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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정리 봉사에 신이 난 아내.
ⓒ 박철
아내 나이 52세. 적지 않은 나이인데, 요 며칠 동안 초등학교 4학년 은빈이의 엄마 자격으로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엄마들이 돌아가며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게 되었나 봅니다. 초등학교 진입로가 경사로여서 등굣길 교통정리가 꼭 필요한 곳이지요.

좀처럼 화장을 안 하는 아내가 아침 일찍 분단장을 하고, 입술에는 립스틱을 짙게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지요. 그런데 화장을 하는 아내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것이 상당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습니다.

학교 앞이라고 해야 바로 우리 집에 1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요. 아내의 교통정리는 아침 8시부터 8시 40분까지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서 "정지선을 지키세요"라는 깃발을 들고 자동차를 세우기도 하고,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건널목을 건너는 일을 돕는 일입니다.

등굣길 아이들과 출근길 사람들이 한창 붐비는 길모퉁이에서 깃발을 들고 서 있기가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내가 비교적 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콧노래까지 부를 만큼 즐거운 일은 아닐 텐데 말이지요. 아무튼 아내의 기분은 매우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당신, 교통정리 하는 게 그렇게 좋소?"
"그럼요."
"애들만 지나가는 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다 지나가는데 솔직히 쪽 팔리지 않소?"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요. 내가 내 딸을 위해서, 그리고 동네 아이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건데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데…."
"당신 나이도 있잖소? 아마 제일 나이가 많은 엄마 일 텐데 사람들이 할머니가 교통 정리한다고 흉보면 어쩌겠소?"
"흉을 보긴 누가 흉을 봐요? 당신이 그렇게 걱정이 되면 우리 같이 나가서 교통정리 합시다."

아내는 당당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조금도 주저하거나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를 위해 교통정리에 나선 아내.
ⓒ 박철
"그나저나 당신 교통정리 한다면서 수신호나 제대로 할 줄 아시오?"
"간단해요. 아이들이 건널목에 도착했을 때 차가 지나가면 깃발을 내려 차를 정지시키고 우선 아이들부터 건널목을 건너게 하면 되고…."
"그럼 위험하다거나 힘들지는 않습디까?"
"아이들은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데 어른들이 말을 잘 안 들어요. 학교 앞에 차를 세우면 안 되는데 차를 세우지 않나, 깃발을 내려 차를 세우면 그걸 무시하고 차가 지나갈 때면 정말 얄밉지요."

아내는 캡이 달린 모자를 쓰고 가볍게 집을 나섭니다. 나는 멀건이 집을 나서는 아내를 바라봅니다. 씩씩하게 집을 나서는 아내의 발걸음에서 뭔가 자신이 할 일을 발견한 사람의 행복이 바로 저것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저릿하게 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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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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