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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된 종자를 뿌리고 그 볍씨를 덮을 흙
발아된 종자를 뿌리고 그 볍씨를 덮을 흙 ⓒ 김현

농촌은 지금 모판 만들기에 한창입니다. 모판에 흙을 채우고 그 위에 볍씨를 뿌린 다음 다시 흙을 덮은 뒤 비닐로 싸 싹을 틔우고 나서 모내기를 해야 합니다. 모내기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버릴 수 있어 농민들은 모든 일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논에 모를 내기까지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종자 볍씨를 골라 선택한 다음 물 속에 넣어 싹을 틔워야 합니다. 종자로 사용할 볍씨는 물 속에 넣고 여러 번 저은 다음 물위에 뜨는 것은 버리고 쭈글쭈글하지 않고 튼실한 것을 골라 양파자루 같은 망에 넣습니다. 그리곤 커다란 통 속에 소독약을 물과 적당한 비율로 혼합하여 3~5일 정도 넣어두면 볍씨가 발아가 됩니다.

발아가 된 볍씨는 모판에 뿌리고 그 위에볍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흙을 덮어주고 물을 듬뿍 뿌려줍니다. 볍씨를 모판에 뿌리기 전날엔 물속에 넣어 두었던 볍씨를 꺼내어 물기를 빼냅니다. 그래야 볍씨를 골고루 모판에 뿌릴 수가 있습니다.

소독약이 섞인 물속에서 발아된 종자 볍씨. 하루 전에 물에서 건져내어 물을 빼야 종자를 골고루 칠 수 있습니다.
소독약이 섞인 물속에서 발아된 종자 볍씨. 하루 전에 물에서 건져내어 물을 빼야 종자를 골고루 칠 수 있습니다. ⓒ 김현

그러나 이 모판 작업도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습니다. 무논에 모판을 놓고 비닐을 덮어 싹을 틔워 모내기를 하는 곳도 있지만 요즘 대부분 농촌에서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를 길러 바로 모내기를 합니다. 무논에서 모를 길러 모내기를 하면 일손도 많이 들고 힘도 몇 배로 들기 때문입니다.

일손이 모자란 요즘 농촌에서 무논에다 모판을 내어 모를 길러 모내길 하기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젊은 농사꾼들이 주로 하우스 안에서 모를 기르고 바로 모내기를 하는 방법을 씁니다.

몇 년 전까지 동생도 무논에서 모를 키워 모내길 했었습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못자리에서 모판을 떼어내려면 여간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작년부터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를 키워 모내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동생이 모판에 볍씨 뿌리는 작업을 한다고 연락이 와 작은 일손이 되어 주기로 했습니다. 모판 작업을 하거나 모내기를 할 땐 늘 일손이 없어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살고 있는 우리 가족도 총 출동하여 일손을 돕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일꾼들이 많습니다. 농민회 활동을 하던 인근 동네 선후배들과 그 부인들이 함께 모판 작업을 하러 왔기 때문입니다.

종자를 치는 모습
종자를 치는 모습 ⓒ 김현
같은 동네엔 젊은 사람이 없어 품앗이를 하려고 해도 못합니다. 시골 동네에서도 마흔이 넘은 동생이 제일 나이가 적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농사를 지으며 농민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품앗이 형태로 일손을 도우며 농사를 짓습니다. 힘든 노동을 함께 나누는 공동 노동 풍습인 일종의 두레 형태가 농민회 회원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 농촌의 어려움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합니다. 특히 식용 수입쌀이 들어오면서 농민들의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흙을 사랑하고 농사를 통해 자신들의 꿈을 키워가려는 마음들이 있기에 때론 울분을 터뜨리면서도 묵묵히 농사를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마 이들마저 농촌을 떠난다면 몇 십년 후면 농촌은 폐농이 되어 잡초만 무성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농촌의 문제는 단순히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입쌀을 먹는 문제도 우리 모두 한 번쯤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쌀이 들어오는 것이야 이제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먹는 문제는 우리 의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의 모판에 볍씨를 뿌리는 작업을 하면서도 이들은 지금 처해있는 농촌의 현실이나 문제점들을 거침없이 이야기합니다. 수입쌀이 들어오면 다 죽는다느니, 직불제를 해도 그 돈을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라 땅주인이 가로채 소작농만 이중으로 죽는다는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러던 중에 한 친구가 울분어린 말을 합니다.

