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도마뱀이 거실 천장에 붙어 있습니다.
도마뱀이 거실 천장에 붙어 있습니다. ⓒ 김관숙

간밤에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쳤습니다. 그래서 도마뱀들이 우는 소리를 하나도 듣지 못했습니다. 밤이면 사방에서 도마뱀 우는 소리가 납니다. 아주 시끄럽습니다.

내 귀에는 "띡 띡 띡띡띡~" 하고 들리는데 남편 귀에는 "뜩 뜩 뜩뜩뜩~" 하고 들린다고 하고 또 딸애는 누가 영어권에서 일하는 사람 아니랄까봐 혀를 살짝 굴려서는 도마뱀 우는 소리를 흉내 냅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아주 똑 같습니다. 내가 아무리 흉내를 내려고 해도 안 됩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도마뱀 한두 마리가 밤이면 꼭 주방 창문 철근 안전망에 와서 찰싹 붙어있다가는 불빛을 보고 방충망에 달려드는 나방이를 눈결에 잡아먹고는 합니다. 도마뱀은 무법자입니다. 낮이고 밤이고 집안을 막 함부로 돌아다닙니다.

방 안은 물론 천장, 주방 수납장에서도 발견되는데 하나같이 어른 손가락 길이 보다 크거나 조금 작은데 꼭 풍뎅이만한 바퀴벌레에 놀라고 질렸기 때문인지 혐오감 같은 것은 전혀 들지를 않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집 안팎으로 그렇게 헤집고 다니는 도마뱀을 쫓거나 죽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딸애도 그냥 두라고 합니다. 그냥 두면 집안에 해충들을 잡아먹다가 지가 알아서 밖으로 나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밖으로 나가는 놈은 커녕 현관문 근처에서 밖으로 나가기 위해 헤매는 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집안 어느 구석에 터 잡고 박혀 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깨고 꺼림칙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위생상 좋지 않을 것 같아 한 번은 청소를 하다가 안방 문 앞에 제 집인 듯이 천연덕스럽게 있는 그 작은 놈을 향해 바퀴약을 뿌려 댔습니다. 그러자 도마뱀은 마침 청소를 하면서 열어 둔 작은 문으로 나 살려라 하고 밖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독한 약입니다. 풍뎅이 할아버지 같이 큰 바퀴벌레들도 다 죽고는 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보니까 바로 그 도마뱀이 포치(PORCH) 바닥에 꼼짝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밟을 뻔 했는데 죽지는 않은 것 같아 가만 가만 쓰레받기로 떠서는 망고나무 밑 풀밭에 놓아 주었습니다. 저녁 때 가서 보니까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행입니다.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살아났던 모양입니다. 물론 그 이야기를 남편과 딸애한테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나는 도마뱀을 전혀 개의치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간밤 몰아친 비바람에도 남아 있습니다
간밤 몰아친 비바람에도 남아 있습니다 ⓒ 김관숙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 김관숙

이제 잔치가 끝나 가나 봅니다
이제 잔치가 끝나 가나 봅니다 ⓒ 김관숙

간밤에 그 요란한 비바람 소리를 물리치고 동이 트는가 하더니 이내 불같이 뜨거운 햇살이 퍼졌습니다. 아침부터 인도까치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뜰에 노랗게 익은 파파야들이 툭툭 떨어져 터져 있고 인도까치들이 몰려 와서는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까치들은 무척 예민하고 빠릅니다. 포치에서 가만히 디카를 내밀었는데도 약속이나 한 듯이 일시에 휙 날아가 버립니다. 마치 커다란 보자기가 펄럭 하는 것 같았습니다.

“굿모닝-”

존(JOHN)이 언제나처럼 우리네 싸리비를 연상하게 하는 비로 뜰을 쓸면서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도 "굿모닝" 합니다. 그는 씩 웃더니 인도까치들이 파먹다 만 파파야들을 치우려고 합니다. 내가 치우지 말라고 하면서 디카를 흔들어 보이자 그는 뭐 이런 걸 다 찍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다가는 “오케이 오케이” 하면서 지나갑니다.

