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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섬진강 장구목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찍을만한 강이네요.
과연 섬진강 장구목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찍을만한 강이네요. ⓒ 서종규
우리는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간다. 그만큼 교과서가 끼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보면 <섬진강 기행>이라는 김훈의 기행문이 있다.

이 글은 김훈 소설가가 섬진강 상류를 따라 자전거로 여행한 기행문이다. 때묻지 않은 섬진강 상류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는 글이다. 물안개로 유명한 섬진강 상류 옥정호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기행문은 <자전거 기행>의 일부분이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보면 <섬진강 기행>이라는 김훈의 기행문이 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보면 <섬진강 기행>이라는 김훈의 기행문이 있다. ⓒ 서종규
이 기행문은 오래된 길에 대한 사색과 적막한 겨울 섬진강에 대한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 강은 흘러가 버리면 되돌아 올 수 없지만 이 강가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결혼과 교류가 흔히 상류와 하류 사이의 물가 길을 오가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섬진강 장구목에 있던 요강바위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설이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강바닥에 무게가 25톤이 넘는 큰 바위가 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두 사람이 들어앉을 정도의 웅덩이가 파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강바위라고 불렀다.

섬진강 장구목 강바닥에는 '요강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
섬진강 장구목 강바닥에는 '요강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 ⓒ 서종규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에 20여명의 떼도둑이 중장비를 끌고 와서 '요강바위'를 뽑아 갔다는 것이다. 도둑들은 이 바위를 경기도 광주군의 야산에 숨겨 놓고 살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 바위 한 덩어리의 값이 10억원을 넘었다. 어떤 주민이 이 바위가 섬진강 바위임을 알아채고 경찰에 신고했단다.

도둑은 붙잡혔고, 요강바위는 장물로 분류되어 전주지법 남원지청의 마당으로 운반되었다. 남원에서 이 물가까지 바위를 옮기는데 중장비 사용료 500만원이 들었다. 바위의 무게가 25톤이었다. 장구목 마을 주민 12가구가 돈을 모아서 500만원을 마련했다. 요강바위는 중장비에 실려서 4년 만에 고향 물가의 제자리로 돌아왔다. - 김훈의 <섬진강 기행> 중에서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두 사람이 들어앉을 정도의 웅덩이가 파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강바위'라고 불렀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두 사람이 들어앉을 정도의 웅덩이가 파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강바위'라고 불렀다 ⓒ 서종규
지난 11일 오후, 광주에 있는 중앙중학교에 근무하는 전교조 교사 6명이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명을 답사하기 위하여 섬진강 장구목과 요강바위를 찾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하기를 요청했다.

광주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담양을 지나 전북 순창군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24번 국도를 타고 남원방면으로 가다가 괴정 삼거리에서 동계방면으로 좌회전하여 첫 번째 삼거리에서 괴정교 건너서 좌회전하니 비포장 도로가 나왔다.

그곳에서 좁은 농로를 타고 올라가니 섬진강이 흘러 내려왔다. 강경마을 입구에서 '장구목 가든'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섬진강가에 난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가니 장구목이 나왔다.

중앙중학교에 근무하는 전교조 교사 6명이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섬진강 장구목과 요강바위를 답사하고 있다.
중앙중학교에 근무하는 전교조 교사 6명이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섬진강 장구목과 요강바위를 답사하고 있다. ⓒ 서종규
지난 98년 11월에 개봉한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6·25전쟁 직후의 어려운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이광모 감독과 안성기, 이인 등의 배우들이 열연한 예술극영화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아버지 최씨가 미군부대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나날이 나아져 가는 성민의 집과는 반대로 창희네는 의용군으로 끌려간 채 소식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어머니 안성댁이 힘겹게 살림을 꾸려간다. 최씨의 알선으로 미군의 세탁 일을 하던 어머니는 어느 날 빨래를 모조리 도둑맞는다.