"봐라 봐라.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뙈놈이 번다고 농촌에서도 그런 놈들이 참말로 많다. 우이 같이 하릿논 짓거나 마누라 궁뎅이만한 농사 쬐끔 짓는 사람들은 쌀 수입을 막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땅 많은 놈들이나 머리 굴리는 놈들은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돈 나올 구멍만 보이면 잽싸게 달려가 채어가 뿌린당게."

"맞어. 그런 사람들은 늘 농협이나 면사무소 같은 데만 기웃거리다가 뭔가 나온다 싶으면 혓바닥을 낼름거리지. 글구 지들이 필요할 때만 농민회 찾고 그렇지 않으면 뒤에서 호박씨만 깐당게."

위의 사진은 종자를 치고 흙을 덮은 모습이고 아래의 사진은 신문지를 위에 놓고 물을 듬뿍 뿌린 다음 비닐을 덮은 모습입니다.
위의 사진은 종자를 치고 흙을 덮은 모습이고 아래의 사진은 신문지를 위에 놓고 물을 듬뿍 뿌린 다음 비닐을 덮은 모습입니다. ⓒ 김현

"참, 나 같은 놈은 등본을 띠던가 돈이나 쪼매 빌릴 때만 농협이나 면사무소 가는데……."
"야, 그런 말 고만 해라. 일할 맛 떨어진다. 어이 재수씨 막걸리나 한 사발 후딱 가져오시오 잉. 한 잔 먹고 하게."

재수씨가 새참으로 막걸리, 맥주와 몇 가지 과일을 가져와서야 화제가 서로의 농사에 대한 이야기로 바뀝니다.

"야야, 너 나락 종자 언제 꺼내 놓았간디 안 말랐어. 그럼 골고루 안 뿌려지잖아."
"하루 전에 꺼내 놨는데 다 안 빠졌구만. 근데 형, 흙사리 더 해야 허지 않겄어. 종자가 남을 것 같은디."
"봐 가면서 해도 될 거야. 모지라면 사람 많은데 뭐가 걱정이야."
"참, 형네 종자 남은 거 있으면 좀 주시요잉. 우리 게 모지랄 것 같아서."
"우리 집에 많이 있다. 아무 때나 시간 나면 와서 가져가거라. 남는 게 종자다."
새참을 먹고 나서 30여분 일을 하니 끝납니다. 기계로 종자를 뿌리는 것이라 좀 편하긴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일이 이 기계일 입니다. 모판을 올려놓는 사람, 흙을 날라 붓는 사람, 볍씨를 퍼다 담는 사람, 볍씨가 뿌려진 모판을 한쪽에 옮겨 나르며 쌓는 사람 등등 각자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야 일이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일이 금세 엉망이 됩니다.

농촌에서 4월은 파종의 시기입니다. 오늘 모판에 놓은 볍씨들은 열흘 정도 자라면 논으로 가서 모내기를 하게 됩니다. 그동안 모가 잘 자랄 때까지 모판이 마르지 않도록 매일 물을 뿌려주고 환풍을 시켜주는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한시라도 소홀히 하면 모를 내기도 전에 볍씨들은 모판에서 말라죽거나 하얀 곰팡이가 떠서 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오늘 모판에 옮겨 놓은 볍씨들이 잘 자라서 논에 가서 자리를 잡아 튼실한 열매를 맺기를 소망해 봅니다. 쌀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나락(벼)은 희망이고 삶이기 때문입니다.
모가 자랄 때까지 물을 뿌려줘야 합니다.
모가 자랄 때까지 물을 뿌려줘야 합니다.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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