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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산 출판사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이중적이며 때로는 모순적이다. 한켠에는 비서구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있다. 반면에 일본은 또한 매우 전통적이며 복고적인 느낌을 주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 서로 다른 이미지의 일본을 하나로 이어주는 주는 것이 바로 ‘천황제’이다. 혹자는 그것을 일본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설명해 주는 상징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천황제의 존재 자체가 여전히 일본에서 근대성의 실현이 미흡하고 부족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같은 인식은 천황제와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대한 기원의 망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화려한 군주(다카시 후지타니 지음)>는 바로 이 천황제와 이중적 이미지의 일본이 실제로는 19세기 후반 이후의 근대화의 산물이며, 그 최종적인 결과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천황제는 일본의 고유하고 전통적인 제도가 아니라 그 자체가 근대화가 요구한 정치적 산물이었으며 그것을 통해서 일본의 역사와 전통이 발명되었고 하나의 국민국가로서의 일본이 또 국민 공동체로서의 일본인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 다카시 후지타니는 메이지 시기의 공적 패전트와 국가 의례적 행사에 대한 계보학적 접근을 통해서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천황제의 기원을 밝혀내고 그 비판의 초석을 만들어 주고 있다.

메이지 시대의 정치 엘리트들의 1차적인 목표는 일본을 근대적인 의미의 국민국가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국가 만들기 작업은 동시에 일본의 일반 민중들을 새로운 국가적 목적 달성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시민적 주체로서의 국민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하고 또 국민 공동체 의식을 창조하기 위한 대대적인 근대화 프로젝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하고 의미화하는 것이다. 국가의 시간은 국민적 시간을 생산한다. 일본이라는 국민 공동체의 기억의 저장소로서 전통은 발명되고 역사는 창조된다. 다양한 역사의 기억과 물질적 흔적은 억압되고 망각된다. 역사는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의 과거를 상기시키는 기억으로 재구성되거나 혹은 과거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기억을 생산하는 장치로서 전환한다.

다가올 미래라는 시간 역시 국민적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의미화된다. 즉 현재의 국가적 성취와 가능성의 실현으로서 미래는 존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자연적 시간의 흐름은 국가의 시간으로서 전환하고, 과거와 현재, 미래는 일관된 국민적 내러티브의 틀 속에서 완성된다. 공휴일과 국경일을 지정하고 다양한 국가적·공적 의례를 통해서 그 날을 기념하는 것의 정치적 기능과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국가 만들기는 지리적 공간을 국토로서 재편성하고 의미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은 지역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국가적 유대보다는 지역적 유대가 더 강했다. 일본 내부의 지역 공동체들은 서로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

'천황'의 순행은 이런 내부의 차이를 무화시키고 동질성을 회복, 혹은 창조해 내는 상징적인 기능을 하게 된다. 천황이 교토를 벗어나 일본의 전역을 돌아다님으로써 단일한 문화와 국가적 정체성을 지닌 자연적인 정치 공동체로서의 일본이 만들어 졌던 것이다. 지리적 공간을 국가적 정체성의 '국토'로서 의미화하는 데에는 황거 광장을 만들고, 신사를 건설하며, 동상을 세우는 등의 물질적 기호와 표상의 체계들을 생산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천황'의 순행을 통해서 지리적 공간이 국토로서 통합된 이후에는 시간의 의미화에 조응하는 공간의 의미화 작업이 이어진다. 천년 이상 어소가 자리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건축물이 존재하는 교토는 황실의 역사적 깊이를 표상하는 장소로서, 국가의 영구불변에 대한 가시적 증거로서 의미가 부여된다. 에도 시대에는 비정치적인 민간 신앙의 중심이었던 이세 신궁도 황실과 국가가 머나먼 과거로부터 생성되었다는 공식 견해를 뒷받침하는 시각적 표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반면에 도쿄는 일본의 발전과 번영을 표상하는 현재와 미래의 공식적 기호가 된다. 서구화와 문명 개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도쿄는 의미화 되고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국가 의례의 행사에서 천황은 교토에서는 전통 의상을, 도쿄에서는 근대적 군복을 착용하는데, 이러한 천황의 가시적인 신체가 공간이 상징하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천황이 국가적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하게 되었던 것이다.

