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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식구 생각>
ⓒ 세종서적
사람이 가장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언제일까?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순간'이라고 답하고 싶다. 작년 이맘때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 중 엄마를 잃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인간이란 참으로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고 하더라도 엄마가 아프게 된 데에 대한 온갖 후회와 다시 살려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마음. 우리 가족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여러 번의 수술 끝에 회복 불가 판정을 받고 죽음 앞에 선 엄마의 모습을 본다는 건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1년이 지났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가슴이 아프고 후회가 마음을 덮친다. 그래도 굳게 마음을 잡고 꿋꿋이 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리라. 이렇게 보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참 묘한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엄마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나는 새로운 가족인 아가를 맞이했다. 작은 생명이 내 품에서 자라는 걸 보면 하느님은 참으로 공평하셔서 하나를 뺏으시면 또 하나를 주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 덕분에 나는 초보 엄마가 되어 우리 엄마가 나에게 베풀었던 것처럼 보잘것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끈끈한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묘한 관계이다. 가족들의 만남 속에는 미움도 있고 사랑도 있다. 원망의 마음과 연민의 마음, 애틋한 마음과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애정이 가족이라는 단어 속에 머무른다. 책 <식구 생각>은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전하는 작고 소박한 이야기책이다.

50대에 접어든 저자가 사랑하는 가족을 하나하나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얻은 인생의 교훈은 '살아 있을 때 사랑하며 살 것'이라는 아주 명쾌한 구절이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었던 이 세상 많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경험에 비추어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롭게 엮어내어 책으로 만들었다.

사실인지 꾸며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다양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읽는 이의 눈시울을 적시는 진한 감동의 내용이 많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긴 이야기들. 내가 속한 이 세계 중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 속에서 우리는 끝없는 행복을 맛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인생의 쓴맛을 느끼고 산다.

가난한 가정의 한 소녀는 부잣집 아이가 갖고 있는 책가방이 부러워 엄마에게 책가방을 사 달라고 조른다. 농사가 잘 되면 가방을 사주겠다고 부모님은 약속하지만 그 해에는 폭풍이 불어 수확은 엉망이 되고…. 결국 어머니가 머리에 고춧가루를 이고 다니며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날, 어머니의 머리 위에는 흰쌀과 노란 책가방이 자리 잡고 있다.

"그날 밤, 딸은 노란 책가방에 책을 가득 넣고 좁은 방을 몇 십 바퀴나 돌았습니다. 어머니는 밤에 자면서 '아이고 다리야' 하는 신음을 내뱉었습니다. 옆에서 주무시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알통 밴 다리를 주먹을 쥐어 두드리고 손으로 주무르며 마사지를 하였습니다.

그 노란 책가방이 새우처럼 휜 어머니의 허리를 더욱 휘게 만들었고, 다리의 고통과 바꾼 인내의 선물이었다는 것을 철없는 딸은 한참 세월이 지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자식들은 왜 항상 철없는 행동을 하는 걸까? '후회는 앞서 오지 않는다'는 말을 늘 생각하면서도 괜히 퉁명스럽고 못된 행동으로 부모님을 속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무한한 사랑을 주며 자식을 보듬고 그들이 세상을 향해 힘차게 걷도록 도와 주신다.

책에 나온 이야기 중 마음을 울리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가출한 자식의 소식을 애타게 찾던 어머니는 너무 오랜 동안 연락이 끊긴 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출한 딸은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한 광고를 발견하고 엄마에게 연락하게 된다.

그 광고는 바로 "딸을 찾습니다. 이 사진의 어머니가 딸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엄마의 사진이 실린 전단지이다. 딸의 사진을 실으면 혹여 딸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염려한 어머니는 자신의 사진을 실은 광고를 내보내 자식을 찾는다. 부모의 마음은 이처럼 행여 내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걱정 속에 있다.

부모 자식 간 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도 인생의 슬픔과 기쁨이 공존한다. 뇌사에 빠져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다가 5년 만에 아내가 의식을 찾는 기쁨을 맞은 남자의 이야기. 남편의 극진한 사랑은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족으로 인해 행복한 순간도 있고 예기치 않은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불행의 순간에는 참으로 세상이 원망스럽고 인간이 미워질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 세계와 인간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구심점인 가족을 떠올려 보자. 그 끈끈한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을 생각할 때에 힘든 일도 저절로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는가.

식구 생각 - 가장 사랑했을 때는 차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한

윤문원 지음, 윤정대 그림, 세종서적(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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