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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아니면 광란?

▲ '진흙탕 실' (Schlammsaal)에서 찍은 그룹 '젤리틴'의 기념사진.
ⓒ 마르쿠스 트레터-쿤스트하우스 브레겐즈
이 사진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아랫도리 없이 윗도리만, 윗도리 없이 아랫도리만 입은 남자들도 있지만, 중요한 부분만 진흙으로 가린 나체의 남녀들도 함께 섞여있다. 중요한 부분을 가리지 않은 용감한 나체들도 있다. 남들이 벗든 말든 입을 거 다 입고 조형물 꼭대기에 자신있게 올라가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언뜻보면 이상한 남녀들이 모여서 광란의 시간을 보낸 후 한 장의 사진을 추억으로 남긴 것도 같지만, 이 사람들에게 있어 이 한 장의 사진은 '예술'이다.

▲ '개선문'(Arc de Triomphe)
ⓒ 짤즈부어그 현대 박물관
오스트리아의 예술그룹 '젤리틴'은 올해 5월 말까지 브레겐즈(Bregenz)에서 <중국식 합성 간치즈>라는 괴상한 제목아래 전시회를 열고있다. 위의 사진은 바로 전시회의 한 공간인 '진흙탕 실'에서 찍은 그룹 '젤리틴'의 단체 사진.

그룹 '젤리틴'에게 예술의 대상은 금기와 더러움이다. '젤라틴'이라는 그룹 이름을 '젤리틴'으로 바꾸어 활동중인 이들 그룹에게 가장 센세이셔널했던 해는 바로 지난 2003년.

오스트리아 짤즈부어크에서 개최된 썸머페스티발에서 '젤리틴'은 요가를 하고 있는 듯한 나체의 남자가 하늘 위로 소변을 보는 조형물 '개선문(Arc de Triomphe)'을 선보여 예술 세계뿐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깜짝 놀라게 했다.이 예술 스캔들 이후 그룹 '젤리틴'은 오스트리아에서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룹 멤버들은 모두 걸출~한 '방구쟁이'들

▲ 이탈리아에서 대규모로 진행된 작품 '토끼' (Hase)
ⓒ 젤리틴
볼프강 간트너, 알리 얀카, 플로리안 라이터, 그리고 토비아스 우어반 총 4명으로 구성된 비엔나 출신그룹 '젤리틴'에는 전시회의 목적과 상황에 따라 25명이나 되는 객원멤버들이 함께 참여한다. 멤버들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주간지 <프로필>과의 인터뷰에서 토비아스 우어반은 "멤버들을 비롯한 우리들은 바뀔 수 있다"며 유동성을 강조했다.

'젤리틴'은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거나 기자들을 만나는 것도 즐겨하지 않는다. 인터뷰에 응하지 않아 몇몇 방송국에서는 미리 예약해놓았던 비행기표를 취소하는 일도 있었고, 신문에 나오기로 했던 사진이 바뀌거나 하면 어김없이 신문사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들 하고는 매번 서커스를 하는 것 같다"며 불평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멤버들의 나이를 물어보면 태연스럽게 "한번도 정확한 생년월일을 진술한 적이 없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하는 그룹 '젤리틴'의 멤버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처럼 참 걸출하고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이자 그들 스스로가 거리낌없이 밝히는 자기소개다.

때문에 이들을 더 유명하게 한 것은 오스트리아와 독일, 뉴욕과 런던을 오갔던 이들의 전시회가 아니라, 세상과 담쌓고 살아가는 듯한, 혹은 대중의 인기에 전혀 무관심한 그룹 '젤리틴'의 냉담함 때문이라는 평가도 엇갈린다.

그 이유야 어찌되었건, 그룹 '젤리틴'이 2003년에 창조한 인간분수 '개선문'의 성공 덕분에 이들은 또한 오스트리아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젊은 예술가 그룹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분수가 나오는 곳이 남근이며, 소변인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깨끗한 더러움"

▲ '토끼'위에서 퍼프먼스 중인 '젤리틴', 가까이서 보니 '토끼'도 어딘지 모르게 지저분하다.
ⓒ 젤리틴
<베를리너 자이퉁>의 기자 울리히 자이들러는 그룹 '젤리틴'의 '개선문', 즉 '트라이엄프'를 "자기자제와 충동해방의 파라독스"라고 해석했다.

현재 브레겐즈에서 전시중인 <중국식 합성 간치즈>에서 보여지는 나무조형과 물, 진흙 등의 오브제를 관객들은 하나의 '폐소공포증 이야기세상' 등으로 정의내리고 있다.

관객과 기자들이 어떻게 평가를 내리든, 그룹 <젤리틴>은 무관심, 혹은 냉담한 태도로 그들의 길을 가고 있다.

더러움과 오물, '장난' 혹은 '유희'처럼 보여지는 그들의 작품과 전시회에 대해 볼프강 간트너는 <프로필>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전시회에서 하는 것들을 실제로 매우 진지하게 하고 있다"며 "우리는 꼼짝않고 서있는 광대가 아니다"고 말했다.

때문일까?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프로필>에 의하면 그룹 이름을 '젤라틴'에서 '젤리틴'으로 바꾼 이유에 대해 토비아스 우어반은 "우리는 우리그룹을 언제나 젤라틴이 아닌 젤리틴으로 불러왔다"고 밝혔다. 이것에 대해 볼프강 간트너는 "사실 그룹 이름을 7번도 더 바꿀 수 있다"며 "바뀐 이름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도록 사람들을 우습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며 언성을 높였다고 <프로필>은 밝혔다.

그들은 사실 그들 스스로를 '젤리틴'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을 '방구쟁이'로 자칭한다. 이러한 이름 아래 그들이 글래머러스한 오물들과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이유.

"우리는 다이아몬드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물이 잔뜩 묻은 더러운 속옷도 사랑한다. 우리는 '더러운 깨끗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깨끗한 더러움'을 추구한다.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 그 곳이 너무 깨끗하면 우리는 일부러 더럽게 만든다. 만약 어떤 장소가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더러우면 우리는 청소도 해가면서 작업을 한다.“

▲ <중국식 합성 간치즈> 전시회 모습
ⓒ 미로 쿠즈마노비치-쿤스트우스 브레겐즈
그룹 '젤리틴'이 그들의 전시회 팸플릿에 적은 위의 내용처럼 깨끗함과 더러움, 금기와 오물 모두 우리 인간들의 일상이자, 그 일상은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1968년 오스트리아의 예술가 귄터 브루스는 '예술과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공개적으로 용변을 보는 전설적인 행위를 한 바 있다. 그룹 '젤리틴'의 예술세계는 어딘지 모르게 귄터 브루스의 전통, 즉 내부에서 외부를 향해가는 비엔나 행동주의를 계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적어도 미학적, 외향적으로는 말이다.

'젤리틴'은 끊임없이 "더러움도 예술이다"라고 말하지만, 이들의 예술에는 표면적으로 봐도 정치적 주장은 드러나지 않는다.

정치적이지 않은 예술은 미학적이거나 대중적이어야 하거늘 이들의 예술은 그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고 그저 더러울 뿐이다. 그들이 주제로 삼기에 작금의 정치가 너무 깨끗해서일까? 삶이 모순인 것처럼 예술도 파라독스이긴 마찬가지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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