메이지 시대의 다양한 공적 의례와 패전트는 국가를 발명함과 동시에 ‘국민’을 탄생시킨다. 국가의 공식적인 문화가 집요하게 만들어지면서 일상적인 민중 문화는 억압되거나 흡수되어 버리는데, 그 과정 속에서 국가와 국민사이의 새로운 근대적 관계가 등장하게 된다.

즉 도쿠가와 정치 체제하의 수동적인 우민으로서가 아니라 메이지 시대의 국가적 목표의 실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기 규율적인 주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학교와 군대와 같은 국가 기구들은 대중을 계몽시키기 위한 메커니즘이었으며 일반 민중들은 국민 공동체의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변해간다. 국가가 개인의 의식과 행동으로 점차 침투해 갔던 것이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천황과 일반 국민 사이의 새로운 시선 또는 가시성의 관계이다. 메이지 시대의 순행이나 그 이후의 다양한 공적 의례들은 천황과 그의 스펙터클을 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관계 속에서 국민은 시선의 주체이자 동시에 천황의 응시 대상이 된다.

천황과 패전트를 봄으로써 국민들은 국가적 상상체의 구성원이 됨과 동시에 천황은 국민 개개인의 유일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응시의 주체자로 부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가시화의 메커니즘은 근대 일본에서 시각적 지배를 구축하는 중심적인 요소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이처럼 <화려한 군주>는 메이지 시대의 다양한 국가 의례들을 소개하고 분석함으로써 근대 일본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 만들기의 작업은 공간을 통합하고 동질성을 확보하고, 시간의 연속성을 만들어 내었다. 일본이라는 근대적인 정치적 공동체로서 의미화된 시·공간을 배경으로 일본의 민중들은 ‘국민’으로서의 동시적이고 통일적인 정체성을 획득해 갔던 것이다.

천황제는 바로 이 국가 만들기와 국민 만들기라는 근대화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다. 즉 천황제는 현재 일본 사회의 봉건성이나 후진성, 혹은 전근대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본적 근대화의 상징인 것이다.

이처럼 근대 일본과 천황제의 기원과 계보를 추적하고, 공식화된 역사의 기억을 해체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선 최근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나, 고위 관료들의 망언에서 드러나는 일본의 강렬한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또한 일본의 전후, 전쟁 인식에 있어서 천황제를 거론하면서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는 모순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식을 해체하고 탈피함으로써 국가 내부와 외부의 타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국가 만들기는 언제나 내부의 타자를 억압하고, 그 차이를 생산한다. 그리고 그것에 기반한 동질성의 확보를 통해서 작동하는 것이다.

즉 국민 공동체라는 허구적인 관념을 강화할 뿐만이 아니라, 그 국민 내부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은폐하는 것이다. 특히 제국주의의 역사를 경험한 일본의 내부에서는 이미 제국의 유산으로서 수많은 비일본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오키나와인, 재일 조선인, 여성, 재일 중국인, 부락민 등이 그 대표적인 마이너리티들이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포용하기 위해서 허구적인 국가 의식은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를 거부한다는 것은 동시에 기억의 창조와 망각의 강요 속에서 억압되었던 대안적인 역사의 의미와 기억을 복원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들을 ‘국민’으로서의 주어진 정체성에서 해방시킴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하는 열려 있는 존재로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들을 끊임없이 국가와 국민과 민족이라는 억압적 담론 속으로 귀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즉, 일본이라는 국가의 틀과 한계를 넘어서서, 일본의 내부에서 그리고 일본의 외부와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발견하고 상상할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실 국가 의식이나 내셔널리즘은 일본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근대화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일본에 특수한 점이 있다면 내셔널리즘이 천황제와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들이 진정으로 근대의 초극을 논의하고 실천하고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천황제와 내셔널리즘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이 아시아와 더 나아가 세계와의 진정한 소통과 연대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군주 - 근대일본의 권력과 국가의례

다카시 후지타니 지음, 한석정 옮김, 이산(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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