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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쭉 한 그루. 어느 스님이 붙인 것일까.
철쭉 한 그루. 어느 스님이 붙인 것일까. ⓒ 김당
지난 주말에 순천의 송광사(松廣寺)에 들렀다. 전남 곡성의 본가에서 요양중인 부친 병문안을 갔다가 서울 오는 길에 마음이 심란해 잠시 들렀다.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오색 연등을 차려입은 절간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돌계단 틈에 핀 철쭉을 발견했다. 터잡은 자리로 보건대 절로 꽃씨가 움터 자란 것은 아닐 성싶고, 어떤 스님이 붙여놓은 것이 틀림 없었다. 인근 고찰 선암사에 가면 매화(梅花)가 일품인데 아마도 그 매화를 시샘한 장난기 많은 스님이 어린 뿌리를 심어 놓은 것이 자란 듯싶다.

불교 교단의 3대 구성요소는 불(佛)·법(法)·승(僧)의 이른바 삼보(三寶)이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경전) 그리고 그를 믿고 수행하는 집단(스님)을 가리키는 세 가지 보물이 다 갖춰져야 절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결국 이 세가지 거룩한 보배를 믿는 것에서부터 불교수행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16명의 국사(國師)를 낳은 승보(僧寶) 종찰 순천 송광사

송광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보조국사 지눌 감로탑.
송광사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보조국사 지눌 감로탑. ⓒ 김당

본디 삼보가 다 있어야 절이지만, 불가에서는 특히 한 가지를 강조한 '삼보 종찰'을 상징적으로 일컫는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가 봉안되어 있는 불보(佛寶) 종찰 양산 통도사(通度寺), 팔만대장경이 봉안되어 있는 법보(法寶) 종찰 합천 해인사(海印寺), 그리고 무려 16명의 국사(國師)를 낳은 승보(僧寶) 종찰 순천 송광사가 그것이다.

말 그대로 '나라의 스승'인 국사(國師)는 한 나라의 사표가 되는 고승들에게 국왕이 직접 내리는 칭호이다. 그래서 고려시대 국사의 칭호를 받은 스님 15인과 국사제도가 없어진 조선시대에 그 공덕과 법력이 국사와 같다고 종문에서 인정한 교봉화상을 포함해 16국사의 영정을 봉안한 국사전은 승보사찰 송광사의 정신이 집결된 곳이다.

감로탑 오르는 돌계단 틈새에 핀 철쭉.
감로탑 오르는 돌계단 틈새에 핀 철쭉. ⓒ 김당
곧 대한민국 조계종 사찰의 '종가집'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송광사이고, 그 승보종찰의 터전을 닦은 이가 바로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이다. 신라말에 창건된 당시 본디 이름이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던 이 절이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 것도 지눌스님의 정혜결사(定慧結社)가 이곳으로 옮기면서부터이다.

'정혜결사'는 불가의 정풍운동이었다. 그것은 고려 명종 당시 극히 속화되고 미신화된 호국·기복·우상 불교에서 정법(正法)불교로의 회복운동이었다. 지리산에 들어가 세속과 모든 인연을 끊고 오로지 내관(內觀)에만 몰두해 큰 깨우침을 얻은 그는 송광사로 거처를 옮겼고, 그를 따라 세속의 명예와 처자를 버리고 찾아온 도반의 행렬이 구름 같았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승보사찰 송광사의 가람 배치의 특징은 스님의 요사채가 대웅전 위쪽에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보조국사 지눌의 열반을 기린 감로탑(甘露塔)은 송광사 경내의 모든 가람을 굽어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철쭉꽃은 바로 그 감로탑을 오르는 돌계단의 틈새에 피어 있다. 그 꽃은 말하자면 종가를 섬기는 어느 장난기 많은 스님이 '꽃보다 귀한 사람'에게 바치는 헌사(獻辭)인 셈이다.

탑(塔)과 텔레비전, 그리고 휴대폰이 없는 용맹정진 도량

승보종찰 조계총립 송광사 관음전.
승보종찰 조계총립 송광사 관음전. ⓒ 김당

송광사는 '승보종찰'이라는 수식어 말고도 그 이름 앞에 '조계총림'(曹溪叢林)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총림'이란 스님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그리고 계율 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뜻한다. 송광사는 1969년 구산 큰스님을 초대 방장(方丈)으로 추대하면서 '조계총림'이 되었다.

송광사는 '승보종찰 조계총림'으로서 한국 불교의 동량을 키우는 수행·정진의 도량으로서 맥을 잇기 위해 여느 절과 달리 '3무', 즉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탑(塔)과 텔레비전, 그리고 휴대폰이 그것이다.

텔레비전과 휴대폰은 수행·정진에 방해가 되는 속세의 증표라고 하지만, 탑이 없는 것은 모든 장식과 형식을 거부한 지눌이 송광사에 들어와 일으킨 선풍(禪風)의 영향 탓이다. 물론 송광사의 가람이 위에서 보면 연꽃 형상이어서 이곳에 탑을 얹을 경우 연꽃이 가라앉기 때문에 탑을 배치하지 않았다는 풍수지리학설도 있다.