마당 비(왼쪽)와 실내용 비
마당 비(왼쪽)와 실내용 비 ⓒ 김관숙

뜰 한 쪽에 놓아둔 쓰레기봉지가 또 없어졌습니다. 오늘이 쓰레기차가 오는 날인 줄은 알지만 아직 쓰레기 봉지가 헐렁해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는데 존이 방금 지나가더니 대문 밖 도로변에 내다가 놓은 모양입니다. 나는 서울 집에서처럼 쓰레기 봉지에 쓰레기들을 꽉꽉 눌러서 채우고는 합니다. 여기 쓰레기를 담는 비닐봉지는 얇고 약해서 조심하지 않으면 툭 터집니다. 어쨌거나 헐렁한 쓰레기봉지를 버리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닙니다.

존은 옆에 딕 스미스에서 일을 합니다. 주로 바깥일을 많이 하는 마음씨 좋고 부지런한 중년에 피지 원주민 아저씨 입니다. 출근하자마자 허름한 일복으로 갈아입고는 빗자루부터 찾아 손에 들고 정원을 쓸어내고, 꽃나무 가지도 치고, 잔디도 깎고, 소독약도 뿌리고, 쓰레기도 내다 버리고, 지붕도 고치고, 철망울타리도 손 보고, 딕 스미스 사장 소유의 모든 집들 주변까지 그런 식으로 세밀하게 자신의 집처럼 돌보아 줍니다.

존이 기계로 잔디를 깎고 있습니다
존이 기계로 잔디를 깎고 있습니다 ⓒ 김관숙

물 청소를 끝내고 나서
물 청소를 끝내고 나서 ⓒ 김관숙

쓰레기차는 일주일에 세 번 옵니다. 이웃들이 내다 놓은 쓰레기 비닐봉지를 보면 모두 헐렁헐렁 합니다. 헐렁한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비닐봉지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나는 부리나케 대문을 나가 도로변에 놓인 반 밖에 안 차서 헐렁한 우리 쓰레기 비닐봉지를 집어 듭니다. 순간 저만큼 딕 스미스 가게 앞 그 넓은 마당에 물청소를 하고 있는 존의 눈길이 느껴졌습니다.

헐렁한 우리 쓰레기 비닐봉지
헐렁한 우리 쓰레기 비닐봉지 ⓒ 김관숙

땀으로 번들거리는 존의 검은 얼굴을 돌아보다가 나는 아하, 그렇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립니다.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 열대나라입니다. 쓰레기를 하루 더 두었다가는 심한 악취가 풍기는 것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벌레가 생기고 또 꼬여들게도 될 것입니다. 쓰레기차가 일주일에 세 번 오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나는 얼른 집어 들었던 쓰레기 비닐봉지를 내려놓고는 뒤로 물러섭니다.

존이 그런 나를 못 본체 하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비쳤을까. 궁상을 떤다고 생각했을까. 아님 위생관념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 창피 합니다.

이곳에서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집안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들을, 음식 찌꺼기는 물론이고 병이고, 캔이고, 뭐고 다 한 비닐봉지에 버립니다. 큰 상자라든지 검게 코팅한 것이 부풀어서 쓰지 못하게 된 코팅냄비 같은 것은 따로 존이 가져다가 처리를 해 줍니다. 그걸 어디다 버리냐고, 가르쳐 주면 내가 직접 거기다가 버리겠다고 했더니 그냥 씩 웃기만 했습니다.

쓰레기 비닐봉지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쓰레기 비닐봉지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 김관숙

쓰레기 담긴 비닐봉지를 수거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키가 크고 잘 생긴 그는 언제나 쓰레기차 보다 한 발 먼저 나타나서는 친절하게도 ‘굿모닝 굿모닝’ 하면서 이집 저집에서 자기 집 앞 도로변에 내다 놓은 그 헐렁한 쓰레기 비닐봉지들을 양손에 집어 들고 도로를 건너갑니다. 쓰레기차가 오는 방향 쪽 도로변에다 한데 모아 두려는 것입니다.

