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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드디어 승민씨가 일을 냈다. 이왕에 시작한 목수일,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최고의 장인이 되고 싶다던 승민씨가 바라고 원하던 대로 한국전통직업전문학교에 입학을 한 것이다.

가족이 보고 싶어도 공부가 끝나는 6개월 동안 절대로 내려오지 않겠다는 승민씨의 각오는 대단했다.

2005년 11월 취업지원 직업상담원의 소개로 성취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승민씨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월 25일 <"장인정신 살아있는 목수가 되고 싶어요"> 기사를 통해 소개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후 광주KBS 1TV <열린 TV 남도>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이 목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 반대는 극심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승민씨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마흔이 넘어서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승민씨는, 전통한옥을 짓는 대목수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목수를 하겠다고 뛰어든 승민씨는 대목수가 되기 위해서는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좀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자 한국전통직업전문학교에 들어갈 수 있기를 학수고대했다.

입학을 하게 되기까지 승민씨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꼭 교육을 받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학교에 지속적으로 보냈고 그 결과, 결원이 생긴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승민씨는 하루 일과를 편지 쓰는 걸로 정리했다고 한다. 편지 속에는 대목수가 되고자 하는 승민씨의 각오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 승민씨가 보낸 편지 겉봉
ⓒ 이명숙


아래는 승민씨가 보내온 편지들이다.

선생님.
날씨가 변덕이 심하네요.
3월까지는 광주에서 3개월간 했던 일들이라 이론이 가미되어서 훨씬 자신이 생깁니다.

전국에서 모여서 아직은 어수선합니다. 다음 주부터는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어 나가면서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교육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이도 30년 차이가 나기도 하고 여자도 4명 있고, 부부가 오신 분들, 나이 드신 분들은 자신의 집을 손수 짓기 위해서 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들을 자랑삼아 말들 하지만 그래서 더 불쌍해 보이고, 과거는 깨끗이 잊어야만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을 텐데, 술을 날마다 마시는 사람 등등.

이런 말 저런 말 웃기는 세상. 생각했던 교육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면서 단 하나를 배울지라도 그 하나가 큰 그림의 밑바탕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뵙고 오려고 했지만 두 분이 다 계시지 않아서 그냥 올 수 밖에 없었고 갑자기 결원이 생겨서 서둘러서 오게 되었고 이제야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갑니다.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정보를 얻게 된 것이 더 도움이 됩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허풍이 심하고 젊은 사람은 꿈이 크고, 제 또래는 도편수나 대목수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그만큼 늦었고 또한 저처럼 지켜보는 가족과 선후배가 없고 가족사가 복잡하고 결혼을 못했거나 이혼했거나 부도가 난 사람 들 속에서 제가 제일 행복합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등산하고 일하고 열심히 삶을 살아갑니다.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가는 길을 정하고 앞만 바라보고 가는 길이라 편하고 재미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오르는 산을 못 오르더라도 그때의 위치에서 만족하고 싶네요. 가족이나 선후배들이 보고 싶어도 보지 않고 가고 싶어도 절대로 가지 않고 통화하고 싶어도 하지를 않고 있는 내가 예뻐요.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두 선생님.
건강하세요.
2006년 3월 16일 저녁 11시 53분
멋진 집을 지을 제자

▲ 편지 원문
ⓒ 이명숙


선생님.
산과 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군대생활처럼 혼자 있다는 것이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틀린 점이 있다면 군대에서는 휴가를 받아서 가라면 가고 언제까지 돌아오라는 날짜에 대한 강박관념에 쌓여 살았는데, 이곳은 스스로 찾아온 것이라 편합니다. 또한 재미가 있는 일이라 모든 것이 찰나처럼 달포가 지났습니다.

이곳에서 배워서 당장 집을 짓고 큰 목수가 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완벽한 기능공이 된다면 누구나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있고 장기간 계획을 세워 배우고 있습니다.

이 기간만 마쳐도 당장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설프게 할 일이 아니라 장기간 배워야 한다고 계획을 세웠기에 지금 배우는 것이 큰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는 계획이 다르고 꿈이 다릅니다.
받아들이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오늘에서야 안정이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약속을 합니다.

담배를 끊기로 또한 다른 사람들과 쓸데없이 어울리지 않고 공부하고 편지 쓰고 사색하고 운동할 것을 약속합니다.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가 얼마일지는 몰라도 배워서 가겠습니다.
비가 내린 대지위에 자연이 변하듯 숲을 우거지게 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있는 익숙함이 더 큰 사랑을 싹 트게 하겠지요.
안녕히

2006년 4월 12일 제자 양승민

▲ 승민씨의 마음이 드러난 편지
ⓒ 이명숙


선생님.

(초략)
57명 중 15명이 남고 모두 집에 갔습니다.
한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은 사람은 많아야 5명 정도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10명 정도는 포기하는데 아직까지 없는 게 신기하고 다들 너무 열심이라서 목재를 사 줄 테니 처음 계획대로 57평 한옥을 짓기로 했습니다. 모두들 열심이어서 결과가 좋을 듯싶네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방해받는 일이 없어서 사색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기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낙이 있네요.
삶은 영화가 많은 것 같으면서 의외로 단순하고 찰라에 불과한 느낌을 받네요. 그만큼 나이를 먹은 증거일거고 똑같은 일이 매일 반복되는 것 속에가 또 다른 게 있듯이 매일 새로운 걸 느끼며 살아갑니다.(중략)

달래, 돗나물 캐서 점심 먹고 설거지하고 화목 보일러 불 피우고 빨래하고 등등 이렇게 생활하며 삶을 이어갑니다. 과거는 없고 미래만을 보며…….
적응하고 멀어지고 이곳에 정들고 참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선생님들.
건강하시고 더 젊고 예뻐지시고 좋은 일만 있기를 빕니다.
열심히 할게요.

2006.4.16 오후 2시
꿈을 배우는 제자 양승민


수많은 구직자들과 울고 웃기를 십 년. 승민씨는 그 세월 속에 녹아 있는 한 사람이기도 하다. 날로 살아지는 삶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해가면서 하루하루를 온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승민씨. 현실에서는 비록 각광받는 직업이 아닐지라도 본인의 의지에 따라 꼭 대목수가 되고 싶다는 승민씨.

"선생님, 제가 대목수가 되어 꼭 한옥 지어드릴게요. 그때까지 지켜봐 주세요."

우직하게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승민씨.

나는 기다린다. 승민씨가 대목수가 되어 장인정신이 살아있는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혼이 깃든 한옥을 지을 그 날을.

덧붙이는 글 | 국정브리핑에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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