하마비도 어쩔 수 없는 불자동차.
하마비도 어쩔 수 없는 불자동차. ⓒ 김당
용맹정진의 도량에 하마비(下馬碑)가 없을 수 없다. 왕도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부터는 말에서 내려 걸어야 한다. 그러나 왕이 탄 우마차도 막는 이곳에 아무도 막지 못하는 차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가장 시끄러운 불자동차다. 화마(火魔)는 부처님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양양 낙산사 등이 화마로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지만, 요즘처럼 산불 나기 좋은 계절에는 불자동차가 아예 경내에 24시간 상주해 있다. 부처님 오신날을 계기로 승보사찰을 찾는 참배객들이 늘어나는 요즘은 '화재 비상주간'이기도 하다.

현재 송광사 경내의 성보박물관에는 목조삼존불감(국보 제42호) 등 국보 3점과 금동요령(보물 제176호) 등 보물 13점, 지방유형문화재 12점, 기념물 등 총 6천여점의 불교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송광사의 서울 분원 성북동 길상사(吉祥寺)의 '길상음악회'

'부처님 오신 어린이날'을 맞은 송광사의 한 스님과 아이의 표정이 천진난만하다.
'부처님 오신 어린이날'을 맞은 송광사의 한 스님과 아이의 표정이 천진난만하다. ⓒ 김당
수녀님들이 송광사를 찾는 일이 이곳에선 다반사이다.
수녀님들이 송광사를 찾는 일이 이곳에선 다반사이다. ⓒ 김당
절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보니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연인들의 모습과 '부처님 오신 어린이날'을 앞두고 송광사를 찾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눈에 띈다. 올해는 부처님 오신날이 어린이날과 겹쳐 어느 때보다도 아동 선교 프로그램이 풍성하다고 한다.

승보사찰 송광사는 아이들에게는 물론 원칙적으로 수행·정진을 하려는 모든 수도자에게 '열린' 공간이다. 지금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지만 파란 눈의 외국인 스님들에게 일찌감치 참선수행의 전문도량인 '국제선원'을 제공한 곳도 이곳이다.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기증해 길상사를 세운 '길상화 김영한'님을 기린 길상사 경내의 공덕비.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기증해 길상사를 세운 '길상화 김영한'님을 기린 길상사 경내의 공덕비. ⓒ 김당
송광사는 외국인들뿐만 아니라 이교도(異敎徒)들에게도 개방돼 있다. 그래서 송광사에서는 가톨릭 신부·수녀님들의 절 나들이 모습을 다른 절에서보다 자주 볼 수 있다. 종파를 넘어선 이런 교류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서울 분원 길상사(吉祥寺)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길상사는 본디 사연 많은 절이다. 알다시피 길상사의 뿌리는 과거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장안의 3대 요정으로 이름을 날렸던 '대원각'이다.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 여사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깊이 감명 받아 대원각 부동산(대지 7000여평과 지상건물 40여동) 전체를 법정 스님에게 시주했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10년에 걸친 기나긴 줄다리기를 하면서도 끝내는 시주 받기를 거부했다. 김영한 여사는 할 수 없이 지난 97년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분원으로 등록 및 등기하였고 이로써 10년간의 줄다리기는 일단락됐다. 법정 스님은 송광사 '출신'이다.

길상사에 대한 일화는 이뿐이 아니다. 길상사 개원법회가 있던 1997년 12월 14일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종교를 떠나 길상사의 탄생을 축하하는 개원축사를 했다. 또 지난해 5월 15일 부처님 오신날 저녁에는 길상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수녀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길상음악회'를 개최해 불교와 천주교의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

지난해 부처님 오신날에 열린 길상음악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법정 스님. 지난해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해 큰박수를 받았다.
지난해 부처님 오신날에 열린 길상음악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법정 스님. 지난해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해 큰박수를 받았다. ⓒ 길상사
성모 마리아를 닮은 길상사의 나무관세음보살상.
성모 마리아를 닮은 길상사의 나무관세음보살상. ⓒ 김당
길상사의 일주문을 지나 걷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관세음보살상은 여느 관음상과는 달리 마치 성모 마리아상을 조각해 놓은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관음상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조각계의 거장인 최종태씨에게 주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 서울분원 길상사는 올해는 '부처님 오신 어린이날'을 맞이해 '팔만대장경 작곡가 김수철과 함께 하는 길상 음악회'를 준비했다. 5월 5일 저녁 7시30분부터이다. 누구나 참석이 가능하며 물론 입장료는 없다. 다만 주차공간이 넉넉하지 못하므로 삼선교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

길상음악회의 주제는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이다.

굳이 길상사(吉祥事)는 아니더라도 '부처님 오신 어린이날'만큼은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다.

송광사 삼청교 우화각
송광사 삼청교 우화각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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