단짝인 성민과 창희는 동구 밖 방앗간에 숨어 들어갔다가 안성댁과 미군 하사의 정사장면을 목격한다. 다음날, 방앗간에 불이 나서 미군 한 명이 사망하고 창희가 실종된다. 이듬해 여름, 늪에서 미군의 밧줄에 묶인 채 심하게 부패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고 그 시신이 창희라고 생각한 성민은 아이들과 함께 작은 무덤을 만들어준다.

이 영화를 볼 때 강가 빨랫줄에 널어놓은 미군들의 옷이 인상적이었다. 그 강이 바로 이 섬진강 장구목이다.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는 강의 전경이 화면 가득 펼쳐질 때, 분명 가보고 싶은 마음이 설렜던 곳이다.

섬진강가에는 봄풀들이 더욱 싱그러운 빛깔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섬진강가에는 봄풀들이 더욱 싱그러운 빛깔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 서종규
섬진강 장구목의 5월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 식당도 주인 없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그만큼 자연 속의 그윽함을 간직한 강이다. 장구목은 오지 중 오지다. 하지만 오지이기 때문에 때묻지 않은 자연이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다.

어제 내린 많은 비로 강물은 불어 있었다. 봄풀들은 더욱 싱그러운 빛깔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강가에는 많은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눈에 익숙한 자운영 꽃이 한창이다. 아마 어느 논에서 그 씨가 떠내려와 이곳 강가에 붉게 피었나 보다. 강 위의 산에 펼쳐진 신록도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섬진강의 오월은 자연 속의 그윽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섬진강의 오월은 자연 속의 그윽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서종규
강가를 따라 올라가자 세월을 버텨낸 바위들이 나타났다. 그 많은 강물을 온몸으로 다 받아 낸 바위는 세월의 흔적을 등위에 그려내면서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어제 내린 비로 많이 분 강물이 흘러가자 바위에 움푹 파인 곳에 물이 멈추어 있다.

많은 물이 불어 있어서 요강바위가 있는 곳까지 신발을 벗고 건너야 했다. 같이 갔던 한 여선생은 요강바위에 건너가려다 발을 헛디뎌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다. 섬진강물에 흠뻑 적시고 만 것이다. 아니 혼자만 섬진강물에 몸을 담갔다.

그 많은 강물을 온 몸으로 다 받아 낸 바위는 세월의 흔적을 등위에 그려내면서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그 많은 강물을 온 몸으로 다 받아 낸 바위는 세월의 흔적을 등위에 그려내면서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다. ⓒ 서종규
겉에서 보기에는 날카롭게 생긴 요강바위도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매끄럽게 닳아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팬 웅덩이에 물이 차 있었다. 물을 건넌 일행들은 요강바위를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어떻게 바위에 이렇게 큰 웅덩이가 파일 수 있었을까.

그 도둑들은 이 좁은 도로를 타고 올라와 어떻게 큰 바위를 차에 싣고 도망갈 수 있었을까. 마을 사람들은 그 요강바위를 찾아오려고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교과서에서 읽었던 생생한 기억들이 요강바위 속을 헤집고 다녔다.

어제 내린 비로 많이 분 강물이 흘러가자 바위에 움푹 팬 곳에 다시 물이 흐르고 있다.
어제 내린 비로 많이 분 강물이 흘러가자 바위에 움푹 팬 곳에 다시 물이 흐르고 있다. ⓒ 서종규
흐르는 섬진강 물소리는 5월의 그윽함을 더욱 자아내게 했다. 일행은 요강바위에 앉아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들을 하였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라도 자연 그대로가 가장 소중하고 귀한 것인데, 그들은 이 요강바위를 빼내어 어디에 두려고 했단 말인가?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한 장면처럼 우리도 발을 강물에 넣고 물장구를 쳤다. 모두 벗어 버리고 강물에 뛰어들고 싶다. 그렇게 물이 되어 흘러가도 되겠다. 강가의 바위들에게 인사를 하고, 파랗게 출렁이는 봄풀들에 눈인사라도 하고 싶다.

일행은 '요강바위'에서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들을 하였다.
일행은 '요강바위'에서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들을 하였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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