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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숲을 뚫고 비치는 새벽빛을 받으며 춤을 추는 무당의 모습은 서럽기도, 아름답기도 하다
빽빽한 숲을 뚫고 비치는 새벽빛을 받으며 춤을 추는 무당의 모습은 서럽기도, 아름답기도 하다 ⓒ 김기
이해경 만신의 <신사맞이 굿>은 21일 새벽 6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일월맞이'로 시작되었다. 굿당이 펼쳐진 곳 바로 위에 마련된 산신당에서 일월맞이를 거행하는 모습은 굿에서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정서와는 조금 달리 정적을 느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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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무당판 우드스탁 아니야?"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새벽 빛살이 고깔 쓴 만신의 고즈넉한 춤사위에 비춰질 때는 조지훈의 '승무'가 생각나기도 해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보는 이가 그런데 정작 해를 맞는 만신의 15년 세월은 어떻겠는가. 해를 향해 사설을 외는 만신의 얼굴이 금세 물기로 젖는다. 새벽을 깨우는 학승들의 염불이 장엄하고 하도 아름다워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을 정도였는데, 새벽을 맞는 만신의 일월맞이도 비장한 애수를 자아냈다.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 장면은 신을 맞는 것과는 상관없이 특별한 운명을 살아가는 한 여인의 풍상에서 저절로 풍기는 그림이고, 소리이고, 몸짓이었다.

작두 위에 올라서서 복쌀을 뿌리는 이해경 만신. 사람들은 서로 쌀을 받기 위해 아우성친다. 꼭 복을 바라서는 아니라도 그것은 구경꾼으로서의 일종의 역할 같은 것이다.
작두 위에 올라서서 복쌀을 뿌리는 이해경 만신. 사람들은 서로 쌀을 받기 위해 아우성친다. 꼭 복을 바라서는 아니라도 그것은 구경꾼으로서의 일종의 역할 같은 것이다. ⓒ 김기
운명에서 묻어나는 애수, 고즈넉한 춤사위

그렇게 사흘간의 진접굿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23일 밤 작두 위에 선 만신이 내리는 공수(죽은 사람의 넋이 말하는 것이라고 하여 무당이 전하는 말)에 사람들마다 안도하고, 기뻐하는 모습으로 마감되었다.

작두에서 내려온 만신이 구경 온 사람들에게 다가가 밥그릇에 담긴 쌀들을 통해 좋은 운수를 빌어주자 다들 소중히 입에 털어 넣는 모습에 21세기는 저만치 멀어졌다. 사흘간 울고 웃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 해방공간에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잃었던 오래 전 인상으로 돌아갔다.

이해경 만신의 진접굿을 통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소위 '굿쟁이'들의 얼굴도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틈틈이 막걸리 잔도 나눴다. 서로 이제 늙어가나 하는 말쯤은 막걸리와 함께 꿀꺽 삼키면서 엉뚱한 화제로 과장되게 웃어보기도 한다.

그러다 잠시 말이 끊겨도 걱정할 것이 없다. 눈만 돌리면 그곳에서는 만신이 죽을 힘을 다해 신과 씨름하고 있으니 그보다 더한 구경거리가 어디 있겠나.

자신의 목에 날 벼린 식칼을 대는 이해경 만신. 무당은 처절한 몸짓으로,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신을 부른다.
자신의 목에 날 벼린 식칼을 대는 이해경 만신. 무당은 처절한 몸짓으로,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신을 부른다. ⓒ 김기
한 거리를 마칠 때마다 만신은 땀에 푹 절어 제대로 걷지도 못할 듯 휘청거린다. 그러면서도 찾아온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렇게도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린다. 이해경 만신은 사람이 그리운 게다. 아니 무당이라는 인격 자체가 고독과 종신 계약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흘간의 떠들썩한 굿 속에서도 언뜻언뜻 그녀의 눈가가 젖었던 것은 아마도 만신이라는 이름 속에서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지울 수는 없는 지독한 고독이 치미는 까닭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무당 팔자는 눈물이 반이야. 기왕 우는 김에 날 찾는 사람들 몫까지 대신 울지 뭐."
"어차피 무당 팔자는 눈물이 반이야. 기왕 우는 김에 날 찾는 사람들 몫까지 대신 울지 뭐." ⓒ 김기
무당,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장인

지구상에는 세 가지의 인격이 존재한다. 인생으로서의 인격, 인생 이후의 신격 그리고 그 중간의 무격이다. 무당의 무(巫)자를 살펴보면 장인 공(工)자 안에 사람 인(人) 둘이 들어가 있는 형상이다. 무당이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장인이라는 뜻이다.

그 두 사람 중 하나는 죽은 사람이다. 그래서 무당은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산 사람에게, 산 사람의 사정을 죽은 사람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무당은 제3의 인격인 무격의 존재로 살아간다.

