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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만든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는 전라일보 1면 머릿기사
'신이 만든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는 전라일보 1면 머릿기사 ⓒ 전라일보
'새만금 방조제 15년 대역사 결실'
'신이 만든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
'도민 한 풀었다. 역사의 날 밝아'


숱한 갈등과 논란을 낳았던 새만금 방조제가 최종 연결된 지난 21일, 전북지역 일간지와 방송사들은 신바람이 났다. 큼지막한 사진과 선정적인 제목을 보면 편집기자들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15년 참아온 '흥분' '환호', 일제히 쏟아내

전북일보 역시 1면 대부분을 새만금 방조제 마무리 기사에 할애했다.
전북일보 역시 1면 대부분을 새만금 방조제 마무리 기사에 할애했다. ⓒ 전북일보
편집기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덕목 중 하나는 '어떤 기사를 다루든지 절대 흥분하지 말 것'이다. 그러나 십수 년을 기다려 왔다는 듯 이날만큼은 온통 흥분을 자제하지 못했다. 방송사들은 방조제의 완공 현장에 헬기와 배까지 투입, 하늘과 땅, 바다에서 새만금을 입체 조명했다.

방조제 연결은 새만금 전체 사업의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할 뿐인데도 "이제 한을 풀었다"는 투다. '미래의 땅', '신이 만든 땅', '신기원' 등 제목에 붙은 단어들은 간척사업이 착공된 1991년부터 준비해 놓은 듯하다.

방송사들은 당시 착공식에 참여해 손을 흔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며 "단군 이래 가장 큰 간척사업이 첫 삽을 뜨게 됐다"는 당시의 코멘트와 자료화면을 오래 기다려 왔다는 듯 긴요하게 사용했다.

사설 통해 "이젠 특별법 제정" 한 목소리

완공장면을 1면 사진기사로 다룬 전남일보
완공장면을 1면 사진기사로 다룬 전남일보 ⓒ 전남일보
전북지역 9개 일간지들은 이날 일제히 1면 머릿기사로 새만금 방조제 완공에 대해 다뤘으며 사설에서는 방조제 이후의 과제를 공통으로 제시했다. "이젠 내부활용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새만금 방조제 내부 활용을 위해 역량과 지혜를 한 곳으로 모으자고 호소한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 왔으면 그럴까하는 측은한 생각이 느껴질 정도다.

한마디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 신문 할 것 없이 전북지역 언론사들은 "내부활용 방안이 확정되면 이 방안이 체계적이고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특별법 제정이 필수적"이라며 입을 모은다. 꼭 짜 맞춘 듯이 "미래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서"임도 강조한다.

삶의 터전과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해하는 새만금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일부 신문사들은 속지 귀퉁이에 '새만금 갯벌 살리기 다시 시작', 또는 '전북환경연합 생명평화 기원제' 등의 기사를 실었지만 흥분된 1면 의제에 비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방송사들은 시간이 부족해서 인지 이러한 소수의 목소리를 첫날 정규 뉴스시간에 아예 다루지 않았다.

인터넷 신문들 "갯벌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도민 새만금 숙원 성취' 전북중앙신문 1면
'도민 새만금 숙원 성취' 전북중앙신문 1면 ⓒ 전북중앙신문
그런가 하면 <부안독립신문>을 비롯한 일부 지역 대안매체들은 명보다 암을 이룬다. 다른 주류 매체들과는 달리 밝지 못하다. 인터넷 대안매체를 표방해 온 <참소리>는 이날 '새만금 갯벌은 자기변론을 시작할 것... 숨통을 조였다'의 머리기사에서 "환경단체는 24일과 29일 1주일간을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고 전했다. 새만금 운동의 자기반성을 통해 새만금 갯벌 복원활동을 모색해 나가겠다는 침통한 환경단체 분위기를 대변한 것이다.

"환호성을 지르기 전에, 잔치판을 벌이기 전에 죽어가는 뭇 생명들에 대한 작은 애도와 생존권을 잃어버린 채 절망에 빠져 있는 어민들에게 최소한의 관심을 표하는 모습을 기대하기 어려운가?" 라고 핀잔과 비판을 던진 데는 전북도 등 행정기관보다 환호하는 동종 언론사들에게 일침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 인터넷신문 <부안 21>은 갯벌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고 통탄해하는 한 어민의 사진을 통해 희망을 잃은 새만금 주민들의 분위기를 대변했다.
지역 인터넷신문 <부안 21>은 갯벌을 지키지 못해 안타깝고 통탄해하는 한 어민의 사진을 통해 희망을 잃은 새만금 주민들의 분위기를 대변했다. ⓒ 부안21
부안독립신문은 '새만금 갯벌의 부활을 기다리며'라는 기사를 실었다.
부안독립신문은 '새만금 갯벌의 부활을 기다리며'라는 기사를 실었다. ⓒ 부안독립신문
다른 매체들과는 달리 환경단체들의 침울한 애도 분위기를 발빠르게 다룬 지역 인터넷 매체 <참소리>
다른 매체들과는 달리 환경단체들의 침울한 애도 분위기를 발빠르게 다룬 지역 인터넷 매체 <참소리> ⓒ 참소리
"새만금 갯벌 복원 운동의 새로운 첫걸음을 새만금에서 시작할 것이며, 새만금에서 답을 구할 것"이라는 강한 어조에서 이들에겐 '바다가, 갯벌이 그래도 희망'임을 암시해 준다.

지역 인터넷신문 <부안21>의 '갯벌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기사와 큼지막한 사진 한 컷은 더 숙연하게 한다. 계화도의 한 주민이 자신이 살아온 바다와 갯벌을 지켜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의 절을 하는 사진이다.

'신이 만든 바다가 육지로 변했다', '도민들의 한을 풀었다'며 흥분과 광기에 젖은 지역의 주류 매체들과는 달리 대안매체들은 소수의 목소리에 오히려 귀 기울인다. 방조제 연결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 뿐이다. 뭇 생명과 어민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절차가 생략된 아쉬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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