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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써 준 편지
아들이 써 준 편지 ⓒ 김현
어버이날이 다가오니 학교에서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고 했나 보다 하고 편지를 뜯어읽어 보았습니다. 별 내용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읽다가 웃음도 나고 한편으론 기특한 생각도 듭니다. 개구쟁이에 늘 어리기만 하여 아무 것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닙니다.

사실 요즘 아내나 나나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생리통으로 누워 있고, 난 허리가 좋지 않아 계속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아내야 매달 되풀이되는 아픔이지만 난 상태가 좀 심한 편입니다. 통증이 심해 어떤 때에는 서 있기마저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엊그제엔 허리에 부항을 여섯 군데나 떠 피를 빼기도 했습니다. 피를 빼도 그때뿐 증상은 여전합니다. 중증이라 두 달 이상을 치료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마 아들 녀석은 그런 엄마, 아빠의 상황을 알고 편지에 쓴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까불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들 녀석은 생각은 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무얼 염려하고 있는 줄도 아는 것 같습니다. 감기에 늘 훌쩍거리고, 약 기운에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곤 쓰러져 자면 아침에 겨우 일어나 학교에 가는 녀석이 안쓰러워 엄마가 걱정 어린 말을 자주 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아들 녀석의 편지를 몇 번이나 읽고 책을 보며 누워있는데 이마에 땀을 송글송글 달고 아들 녀석이 들어옵니다. 그리곤 들어오자마자 자기가 준 편지 읽었느냐고 확인부터 합니다.

"아빠! 편지 읽었어요? 안 읽었죠?"
"아니, 네 번이나 읽었는걸. 우리 아들 편지 잘 썼대. 아빠가 감동 먹었다."
"에이, 못 썼는데…."
"아냐 정말 잘 썼어. 이리 와 봐. 아빠가 안아줄 게."

아들 녀석이 누워 있는 아빠 품에 푹 안기는데 땀 냄새가 훅 풍겨옵니다. 그런데 아이의 살 냄새와 함께 풍겨오는 그 땀 냄새가 참 좋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의 냄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땀 냄새를 맡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림을 하나 보여주었습니다. 아이들 읽으라고 사주었던 책인데 동물이야기의 작가인 '시턴'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그 책의 끝부분에 어미 늑대가 새끼를 배 위에 올려놓고 안아주고 핥아주는 장면과 어미 북극곰이 어린 새끼곰들을 꼭 껴안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아빠 엄마의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새끼 곰을 안고 있는 어미 북극곰
새끼 곰을 안고 있는 어미 북극곰 ⓒ 김현
"아들, 이 그림이 무슨 그림인 것 같아?"
"응…, 늑대는 새끼에게 뽀뽀하고 있고 곰은 새끼들이 추울까 봐 꼭 안아주고 있어요."
"그래 맞아. 그럼 누나랑 한울이가 아플 땐 누가 안아주지?"
"엄마랑 아빠."
"맞아. 엄마랑 아빠랑 안아주지. 동물이나 사람이나 똑같은 거야. 모든 엄마 아빠는 이렇게 자식을 안아주며 사랑하는 거야."
"그럼 엄마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렇게 했겠네."
"그럼. 엄마 아빠도 그렇게 큰 거지."


아들 녀석과 이야기하면서 생각해보니 난 한 번도 부모님한테 아들 녀석이 나에게 써준 것 같은 편지 한 장 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십이 넘어가도록 받기만 할 뿐 부모님 마음의 십분의 일도 주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한다고 했는데, 자식에게 편지를 받아보고야 부모에게 편지 한 통 제대로 쓴 기억이 없다는 걸 생각해낸 걸 보면 이모저모로 자식은 깨달음의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안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좀 미심쩍었는지 대뜸 자기가 써 준 편지를 읽어보라고 합니다. 이번에 자기 듣는데 읽으라고 합니다. 확인하는 버릇은 아들 녀석의 성격입니다. 그리고 그 확인의 의미는 칭찬받기를 은근히 바라는 아이의 심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시 편지를 꺼내어 읽곤 칭찬을 듬뿍듬뿍 해주었습니다. 그제야 아들 녀석은 입을 귀에 달고는 물 마시겠다며 아빠의 품에서 빠져나갑니다. 아들의 편지를 옮겨봅니다.

부모님께

엄마 아빠 무척 편찮으시죠. 제가 이제부터 더 착하게 살고 안마도 잘 해줄께요.

엄마, 그리고 엄마가 저를 낳아 주셔서 정말 기뻐요. 그리고 저도 이제부터 공부도 잘 하고 밥도 지금보다 잘 먹을께요. 그리고 건강한 아이가 될께요. 아프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살께요. 그리고 엄마 아프지 마세요. 엄마가 아프면 제 마음도 아파요.

아빠, 아빠도 이제부터 어깨 아프지 말고 허리도 아프지 마세요. 알았지요. 왜냐하면 아까 쓴 것처럼 제 마음이 아프니까요.

한울 올림.


사랑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마음을 받을 때처럼 기쁜 것은 없다고 봅니다. 마음이 담긴 아들의 짧은 편지 한 장에 잠시나마 행복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나도 부모가 되어가는 걸 새삼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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