항상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언제든 신과 소통할 수 있어야 진짜 무당이다. 그래서 무당은 그 소통의 유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굿에는 자신이 모신 신을 일일이 불러와 노는 과장이 있다.

그때 사설과 동작을 유심히 보면 그 무당이 주로 어떤 신에게 사람의 일들을 묻고, 의탁하는지 알 수 있다. 이해경 만신을 지탱하는 신 중에는 오래 전 그녀가 잃고, 그 때문에 무당의 길을 선택하게 된 가장 아픈 운명이 존재했다. 아들의 죽음이었다.

그래서 이해경 무당은 그 거리에서 아들을 불러서 한판 거방지게 논다. 이것을 '동자논다'고 하는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중년 무당이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고 보는 사람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거리를 마친 무당의 가슴은 또 하나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겪는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미의 심정은 세월로 덮을 수 없는 아픔인 까닭이다.

이해경 만신이 동자 노는 장면. 어린아이가 된 만신의 개구장이짓에 모두들 웃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정적같은 아픔이 만신의 가슴을 할퀸다.
이해경 만신이 동자 노는 장면. 어린아이가 된 만신의 개구장이짓에 모두들 웃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정적같은 아픔이 만신의 가슴을 할퀸다. ⓒ 김기
그렇게 자신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에 만신은 사흘간의 기나긴 굿을 통해 좌중을 울리고 또 함께 울었다. 눈물은 웃음보다 더 큰 에너지가 소비되는 법. 눈물을 쏟고 난 후 쉬는 동안 이런저런 말을 나누다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무당 팔자는 눈물이 반이야. 기왕 우는 김에 날 찾는 사람들 몫까지 대신 울지 뭐." 무당은 무당이다. 뭘 묻고자 하는지 미리 알고 대답해버린다. 그래서 가끔 무당과 가까이 하는 것이 두렵다.

제대로 된 굿 축제 하나쯤은 있어야

이해경 만신은 굿에 미친 사람이다. 자신이 남의 굿판을 돌아다니며 찍은 비디오에다, 민속연구가들의 비디오까지 빌어다가 철저하게 연구한다. 이번 신사맞이 굿에서도 "잘 할 것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해도 요즘 약식으로 변형되고 있는 거리들을 원형대로 해보겠다"는 말을 애초부터 공언한 터이다.

그런가 하면 음향 전문가인 C&L 뮤직의 오대환 음악감독까지 초빙해 꼼꼼하게 사설을 전달하는 데 공을 들였다. 덕분에, 구경하는 사람들은 만신이 하는 말들을 거의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건 굿판에서 대단한 혜택이다.

이해경 만신은 전통방식으로 굿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은 제기부터 굿에 소용하는 모든 것들을 옛 모습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믿는다.
이해경 만신은 전통방식으로 굿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은 제기부터 굿에 소용하는 모든 것들을 옛 모습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믿는다. ⓒ 김기
그러나 그런 굿은 아쉽게도 자주 없다. 개인이 자주 하기에는 너무도 힘겨운 일이고, 게다가 단체가 하는 굿은 때때로 형식에 치우쳐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또한 전통방식 그대로 하는 굿도 차츰 사라지고 있다.

바쁜 현대인들의 형편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무당들이 전통 방식을 전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도 한 이유다. 어차피 신과 통하면 그만이라는 기능적 면에서는 할 말이 없겠으나 우리에게 굿은 단지 기능만은 아니기에 아쉬움이 크다.

굿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때때로 굿 그 자체가 무서울 때가 있다. 타살거리, 작두타기 등의 의식들이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슬프고, 즐겁고, 그야말로 신명이 넘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축제가 더 들어설 곳이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치지만 이런 무속 축제가 변변히 없다는 것이 문제다. 몇 년 전 국악축전과 함께 국제무속페스티벌이 있었으나 내부 문제 때문에 한 번 하고는 그만 문을 내려버렸다.

이해경 만신의 진접굿에서도 절실하게 느꼈지만, 굿 하나만 잘 해도 어지간한 축제가 부럽지 않다. 이제는 진짜 제대로 된 굿 축제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이다.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으로 위안을 삼지만 그래도 아쉽다. 각 지역의 독특한 굿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일 년 중 한 때를 신명나게 놀아보면 좋겠다.

작두에서 내려온 만신은 사람들에게 공수와 함께 복쌀을 나눠준다. 어린이가 고사리 손으로 복쌀을 받는 모습이 앙증맞다. 이때 만신은 그녀 가슴에 묻은 아들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작두에서 내려온 만신은 사람들에게 공수와 함께 복쌀을 나눠준다. 어린이가 고사리 손으로 복쌀을 받는 모습이 앙증맞다. 이때 만신은 그녀 가슴에 묻은 아들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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