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폴 포드'의 얼굴들이다
▲ 참살 당하기 직전의 여성. 의자에 묶어 놓고 뒤에서는 드라이버를 돌려 머리를 관통시키고 있는 만행을 저질르고 있다
ⓒ 강인춘
캄보디아 전체 인구 약 7백만명중에서 2백만명을 이렇게 학살해버렸으니 참으로 가공무도한 일이었다. 그 주역이 바로 '폴 포트'였다. 이후 크메르 루주군은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긴 베트남 군대의 침공으로 차츰 무너져갔다. 세력이 약화된 폴 포트는 게릴라전으로 정권회복을 노리다가 정부군에 의해 체포되어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98년 4월 사망했다.

전쟁이나, 내전은 이처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보았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캄보디아인들은 제대로 된 교사와 관료, 기술자들을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당시에 엄청난 지식인의 학살로 해서 씨를 말려놓았기 때문이다.

▲ 한국인학교 설립에 헌금하라고 한 청년과 그 주위에서 뛰놀던 아이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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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트마이'의 킬링필드의 유적은 작은 절로 지어져 있었다. 그 한쪽 구석에 조그만 탑이 있다. 그 탑속엔 당시에 죽은 유골들의 잔해가 진열되어 있었다. 유골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보기에는 끔찍스러웠다. 탑주변에는 역사적 비극을 말해주는 증거 사진판이 있는데 햇볕에 거의 색이 바라 잘 보이질 않는다. 사진의 퇴색처럼 이제 캄보디아인 그들의 뇌리에서도 '킬링필드'는 점점 잊혀져가는 것은 아닐는지.

▲ 필자
ⓒ 강인춘
유골주위엔 한국어학교를 세운다고 우리네 관광객들로부터 적선을 구하는 캄보디아 청년들이 있었다. 그리고 천진난만한 아이들 몇 명이 한가롭게 뛰어놀고 있다. 그 모습이 쌓여있는 유골들과는 참으로 대조적으로 보이는 것은 세월의 탓으로만 돌려야 할지.

오늘 그들의 악몽 같았던 참혹의 역사는 이렇게 해서 저 멀리 지평선처럼 아스라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일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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