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성산일출봉의 모습
성산일출봉의 모습 ⓒ 김현

멀리서 바라보면 <어린 왕자>에서 보아구렁이가 코끼리를 잡아먹은 모양의 산이 하나 있다. 성산일출봉이다. 바다 가운데 우뚝 치솟아 올라 떡 버티고 있는 품이 넉넉한 아저씨 같은 인상을 주는 산. 차창 너머로 비치는 모습에 왠지 모를 설렘이 선선한 갯내음처럼 밀려온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일출봉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산에 오르는 길에는 신혼 여행객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줄을 섰다. 그리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화산인 성산일출봉은 182m의 아담한 모습을 하고 많은 사람을 받아들이고 있다.

산 아래 핀 꽃들
산 아래 핀 꽃들 ⓒ 김현

성산일출봉은 바닷가에 치솟은 거대한 분화구가 다양한 모양의 봉우리를 이루며 서 있는 거대한 성(城)과 같은데 그 봉우리가 99개로 되어있다고 한다. 멋지게 연출된 봉우리 외에도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게 있다. 산 바위 틈틈이 나있는 구멍들이다. 그 구멍들을 바라보면서 화산이 폭발할 때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일출봉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매표소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면 등산로 양 옆으로 푸른 잔디와 무꽃들이 싱그러운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입가에 미소를 한 아름씩 머금으며 잔디밭에서, 그리고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목격된다. 바라보기만 해도 즐거움을 준다.

바위 안에 고인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았다는 처녀바위
바위 안에 고인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았다는 처녀바위 ⓒ 김현

산에 오르는 길에 전망대에 못 미쳐 왼쪽을 보면 속이 뻥 뚫린 탑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몇몇 사람만이 그 바위에 호기심을 보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까이 가 보니 안내문에 '처녀바위/조개바위'라고 적혀 있다. 이 바위엔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성산의 바다
성산의 바다 ⓒ 김현

귀신이 인간을 다스리던 태고적, 한라산 산신이 이곳 성산에 군사를 풀어 진을 쳤는데 군사가 부족하였다 한다. 이에 산신이 옥황상제에게 등장(等狀)을 올려 군사를 더 보내주길 청하였으나 옥황상제국에도 군사가 부족하다 하여 군사를 보내지 못하고 대신 음(陰)의 정기를 내려주어 사내아이를 많이 낳게 하였다 한다. 그 음의 정기를 고이게 한 바위가 바로 처녀바위인데, 이 바위 속엔 물이 고여 있었다 한다. 또한 사람들이 이 바위 속에 고인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태고적 전설을 생각하니 대부분의 명산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나 증거물들이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어쩌면 남자가 귀한 옛 제주도 사람들의 바람이 이와 같은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산읍의 모습이 한가롭다.
성산읍의 모습이 한가롭다. ⓒ 김현

20여분 쯤 오르니 전망대가 보인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성산읍내의 모습이 한가롭게 앉아있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아름답지만, 전망대 바로 아래에 있는 두 바위 사이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고즈넉한 환상을 준다. 잔잔한 바다 위로 떠 있는 배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절로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그 바위 사이 틈새로 난 바다를 한참 바라보려니 속세의 묶은 때가 씻기는 듯한 기분이 든다.

두 괴석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평화롭다.
두 괴석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평화롭다. ⓒ 김현

전망대를 지나면서 조금씩 숨이 차오른다. 함께 오르던 아이들이 쉬었다 가자고 한다. 조금만 오르면 정상이라는 말로 아이들을 달래며 오르니 오른쪽에 홈들이 어른 발자국만하게 파인 채 우뚝 솟은 바위가 보인다. '등경돌바위/별장바위'라고 적혀있다.

옛날에 전장으로 출정(出征)한 남정네들의 아낙들이 남편의 무운(武運)을 빌고, 먼 길을 걸어 장사를 하러 가던 장사꾼들이 횡재를 기원했다는 이 바위는 형상이 등경(燈檠)을 닮았다 하여 '등경돌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그런데 이 바위에는 말을 타지 않고도 하루에 천리를 달리며, 활을 쏘지 않고도 요술로 적장의 투구를 벗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작은 전설'이 있다.

등경돌바위
등경돌바위 ⓒ 김현

별장바위를 옆에 두고 정상에 오르는 계단길이 좀 가파르다. 오르는 길 중간중간에 바라다보는 바다가 평화롭다. 몇몇 아이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온다. 정상에 오르는 중턱에서 산의 물을 나눠마시며 서로 보고 웃는다. 물맛이 참 달다. 그렇게 10여분 오르니 곧바로 정상이다. 정상에서 맞는 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가쁜 숨결을 토해내며 바라본 분화구 건너편의 푸른 바다가 작은 포말을 일으키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일출봉 분지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일출봉 분지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 김현

넓이가 무려 8만평에 이른다는 분화구는 또 다른 푸른 바다 같다. 저 드넓은 초원 위로 한 때 수십 마리의 말과 소들이 풀을 뜯고 뛰어놀았다는데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아쉬운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저 분화구 아래로 걸어가고 싶은 충동으로 다가온다. 저 잔잔한 풀밭에 누워 하늘 한 번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내려오는 길, 성산의 평화로운 바람과 물결이 등을 다독이며 한 마디 하는 것 같다.

"아쉬워 말게. 당신은 이미 저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 거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