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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즐거운 비>
ⓒ 한솔교육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선, 호랑이처럼 힘차게 쭉쭉 뻗은 선, 용처럼 불을 뿜듯 눈을 사로잡는 선, 겨우 선 몇 가닥으로 수 천 가지 몸짓을 표현한 놀라운 예술 세계. 어떤 그림책에서도 느낄 수 없던 상상력과 예술성이 가득 담긴 수묵 추상화 세계로 초대합니다. 비를 기다리던 아이들과 어른들이 벌이는 신명 나는 춤 마당에 빠져 보세요.” 책 소개 글에서

우리나라 그림책 시장을 보면 외국 유명 작가의 판권을 사 들여와 번역하여 출판하는 것이 꽤 많다. 우리 작가들도 최근 들어 증가하는 편이고 좋은 우리나라 그림책이 출판되고 있음에도 소위 ‘외국 작가 유명세’에 밀려 엄마와 아이들의 손길에 닿지 못한 채 소외되는 것이 우리 그림책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작가의 좋은 그림책을 만나면 참 반갑다.

책 <즐거운 비>는 동양화가인 서세옥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어린이 책을 만드는 김향수님이 글을 붙인 독특한 그림책이다. 서세옥 화백은 점과 선의 수묵 추상 작업을 통해 정통 동양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독특한 회화 기법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최근에 그는 몇 개의 단순한 선으로 동작과 표정이 풍부한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수묵화로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우리 고유의 회화인 수묵화를 어떻게 그림책으로 엮어냈을까? 너무 지루하고 어려워서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책장을 펼치는 순간 싹 달아나고 만다.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색 먹물로만 그린 그림이지만 너무 생동감 있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선과 점으로 표현한 것인데도 어쩜 이렇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까 싶다. 그래서 옛날부터 우리 수묵화를 일컬어 ‘선과 여백의 미학’이라고 칭했나 보다. 기다리던 비가 와서 신나게 춤을 추는 온갖 동물들의 모습은 ‘신명 나는’ 우리 문화를 반영한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정말 시원하게 비가 내려 모든 생명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송사리야, 피라미야. 비가 와, 비가 오셔! 어서 나와 놀아보자. 살랑살랑 춤을 추자.
개골개골 개구리야. 하늘만 보지 말고 뒷다리를 힘껏 펴고 따라오렴, 폴짝폴짝.
새야 새야 종달새야. 하양 깃털 비에 씻고, 노래 노래 부르러 가자.”


송사리, 피라미, 개구리, 종달새는 우리의 토종 동물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악어, 카나리아, 양’ 등의 동물을 등장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정이 간다. 다른 수입 그림책에서 맛볼 수 없는 우리 그림책만의 즐거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4.4조의 리듬감을 살린 글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신이 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마치 우리 민요를 부르는 것처럼 박자를 살려 가며 읽다 보면 아이도 기분 좋게 그림책에 동화된다. ‘살랑살랑, 개골개골, 폴짝폴짝’과 같은 의성의태어의 반복적인 사용 또한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제 7개월인 우리 아가가 교육방송에서 하는 프로그램 중 우리 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장면에 집중하는 걸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어떤 클래식 음악보다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하는 꽹과리, 장구 소리와 우리 고유의 장단을 더 즐겁게 듣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은 아가도 본능적으로 우리 것에 더 끌리는가 보다.

최근에는 ‘전통 태교’라고 하여 민요나 우리 가락이 담긴 음악을 듣고 태교하는 것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에 서양 클래식만 듣던 엄마들이 우리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태교 음악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에서 우리 전통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뱃속의 태아가 안정감을 느끼고 세상에 나와서도 훨씬 리듬감과 음감이 발달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말로만 ‘전통을 계승하자’고 부르짖기 보다 작은 그림책 한 권을 선택할 때에도 우리 것을 살린 독특한 책을 골라 보자. 아이들은 어린 시절에 보고 배운 것을 더 잘 기억하고 온몸으로 느낀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 것을 접해 보지 않고서 어찌 어른이 되어 전통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우리 작가의 글과 그림은 우리 정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큰 가치가 있다. 그림책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과 미술 교육, 언어 교육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엄마들. 너무 유명한 외국 작가의 그림책에 집착하지 말고 다양한 그림책을 아이에게 보여 주어 보다 다채로운 감수성과 감각을 길러 주는 것이 어떨까 싶다.

즐거운 비

서세옥 그림, 김향수 글, 한솔수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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