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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부터 라디오 < SBS 전망대 > 진행을 맡게 된 전문 사회자 최광기씨. 27일 S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리허설 중인 최씨를 만났다.
5월 1일부터 라디오 < SBS 전망대 > 진행을 맡게 된 전문 사회자 최광기씨. 27일 S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리허설 중인 최씨를 만났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기자 "최광기씨 인터뷰 때문에 왔습니다. < SBS 전망대 > 스튜디오에 계시죠?"
스튜디오 경비원 "최광기씨가 누구예요? 그럼 진중권씨는요?"


27일 목동 SBS 사옥 11층 라디오 스튜디오 앞. 기자는 다음달 1일부터 < SBS 전망대 >의 새로운 진행자가 될 최광기씨를 만나기 위해 방송국을 찾았다.

분명 최씨는 이 문을 통과했을 텐데, 정작 문 앞을 지키던 경비원 아저씨는 최씨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얼굴과 이름 석자보다 '거리의 사회자', '탄핵 촛불집회 사회자'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93년 도시빈민 문화제부터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 인권 콘서트 등 재야 무대를 평정하던 그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가 평일 오전 6시부터 두 시간 동안 무거운 이슈를 다루던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거리의 사회자가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매일 아침 눈 뜨자 마자 최씨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무대에서처럼 라디오에서도 목소리가 클까? 시사평론가에서 '거리의 사회자'로 진행자를 바꾼다? 그것도 언론인 출신 손석희 교수와 같은 시간대라니, 도전일까? 무모함일까?

새벽 4시 술자리가 더 익숙한 최씨에게 출근이라니. 그에게 물었다. "웬 시사 프로그램 진행이냐"고.

"시사라는 주제가 사람을 주눅들게 하고, '나와 무관하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제3의 영역 같지만, 사회적 이슈에 대해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감성을 전하는 방송을 하고 싶다. 느낌이 살아있는 방송, 공감대를 넓히는 방송 말이다."

아침 시간대 출근으로 바쁜 이들에게 감성으로 다가가겠다니. 최씨는 이에 대해 최근 불거진 한일간 독도 영유권 분쟁을 예로 들었다.

"무슨 3일장이나 5일장도 아니고, 잊어버릴 만하면 일본을 독도 영유권 주장을 들고 나온다.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는 객관적 사실만을 전한다. 하지만 청취자들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일본, 너무 웃기는 거 아니냐', '한국은 왜 이렇게 밖에 대응하지 못하냐', '대한민국 외교부는 뭐하느냐'는 쓴소리를 듣고 싶어할 것이다."

한 마디로 청취자들로부터 "시원한 방송"이라는 말을 듣고 싶단다. 최씨는 "전통적 시사 프로그램 스타일인 '손석희식' 진행이나, 부드러운 진행자인 '김미화식' 진행에는 없는 감성의 코드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틈새 시장을 '최광기식'으로 이끌어 보겠다는 것.

프로그램을 함께 만드는 정희선 작가도 '감각적 시사 프로그램'을 강조했다. "과거 신문들은 모두 '세로줄이 정통'이라며 세로로 기사를 썼지만, 한 신문이 가로줄을 쓰기 시작하자 신문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우리는 지금 가로쓰기를 해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진부터 진행자까지 '깨는 방송'을 해보겠다는 것.

폐쇄공포증마저 느꼈던 스튜디오 공포증 환자

시사 프로그램의 전형을 깬다고 해도 진행자가 얼마나 주목을 받을지도 의문이다. 최씨는 "프로그램과 함께 내 이름 석자나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내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된다', '기분 좋아진다'고 호응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그가 거리의 찬바람을 맞으며 무대를 누빈 것도 10년이 넘었다. 한국여성대회, 장애인 행사 등 사회의 소수자들을 위한 행사만 1000회를 훌쩍 넘겼다. 과연 스튜디오의 마이크가 그의 우렁찬 목소리를 견뎌 낼 수 있을까. 최씨는 "제작진들이 제발 마이크에서 입을 떨어뜨리라고 요구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3년 전 라디오 프로그램 패널로 처음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는 폐쇄공포증 환자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사방이 뻥 뚫린 길거리에서 성냥갑 같은 스튜디오로 무대를 옮겼기 때문.

하지만 그는 "3년간 라디오 프로그램 패널로 활동하면서 많이 적응이 됐다"며 "이제는 자신감도 붙고,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더 많은 대중을 상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며 기뻐했다.

음지에서 양지로,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양지의 진행자로 나서 마냥 기쁜 것만도 아니다. 그는 이제 두 시간을 이끌어 가야 할 프로그램의 안방 마님이기 때문이다. "시사 프로그램이라 준비할 것이 많다"며 "신문도 촘촘히 봐야 하고, 사회 이곳저곳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말했다. 출근 시간도 '무지하게' 일러졌다.

라디오 진행은 그를 육체적으로도 힘들게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가 뚜렷한 정치색과 진행자의 균형성 사이의 줄타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에 반대하며 촛불을 든 10만 군중 앞에 섰다.

최씨는 이에 대해 "오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상식과 원칙에 입각해서 판단했을 뿐 노 대통령에 대한 애정은 아니었다"며 "민주주의의 기본을 흔드는 도발 행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여성 진행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 최씨는 "여성에 대한 불신은 그들에게 적절한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여성 일반에 대한 편견"이라며 "청취자들에게 시사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사명감을 갖고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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