그도 친절한 목소리로 '굿모닝'을 잘 하지만 한적한 동네라 그런지 드문드문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낯선 내게 웃으면서 ‘굿모닝’ 하고 지나가고는 합니다. ‘굿모닝’ 물론 내가 먼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처럼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함이 흐르지는 못합니다. 나도 그들처럼 눈은 예쁘게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 탓일까 낯선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불쑥 인사말을 건네는 치레가 아직은 쑥스럽고 낯간지러운 것입니다.

건너편에 육중한 쓰레기차가 왔습니다. 도로변에 모아둔 쓰레기 비닐봉지들을 모두 싣고는 천천히 가다가 또 모아 둔 것들을 싣고 실어서 도로를 내려갑니다.

육중한 쓰레기 차가 왔습니다
육중한 쓰레기 차가 왔습니다 ⓒ 김관숙

물청소를 끝내고 나서 뒷정리를 하고 있던 존이 갑자기 내게로 오더니 얼른 집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디카를 의식한 모양입니다. 나는 그제야 디카를 반바지 주머니에 쏙 집어넣습니다. 이런 저런 소문처럼 디카가 지나가는 누군가의 우발적인 표적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존은 노파심이 많습니다.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존의 따듯한 배려를 받고는 합니다.

문득 아이들 소리가 나고 인도아저씨네 철근대문 옆에 맞춤 케익 전문집에서 한 가족이 나오고 있습니다. 케익 상자를 손에 든 날씬한 아빠와 뚱뚱한 엄마, 어린 두 아이들,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그들은 도로변의 승용차로 갑니다. 아이들이 인형 같이 예쁘고 귀엽습니다. 눈이 큰 남자 아이가 이쪽을 보다가 내가 환하게 웃으면서 “굿모닝” 하자 저도 “굿모닝” 하면서 손을 조금 들어 보입니다. 그러자 아빠와 엄마도 이쪽을 보고는 굿모닝 합니다.

내가 따뜻한 마음과 눈으로 남을 보면 그들도 나를 따뜻한 마음과 눈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을 나는 또 한번 실감합니다. 존이 그들을 보고 씩 웃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낮게 혼자 말을 하듯이 중얼거립니다. 오케이, 오케이. 그들 모습 무엇이 존의 가슴에 왔을까? 그러나 나는 묻지 않습니다.

도마뱀 한 마리가 대문 옆 벽 밑에 죽은 듯이 붙어 있습니다. 먹이를 노리고 있거나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젯밤 내내 몰아치는 비바람에 십중팔구 쫄쫄 굶었을 놈은 분명 그늘진 그 벽을 따라 먹이를 잡아먹으면서 놀다가는 어디로든 해서 집안으로 들어올 게 틀림없습니다.

“야, 너 제발 저 길 쪽으로 좀 가라”

나는 도로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크게 "띡띡 띡띡띡~" 하고 도마뱀 우는 소리를 흉내 냅니다. 도마뱀은 꿈적도 안합니다. 존은 씩 웃고는 그냥 돌아서서 딕 스미스 가게 쪽으로 갑니다. 딸애처럼 그도 도마뱀을 모른 체 해 줍니다. 나도 모른 체 해야 할까 봅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케익을 사가지고 돌아가는 그 가족들이 탄 승용차가 떠나는 소리와 함께 내 등 뒤에서 진짜 도마뱀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도마뱀들은 밤에만 우는데 잘못 들었겠지. 나는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문득 스치는 생각에 머리만을 돌려 뒤를 돌아다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 물기가 덜 마른 깨끗한 마당에는 불같은 햇볕이 쨍쨍하고 딕 스미스 가게를 찾아오는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겨울 피지의 수도 수바에서 지낼 때 어느 날 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