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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에서 전쟁의 총성은 오래전에 멈췄지만 전쟁의 고통은 끝날줄을 모른다.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등 오랜 내전을 겪은 국가의 국민들은 지독한 가난 속에 여전히 전쟁터의 삶을 사는 중이다. 지난 4월 24일부터 2주간 가나와 시에라리온 두 나라를 둘러보았다. 돈에 팔리는 아이들과 고향에서 쫓겨난 난민들의 삶을 4차례 나눠 싣는다. 이번 취재는 한국언론재단(KPF)의 후원으로 이뤄졌다. <편집자주>
4월 25일 가나 동북부 아베이메마을에서 열린 '인신매매아동-부모 재결합'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춤을 추고 있다.
4월 25일 가나 동북부 아베이메마을에서 열린 '인신매매아동-부모 재결합' 행사에서 어린이들이 춤을 추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음악가가 꿈인 15살 '알루'는 2년 동안 볼타강과 호수에서 14시간씩 물고기를 잡는 노동을 했다. 가장 왼쪽에 앉은 소년이 알루.
음악가가 꿈인 15살 '알루'는 2년 동안 볼타강과 호수에서 14시간씩 물고기를 잡는 노동을 했다. 가장 왼쪽에 앉은 소년이 알루. ⓒ 오마이뉴스 김영균

"만약 당신이 행복하다면 손뼉을 치세요, 짝짝! 만약 당신이 행복하다면 발을 굴러요, 쿵쿵!(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 clap your hands,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 step your feet)"

지난 4월 25일 서아프리카 가나의 작은 마을 아베이메(Aveyime)의 교회 앞 공터. 아이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퍼졌다. 헐렁한 흰 옷에 반바지나 치마를 입은 39명의 아이들은 교사의 지도에 따라 몸짓과 춤을 이어갔다.

"만약 당신이 행복하다면 웃어요, 하하!…. 만약 당신이 행복하다면, 손뼉을 치면서 발을 구르고 크게 웃어요, 짝짝! 쿵쿵! 하하!"

키가 훤칠한 알루(15)도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행복을 바라는 곡이지만, 지난 2년간 그에게는 행복이 없었다.

불과 2개월 전만 해도 알루는 거친 볼타(Volta) 호수와 강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맨손으로 고기를 잡아야 했다. 학교는 커녕 먹일 수도 없었던 가난한 부모가 어부에게 자신을 팔았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볼타지역 아베이메에서는 팔려간 아이와 부모의 재결합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아베이메는 수도 아크라(Accra)에서 북동쪽으로 150km쯤 떨어진 마을. 국제기구인 IOM(국제이주기구)은 최근 39명의 아이들을 어부들로부터 구해냈고, 2개월 동안 기초 교육과 심리치료를 한 뒤 집으로 돌려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관습처럼 퍼져있는 부모에 의한 인신매매

1957년 영국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아프리카 최초의 독립국 가나는 인구 2100만명에 코코아와 금, 다이아몬드가 생산되는 나라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GDP)은 아직 400달러도 채 안된다.

찢어지게 가난한 탓에 가나에는 부모에 의한 아동 인신매매가 관습처럼 널리 퍼져있다. 특히 정부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북부 시골지역의 아이들은 불과 수십달러에 어촌과 도시로 팔려가고 있다.

부모들이 친자식을 넘겨주는 이유는 아이들이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면서 학교도 다닐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아이들을 사는 어부나 부족들도 처음에는 이런 약속을 하고 데려간다. 보통 몸값으로 선납금 50달러 정도를 주고, 매년 50달러 정도씩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납금 이후에 돈을 받는 부모는 거의 없다.

어부들에게 팔려간 아이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새벽 4~5시부터 일어나 저녁 6~7시까지 꼬박 14시간 이상 물 속에서 그라피아라는 물고기를 잡는다.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장비는 그물이 전부다. 때에 따라선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채찍으로 사정없이 얻어맞는다. 물 속에서 그물에 걸려 익사하거나 말라리아에 걸려 죽는 경우도 있다. 4~5살짜리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출된 아이들이 고기잡이 노동에서 학대 당하던 일을 연극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출된 아이들이 고기잡이 노동에서 학대 당하던 일을 연극으로 표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재결합 행사에서 어머니를 만난 알루는 "내 친구는 물 속에서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려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가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고 (어촌에) 보냈다는 것을 알지만,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게 알루의 생각이었다. "고기를 잡는 동안에도 내내 학교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는 알루는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알루와 아이들은 이날 부모들 앞에서 얻어맞으며 물고기를 잡는 상황을 연극으로 재현해 보이기도 했다. 연극은 웃고 떠들며 즐겁게 진행됐지만, 이를 보는 부모들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하루 14시간 중노동... 형제 3~4명 함께 팔려가기도

알루와 함께 구출된 아이들 중에는 형제나 자매가 같이 팔려간 경우도 많다. 아담(11)과 새비어(9) 형제는 각각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이날 어머니를 함께 만났다.

심지어 4명의 사촌형제가 동시에 팔려간 경우도 있었다. 볼타지역 북부에서 왔다는 할머니는 두 딸의 손자 4명을 행사장에서 찾았다. 그는 "두 명의 딸이 각각 아들 둘씩을 낳았는데 아버지가 누군지는 모른다"며 "도저히 키울 방법이 없어 아이들을 (어촌으로) 보냈다"고 털어놨다. 아이들의 어머니인 두 딸 중 한 명은 도시로 일자리를 구하러 나갔고, 다른 한 명은 가까이 있지만 행사에 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가정에 3~4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팔려나가기도 했다. 아들 셋과 만난 가나 여성.
한 가정에 3~4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팔려나가기도 했다. 아들 셋과 만난 가나 여성. ⓒ 오마이뉴스 김영균
이처럼 아동 인신매매가 성행하지만, 아직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가나정부도 인신매매 방지를 위해 노력은 하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아동인신매매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아동 인신매매 가해자는 앞으로 최고 5년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아동인신매매방지법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높은 출산율이 문제다. 일부다처제 전통을 유지하는 가나 부족사회에서 한 가정의 아이들은 보통 8~10명에 이른다. 가난한 부모가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알루와 같은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어촌 외에도 광산이나 코코넛농장, 식당, 가정부 등 힘든 일터로 내몰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도시의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거나 구걸, 성매매를 하는 아이들도 많다. 자발적인 가출을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부모에 의한 인신매매도 큰 몫을 하고 있다.

IOM 가나사무소는 지난 2002년 8월부터 인신매매 아동구출 프로그램을 시작해 올해 3월까지 모두 587명의 어린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돌아간 아이들은 대부분 집에서 학교를 다니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만, 약 10% 정도의 아이들은 다시 사라진다고 한다. 집으로 돌려보내진 뒤에 다시 인신매매되거나 가출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다.

한편 ILO(국제노동기구)는 전세계적으로 약 170만명의 아동이 인신매매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알루'와 같이 팔려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원하시면 국제이주기구(IOM) 서울사무소(02-6245-7647, www.iom.or.kr)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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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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